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동물'과의 공존 넘어 동물로서 저항하는 907기후정의행진

이윤경 2024. 8. 2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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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저항하는 동물들의 행진에서 만나요

[이윤경]

올해도 어김없이 '907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다. 매년 참여했지만 올해는 조금 색다르게 다가온다. 907기후정의행진에서는 지금껏 가시화되지 못한 비인간동물의 목소리를, 동물해방의 목소리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기후정의운동 내에서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의 공존이라는 과제는 중요하지만, 지금껏 충분하게 논의되지 못한 점도 분명하다. 비인간동물은 여전히 야생동물, 전시동물, 실험동물, 반려동물, 축산동물이라는 이름으로 시장경제논리에 의해 상품화되고 착취당한다.

'동물' 앞에 '야생', '전시', '실험', '반려', '축산'이라는 명사를 붙이지 않으면 비인간동물의 존재감은 지워지고 만다. 그들의 삶이 그 '명사'로만 설명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인간동물의 삶을 주변화하고 인간중심적인 관점으로 명명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문산 난개발 중단 및 시민의견 수렴 촉구
ⓒ 대전충남녹색연합
대전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편에 서는 이들이 있다. 난개발의 중심이 되고 있는 보문산은 전국의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케이블카와 전망타워 조성 사업에 대전시가 열을 올리고 있다. 케이블카는 검증된 경제성이 없을 뿐더러 이미 설치된 전국의 각 케이블카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대전시장이 케이블카와 전망타워 조성으로 '노잼 도시 탈출'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수립한 것 또한, 이 글을 쓰고 있는 대전 토박이 청년으로써 보문산을 훼손하는 것이 '노잼 도시 대전'이라는 타이틀에 그 어떠한 유의미한 영향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경제성의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 많은 생명이 보문산에 여전히 서식한다. 하늘다람쥐, 삵, 노랑목도리단비, 수리부엉이 등 다양한 비인간동물이 살아가지만 보문산에 이렇게 많은 생명이 살아간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드물다.
 세종보 재가동 중단 및 물정책 정상화를 위한 천막농성
ⓒ 대전충남녹색연합
최근에는, '세종보 천막농성장 100일 투쟁 문화제'에 다녀왔다. 세종보 재가동을 막기 위해 활동가들이 천막농성을 펼친지 100일이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었다. 매일매일 세종보를 지키는 이들이 공유하는 다양한 생명의 사진과 기록을 보며 강이 흐르도록 두는 것이 얼마나 강을 생명력이 넘치도록 만드는 일과 직결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종보 천막농성장 근처에는 고라니, 흰목물떼새, 수달, 오소리, 흰수마자 등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다. 활동가들과 천막농성장을 방문하는 이들은 강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발견하기만 하면, 환호와 탄성을 내지른다.

만약 세종보를 재가동하게 된다면 강의 흐름은 막힐 것이며, 모두의 생명에 치명적인 녹조가 창궐할 것이다. 그곳을 방문하고 천막농성을 지키는 이들은 세종보 재가동을 중단하는 일이 많은 생명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기후재난으로 인한 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나는 '난민'하면 터전을 잃고 죽어가는 비인간동물, 그리고 보문산이 마침내 개발됐을 때, 세종보가 재가동됐을 때 '난민'이 될 수도 있을 생명들이 떠오른다. 인간이 서식지를 터무니없이 넓히기 시작했던 아주 오래전부터 비인간동물은 난민화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최근에는 기후재난까지 덮치면서 그들의 고통은 배가 됐다. 우리는 기후가 뜨거워지면 에어컨 아래로 대피할 수 있지만, 그들은 인간중심적이고 폭력적으로 설계된 도시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다.

과연 그들을 단순히 '야생동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할까? 인간의 관점으로 비인간동물의 이름을 명명하는 것도 그 동물의 삶을 모두 대변할 수 없기에 위험한 작업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에 의해 터전을 잃고 생명을 위협받는 삶이라면 '야생동물'이라는 이름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도축장의 비질활동(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정치적인 집단행동)으로 만난 돼지 한 명
ⓒ 이윤경
한편으로는 '비인간동물'의 이름으로 숱하게 불리워지고 명명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고기'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식탁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이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을 '축산동물', '축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학살의 현장을 은폐한다.

단 한 번이라도 축산단지라고 불리는 현장을 다녀온다면, 그곳이 '학살공장'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돼지의 비명소리를 현장에서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목소리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투쟁의 목소리로 들렸다.

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폭염과 같은 기후재난 속에서도 목숨을 잃는 것이 당연하며, 그러한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외치는 음성들마저 인간의 관점에서 '예쁘고', '귀엽고', '충성스러운'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살해당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목소리는 지워진다. 그리고 그 고통은 오로지 비국민 인간동물인 이주민 노동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우리는 우리를 인간'동물'로 인지하지만 정말 우리가 그들의 관점에서도 인간'동물'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을까? 어떤 자리와 위치에 있다는 것은 사회구성원의 환대와 인정이 필요하지만, 기후재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이라고 인정하는 존재를 지구적이고 생태적인 관점으로 넓혀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구성원이 아닌 지구구성원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학살자,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생태계의 일원이라고 볼 수 없는 '비동물인간'으로 보일지 모른다.

이제는 지구구성원의 관점으로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배제되고 지워지는 존재는 누구인지, 기후정의운동 안에서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축산업의 전환이 아닌 '철폐'를 외쳐야 한다. '학살피해동물'은 오로지 '고기'로 상품화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축산업의 전환'이라는 문장이 과연 어떻게 들릴까? 우리가 정말 지구구성원의 동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비인간동물과의 공존을 넘어 인간종 중심주의의 탈피와 종차별주의의 철폐가 필요하다.

더이상 인간중심적인 관점으로의 주먹구구식 대응으로는 자본주의-가부장체제, 자본주의-제국주의와 같은 착취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함께 다른 존재의 생명을 뽑아내고 착취하여 만들어진 이 시스템에 저항하자. '비인간동물'과의 공존을 넘어 인간종 중심주의의 탈피를 외치자. 동물로서 저항하여 학살과 착취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존재들과 907기후정의행진의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동물들의 행진'에서 만나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이윤경'은 대전녹색당원이며, 동물권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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