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의 모범 보여준 두 남자... 한국에서 가능할까

김상목 2024. 8. 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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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김상목 기자]

때는 1939년 9월 3일,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이다. 한 의학자 자택에 옥스퍼드 영문과 교수가 찾아온다. 여기까지만 듣고 있자면 아주 평범한 일상, 사생활 이야기일 테다. 하지만 서로 만난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면 순식간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주인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방문객은 C.S. 루이스이기 때문이다.

<꿈의 해석> 등 저작과 평생에 걸친 연구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리비도' 같은 개념을 정립한 바로 그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고전 3대 판타지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이자 20세기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기독교 변증가인 바로 그 C.S. 루이스다. 두 사람은 그날 처음 만났고, 다시 만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이 누구나 들 법하다.

고령의 프로이트는 개인적으로는 안면이 전혀 없던 루이스를 집으로 초대한다. 프로이트는 루이스가 출간한 저서 <순례자의 귀향>에서 자신의 이름을 본떠 설정한 '프로이트'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인데, 역시 열렬한 무신론자였다가 회심해 유신론자가 된 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첫 저작에서 프로이트 등 당대 사상가들의 신에 관한 회의를 비판하는 루이스가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런 사정을 짐작한 루이스 역시 저명한 대학자의 방문 요청에 잔뜩 긴장한 상태다.

첫 만남부터 두 사람은 정중하지만 신랄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은 신의 존재, 인간의 정체성, 삶과 죽음이라는 화두에 대해 공수를 바꿔가며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그 장면의 목격자는 아무도 없다. 텅 빈 저택에서 그들 둘만이 대화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대는 물론 20세기 세계의 지성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두 사람의 논쟁은 화면을 통해 관객에게 생중계된다. 과연 이들의 토론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 것인가?

끝장토론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스틸
ⓒ (주)트리플픽쳐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있을 수 없는, 기록되지 않은 가설로 화면을 채운다. 공식적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가 만났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프로이트가 해당 시기에 익명의 옥스퍼드 교수와 면회했다는 소문만 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심지어 진실 여부도 확인된 건 없다).

만약 실제로 두 사람이 만났다면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영화는 그 흥미로운 상상을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원래는 2인극 형태로 무대공연을 위한 극본을 영화로 각색하게 된 모델이라 한다. 그런 경과를 알게 되면 서서히 본 작품의 의도가 이해되기 시작할 테다.

근대에 들어서자, 천년 넘게 유럽을 지배하던 기독교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지식인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과학과 이성이 그 자리를 빠른 속도로 잠식한다. 하지만 인간의 합리와 진보에 대한 믿음 역시 제국주의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순식간에 회의로 바뀐다. 지식인들은 번민하거나 옆길로 새곤 한다. 파시즘에 열광하거나 냉소주의로 기울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놀라운 발견과 새로운 이론은 쏟아진다. 그런 혼돈의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두 지성이 만나서 무신론과 유신론을 주축으로 그들만의 은밀한 끝장토론을 벌였다니 그들의 이름값을 아는 이들이라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주요 개념들을 이 비밀토론의 국면마다 접목해 이야기를 풀어내려 시도한다. 두 사람 간의 대화는 루이스가 이후 평생 저술한 기독교 변증론의 기본 전개 방식을, 각자의 뇌내망상이 화면에 표현될 때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분석이 키를 잡고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논쟁 내용뿐 아니라 이미지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관객은 둘의 치열한 논쟁을 이중으로 응시하게 된다.

당시로선 최신 학술이론과 신개념이 난무하기 때문에 초반에 잔뜩 겁을 집어먹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개론 수준 이해만 돼 있다면 소화하기에 큰 무리는 없다. 관객 각자의 상식 테스트라 받아들이면 될 수준이다. 그조차 어렵다면 교양을 좀 쌓는 계기로 삼으면 될 일이다.

초반부터 이미 세계적 명성을 쌓아올린 노학자는 신랄한 어투로 손님을 몰아붙인다. 애꿎은 방문객은 하지만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그에 맞서 필사의 저항을 벌인다. 시작부터 고양이가 구석에 몰린 쥐를 겁박하는 흐름이 될 것 같더니만, 은근히 저항력이 만만치 않다.

물론 서로를 증오하거나 적대하진 않는다. 그들은 수시로 개인적인 유감이나 감정 표시가 아니라는 사족을 덧붙여가며 지성인의 토론임을 강조한다. 근대 유럽 인문학과 토론문화의 효시라 할 클럽/살롱 논쟁의 그림 같은 예시라 해도 무방한 모습이다.

하지만 서로 상충하는 의견을 고수하는 둘의 대화가 시종일관 그렇게 정중하게 진행될 리 만무하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각각의 취약점이나 어릴 적 정서적 후유증을 기어코 끌어내며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가기 시작한다. 서서히 언성이 높아지고 자극적인 꼬투리를 잡으려 혈안이 된다.

격화될 기미를 보이자 루이스는 프로이트의 건강이 염려되고, 프로이트는 루이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모종의 사정으로 둘만의 대화는 밤늦게까지 계속될 운명이다.

