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일 뿐이다
[김석]
▲ 2023년 9월 23일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9.23기후정의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남영역 방향으로 행진 중 바닥에 눕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올해도 9월 기후정의행진이 있습니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고 하고 있습니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 우리 삶을 송두리째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기후위기에 맞설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후위기가 지금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때문에 야기되고 있는 면이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윤을 낼 수 있어야 뭐든 돌아간다고 믿는 세상에서,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들이, 돈 있는 이들이 에너지를 맘껏 쓰면서 다시 돈을 법니다. 그렇게 불평등은 더 커지고 온실가스를 뿜어대는 화석연료 소비는 줄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바꾸자
이러한 세상에서, 온실가스 배출에 그닥 책임이 크지 않은 이들이 기후위기, 기후재난의 우선적이고도 치명적인 피해를 떠안고 있습니다. 폭염 속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 농민들,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놓을 공간도 부족한 쪽방 내에 갇히다시피 여름을 나야 하는 빈곤층에게 폭염은 그야말로 재난이었습니다. 산업화에 뒤처져 화석연료를 써서 온실가스를 배출할 여력도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 해수면 상승에 시달리고, 가뭄과 홍수에 매년 큰 피해를 입습니다.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은 그래서 세계 기후운동의 중요한 구호 중의 하나였습니다. 노동자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먼저 세 가지 사례를 듭니다. 첫 번째는 방금 말씀드린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일 뿐이다'는 말입니다. 새삼스럽게 계급투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정원 가꾸는 것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불평등한 세상이 초래한 기후위기에 대해 제기하지 않고서, 이를 바꾸기 위한 공동의 싸움을 만들지 않고서 환경보호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했던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는 결국 아마존 벌목 기업의 사용자들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세 번째는 '죽은 행성에는 일자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노천 채굴을 위해 산꼭대기를 폭파하는 것에 맞서 싸웠던 미국의 환경운동가 주디 본즈의 말입니다.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기득권을 둘러싼 논란은 큰 의미가 없음을 이야기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명제는 노동자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줍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노동자에게 일자리는 삶입니다. 나와 가족의 삶과 미래를 지켜주는 일자리는 그만큼 노동자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나 내 일자리 지키는 데 정신이 팔려서 우리 공동체가, 우리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내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세상 무너지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해서는 내 일자리 역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2023년 9월 12일 탈핵부산시민연대가 부산시청 광장에서 923기후정의행진 부산추진위 릴레이 기후정의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
ⓒ 김보성 |
많은 노동자들이 이제 일터에서, 지역사회에서 기후위기에 맞선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몇 년 전부터 벌이는 녹색단체협약 캠페인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에 기후정의를 불어넣기 위한 것입니다. 내 사업장과 내가 종사하는 산업 자체가 녹색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단체협약을 통해 쟁취하겠다는 것입니다. 갈 길은 아직 멉니다. 시간이 많지도 않습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나서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907 기후정의행진에 함께하는 이유입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기후정의를 외치고 함께 나설 수 있도록 일터에서, 지역에서, 기후정의행진을 알리고 함께할 것입니다.
2025년 말이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본격화됩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화석연료 에너지 산업의 중단과 재생에너지 산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합니다. 발전 노동자들은 내 일자리 지키겠다고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가로막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폐쇄에 동의하고 기후위기에 함께 맞서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그 어떤 실효적인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산업을 대폭 확장하겠다는 그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개발과 이윤 추구의 관점에서 바라볼 뿐입니다. 정부는 현재 우리나라 해상풍력발전의 90% 이상을 외국투기자본과 대기업들에 내주고 있습니다.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산업 투자는 극히 미약합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폐쇄하지만 재생에너지 산업은 사기업에 내주고,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올해 907 기후정의행진은 공공 재생에너지 산업의 확대와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전력 적자의 이면에서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 있는 에너지 사기업들에 곧 에너지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재생에너지 영역을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에너지 전환이 에너지 민영화이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907 기후정의행진에 발전 노동자들도 앞장설 것입니다. 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 그것이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고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석 님은 민주노총 정책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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