궁지 몰린 두산…"당국, 합병 철회하라는 신호"
시장에선 합병 계획 철회로 해석
[한국경제TV 신재근 기자]
<앵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두산그룹 사업재편과 관련해 거듭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합병을 철회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은 합병 무산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증권부 신재근 기자와 얘기해 보겠습니다. 신 기자, 이복현 원장이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에 대해 어떤 발언을 했는지부터 짚어볼까요?
<앵커> 이복현 원장은 지금까지 3번 두산그룹 합병 문제에 관해 직간접적으로 언급했는데요.
직접 거론한 경우도 있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적도 있었습니다.
먼저 지난달 2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두산그룹 사업구조 개편이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에 "원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8일에는 "두산그룹이 낸 합병 관련 정정신고서에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정 요구를 하겠다"며 직접 압박했고요.
어제는 "일부 회사들의 불공정 합병, 물적분할 후 상장 등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다시 한번 두산그룹을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이번 사업구조 재편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금감원장도 발언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입니다.
<앵커> 금융감독당국의 수장의 발언 수위를 놓고 보면 사실상 합병을 철회하라는 뜻 같기도 한데 시장에선 어떤 해석들이 나오고 있나요?
<기자>
시장에서도 합병 계획을 거둬들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국내 상장사 합병에 관해 연구하는 한 교수는 "금감원에서는 두산그룹이 합병을 철회하기 바라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합병비율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데요.
두산그룹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주식 교환비율을 1:0.63로 설정했는데요.
두산은 법에 규정된 대로 기준시가에 따라 합병비율을 정했다는 입장입니다.
적자기업이지만 주가가 높은 두산로보틱스와 1조 원대 영업이익을 내지만, 주가는 저평가된 두산밥캣을 단순히 시가로 합병비율을 결정한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감원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시너지가 떨어진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두산그룹이 다시 제출한 정정신고서에 합병의 기대효과 등이 숫자로 기재돼 있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두산로보틱스 정정신고서를 보면, 두산밥캣과 통합한다면 '북미·유럽 시장에서 고객에 대한 접점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든지 '매출 상승의 기대 효과가 존재한다', '새로운 사업 기회의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는 등 상당히 추상적인 표현들이 많습니다.
<앵커> 두산이 정정신고서를 제출한 지 6일이 지났습니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기자>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합병 증권신고서의 효력발생일은 오는 28일인데요.
증권신고서가 제출돼 수리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하는데, 이를 효력발생일이라고 합니다. 회사가 신고서에 적힌 내용대로 실행에 옮기겠다는 겁니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를 다시 수정 요구할지 아니면 받아들일지 여부가 곧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금감원은 1차 증권신고서에서 지적한 부분이 반영됐는지를 우선 살펴볼 것이란 입장인데요.
앞서 금감원은 합병 배경이나 당위성 등이 추상적으로 기재됐다고 보고 이를 구체적으로 적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다만 합병비율에 대해선 직접 정정 요구를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수정하도록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과 시행령에서 상장사 간 합병은 기준시가에 따라 합병가액을 산정하고 있기 때문에 합병비율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는 횟수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3차든 4차든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는데요.
증권 업계 안팎에선 신고서 내용을 판단하는 기준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번 합병건을 바라보는 금감원의 시선이 중요해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개인투자자들은 합병이 무산될 것으로 보고 두산밥캣을 매수하고 있다고요?
<기자> 개인투자자는 지난달 24일 이후 최근 한달 동안 두산밥캣 주식을 500억 원 넘게 순매수했는데요.
합병이 무산될 경우를 염두에 두고 개인들이 매수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무산되면 합병 우려로 떨어졌던 주가가 원래 상태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 때문입니다.
다음 달 25일 예정인 임시 주주총회 전까지 주가가 주식매수청구 행사 가격을 밑돌면 주주들이 대규모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이거나 찬성하는 주주라고 해도 현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 가격보다 낮으면 행사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각각 6천억 원, 5천억 원, 두산밥캣은 1조5천억 원까지 주식매수청구 주식을 사겠다고 정했는데, 이를 뛰어넘는 매수청구권이 행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두산그룹 측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증권부 신재근 기자였습니다.
신재근 기자 jkluv@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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