1939년 9월 3일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스틸
ⓒ (주)트리플픽쳐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상상 속 대담은 시간 배경으로 인해 더 극적이다. 영화 속 그들의 만남은 1939년 9월 3일이다. 이 날짜는 작품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된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시대 상황과 사적 실존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조합이다.

이틀 전, 1939년 9월 1일은 공식적으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날이다. 나치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그 날이다. 영국이 독일에 전쟁 중단을 촉구하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다. 48시간 최후통첩이 두 사람이 만나던 날 시효를 다한다. 두 번째 세계대전이 내려앉던 순간에 둘은 토론 배틀을 벌이게 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고작 1년 전, 평생 살던 오스트리아에서 영국으로 건너왔다. 유대인 혈통 때문이다. 떠날 기회를 얻지 못한 동생들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명성 덕분에 궁핍하거나 외면받진 않더라도 평생 살던 고향에서 고령에 목숨 건 탈출 후유증이 가벼울 리 없다.

루이스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후유증으로 고통당한다. 루이스의 PTSD 문제도 만만찮다. 그런 가운데 다시 전쟁이 터졌으니 대화 틈새로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 깃들 수밖에 없다.

전쟁의 징후는 중반에 잘못 작동된 비상상황 경보로 이들이 교회 지하실로 대피할 때, 대화 중간 끼어드는 전시 라디오 방송 내용으로 강화된다. 런던 하늘을 가득 덮은 공습 대비 기구들, 프로이트를 짜증이 나게 만든 루이스의 지각을 초래한 노약자 교외 대피 관련 교통체증 같은 배경 또한 거든다. 실내극에 가까운 구조로 진행되지만, 살짝 스치는 세계대전의 징후 고증과 당대 런던의 재현은 정밀도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가상의 대담 이후 단 3주가 지나 공식적으로 프로이트가 사망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치료 불가능한 암을 앓고 있어 사실상 시한부 인생이던 그는 주치의의 도움으로 '조력사'를 택한다. 이미 자신의 최후를 결정했다는 암시가 수시로 등장한다. 프로이트의 생애를 안다면 이 토론의 무게감이 얼마나 묵직한지 체감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태도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스틸
ⓒ (주)트리플픽쳐스
영화에는 둘의 논쟁을 격화시키고 대미를 장식하는 캐릭터, 프로이트의 막내딸이자 아버지의 연구를 보조하며 심화시킨 존재로 공인된 안나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그는 아버지의 병간호가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다. 그 때문에 본인의 경력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다. 프로이트 역시 총명하고 매력적인 막내딸에게 의지한다.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떠올린다면, 이 부녀관계에 영화 속 루이스처럼 기묘한 혐의를 부여할 만하다.

관련해 의미심장한 언급이 등장한다. 공습경보로 피신한 교회에서 루이스는 프로이트를 반쯤 놀리며 교회에 장식된 성인들의 그림을 물어본다. 사제가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하는 것을 프로이트는 틀렸다고, 사제가 그것도 모르냐며 면박을 주는 대상은 '성 딤프나'다. 기독교 초창기, 이교도 부족장의 딸로 태어나 신앙에 귀의했다가 아버지에 살해당한 존재다. 딤프나의 아버지는 딸에게 그릇된 욕망을 품었다고 전해진다. 전승은 후반 논쟁과 기이하게 결합한다. 그런 상징과 은유가 지적 흥미를 자극한다.

프로이트의 자택은 그의 학문적 위업처럼 온갖 서적과 수집품으로 가득하다. 무신론자 집인데 종교적 상징물이 참 많다. 그중 그리스 신화의 불화 혹은 비판의 신인 '모무스(모모스)' 가면이 유독 돋보인다. 분쟁을 조장하는 존재라 신화에 의하면 다른 모든 신의 합의로 올림포스산에서 쫓겨났다는 '모무스'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도 경청해야 한다는 토론의 기본을 표상한다. 둘은 끝내 모무스를 긍정하며 어두운 시대의 찰나를 빛으로 채운다. 곧 죽음을 앞둔 노학자는 토론 상대에게 한 줄의 덕담을 남긴다.

"오류에서 오류로, 우리는 온전한 진실을 발견한다."

영화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차라리 2인극을 유지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주 옆길로 새곤 한다. 너무 많은 욕심을 낸 셈이다. 헛헛함은 안소니 홉킨스와 매튜 구드,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 호흡, 화면 가득 넘실대는 현대인의 필수교양으로 상쇄하며 관객 각자가 채워야만 할 테다. 그러나 작품의 본령, 두 지성의 치열하지만 사려 깊고 수준 있는 대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작금 한국 사회에서 영화 속 주인공들의 품격 있는 토론과 상호존중은 과연 가능할까?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작품정보]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FREUD'S LAST SESSION
2024 | 미국 | 드라마
2024.08.21. 개봉 | 109분 | 15세 관람가
감독 맷 브라운
주연 안소니 홉킨스(지그문트 프로이트 역), 매튜 구드(C.S. 루이스 역)
출연 리브 리사 프라이스(안나 프로이트 역), 조디 발포어(도로시 역),
올라 브러디(제니 무어 역)
원작 마크 세인트 저메인, [라스트 세션]
수입 ㈜디씨드
공동수입/배급 ㈜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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