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야드씩 조여가자" '풋볼 코치' 출신 월즈의 말, 간결·강렬했다
" “마지막 4쿼터다. 필드골을 내줬지만 우리가 공을 잡았다. 매일 1야드씩 조여가면 된다. 76일 남았다. 시간은 충분하고, 잠은 죽은 뒤 자면 된다.” "
전국 무대에서 무명(無名)에 가까웠던 학교 미식축구팀 코치 출신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의 '작전 지시'는 이렇게 간결하고 강력했다. 미식축구 1개 쿼터 시간(15분)으로 압축한 21일(현지시간)월즈의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뒷받침해 마지막 ‘터치다운’을 노리는 민주당의 공수 라인도 화려했다.
“공립학교 교사 무시하지 말라”
월즈 주지사는 이날 중년이 된 옛 축구팀 제자들의 소개를 받고 수락 연설을 위해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 무대에 올랐다. 전당대회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가 나왔지만, 그는 환호를 1분만에 끊었다. 그리고는 “미국 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게 돼 인생의 영광”이라며 자신을 지명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
월즈는 이어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아름답고 단순한 이유 단 하나, 바로 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며 인구 400명의 네브래스카주 뉴턴 시골에서 자라나 부통령 후보직에 오르기까지의 인생 역정을 빠르게 풀어냈다.
월즈가 공개한 ‘흙수저 성공기’는 짧았지만, 곳곳에 ‘뼈’가 담겼다. 그는 “(시골)고등학교엔 24명이 있었는데, 그 중엔 예일대에 진학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같은 흙수저 출신임을 내세우는 경쟁자 JD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예일대를 나온 엘리트라는 점을 비꼬았다.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폐암으로 작고한 뒤 빚더미에 앉지 않게 해준 사회보장 유족연금, 24년간의 군복무 후 대학에 갈 수 있게 한 참전용사법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또 20년간 공립학교 사회 교사 겸 미식축구 코치로 근무하고 학생들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 점에도 감사하다고 했다. 모두 민주당이 공약으로 내건 사회보장, 중산층 강화 정책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월즈는 그러면서 “나는 정치 경험도 없고 돈도 없는 40대 남부의 고등학교 교사였고, (공화당의)붉은색이 짙은 선거구에서 출마했다”며 “하지만 공립학교 교사를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말했다.
“괴상(weird)한 트럼프, 당신 일에나 신경쓰라”
월즈는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이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 월즈는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가장 부유하고 극단적인 사람을 빼면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다”며 “특히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당대회장을 가득 채운 2만여명의 당원들의 환호가 나오자, 월즈는 “(트럼프가) 괴상하지(weird) 않느냐”고 되물었다. ‘괴상한 트럼프’는 무명이던 그의 존재를 전국으로 알리게 한 슬로건이다. 월즈는 이어 “교사 시절 매년 학생회장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아느냐”며 “리더는 하루 종일 다른 사람들을 모욕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뒤 “나는 미네소타 주지사로 있으면서 중산층을 위해 세금을 인하했고, 유급 의료 휴가를 통과시켰으며 범죄와 싸우고 저렴한 주택에 투자하고 우리 가족을 침몰시킬 뻔했던 의료비 부채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했다”며 “특히 다른 주에서 책을 금지하는 동안 모든 아이들이 아침과 점심을 무상으로 먹을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월즈는 이어 “이럴 때는 금과옥조 같은 표현이 있다”며 트럼프를 향해 “당신의 일에나 신경쓰라(mind your own damn business)”고 외쳤고, 당원들은 그의 말을 복창하며 환호했다.
난임시술 공격엔…“불임의 지옥 겪어봤나”
월즈는 공화당이 비판의 소재로 삼는 난임시술에 “불임이라는 지옥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모를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아내 그웬과 나는 몇년만에 딸이 태어났을 때 바로 이름을 지었다”며 딸 ‘희망(Hope)’과 아들 거스의 이름을 부르며 “너희들이 내 세상의 전부”라고 했다. 장내 카메라가 난임시술로 얻은 딸과 학습장애가 있던 아들 거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비치자 환호와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월즈는 “가족 얘기를 한 이유는 이것이 이번 선거의 핵심인 자유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퇴역군인으로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보다 총을 잘 쏘지만 아빠이기도 하다”며 “우리의 첫번째 책임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고, 아이를 지키는 책임이 바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이라고 말했다.
월즈는 이어 “어떤 아이도 소외되지 않고 낙오되지 않는 미국을 만들겠다”며 “이것이 우리가 싸우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원들과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When we fight, we win)”, “우리는 돌아가지 않는다(We are not going back)” 등 해리스가 구사하는 구호를 여러차례 함께 외쳤다.
깜짝 등장 오프라 윈프리 “자유를 선택하자”
월즈에 앞서선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극도의 보안 속에 깜짝 등장해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 무대에 오른 윈프리는 “오바마 부부의 어제 연설은 정말 대단했고, 이제 우리는 불타고 있다”며 “미셸의 말처럼 우리는 뭔가를 해야 한다(Do something). 그것은 해리스를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윈프리는 트럼프를 향해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트윗과 거짓말 바보짓보다 위에 있다”며 “그들에겐 어른의 대화가 필요하고, 문명화된 대화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는 공짜가 아니고, 인생의 불한당들에게 맞서야 한다”고 했다.
윈프리는 동시에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보수든 진보든 위기에 처한 사람을 진심으로 돕는 것이 자랑스러운 미국인”이라며 “우리는 집이 불타고 있을 때 그의 인종, 종교, 그의 배우자의 성별, 그들의 투표 성향을 묻지 않고 그저 생명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집이 아이가 없는 ‘캣 레이디’의 집이라면 고양이까지도 구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아이가 없는 여성을 의미하는 ‘캣 레이디’는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 밴스 출산을 한 적이 없는 해리스 등을 비하하며 썼던 말이다.
윈프리는 흑인 유권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뒤 오바마 열풍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2016년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장관을 지지했지만 선거운동과는 거리를 두면서 민주당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잠룡’ 전원 출격…한국계 앤디김도 연설
이날 찬조연설엔 전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에 이어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민주당의 거물들이 줄줄이 나섰다.
특히 월즈의 수락에 맞춰 부통령직을 놓고 경합했던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과 또다른 잠룡으로 평가받는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 등이 잇따라 찬조연설에 나서며 주목 받았다. 이들은 일제히 “민주당이 진정한 자유의 정당”이라며 “트럼프의 어둠의 정치를 선거를 통해 영원히 끝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계 앤디김 하원의원(뉴저지)도 비중 있는 연설자로 나섰다. 한국계 미국인 중 처음으로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는 김 의원은 이날 연설에서 “난 우리 아이들이 망가진 미국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믿기를 거부한다”며 2021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일으킨 ‘1·6 의회폭동’을 비판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그는 폭동 당시 묵묵히 의사당의 쓰레기를 홀로 청소했고, 해당 사진이 보도되면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시카고=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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