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보수적인 도시, 녹색당을 다수당으로 만든 사건
[박제민 기자]
▲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공사현장 |
ⓒ 박제민 |
일방적인 개발 사업, 시민의 반대를 불러오다
슈투트가르트 21은 독일 철도회사인 도이체 반(Deutsche Bahn)과 독일 연방 교통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슈투트가르트 시가 합작해서 슈투트가르트를 교통의 허브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수많은 기차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이용에 편리하도록 슈투트가르트 기차역을 지하에 새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원래 기차역이 있던 땅에는 개발 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도록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곧장 이 사업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기차역 건물을 철거해야 하고, 250년 이상된 오래된 나무를 베고 공사 과정에서 지하수가 오염되는 등 환경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막대한 재정에 대한 부담이 있고, 예산들을 꼭 이렇게 써야 하는지 등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거나 설득하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 슈투트가르트 21을 반대하는 월요시위 모습 |
ⓒ wikipedia |
▲ 2010년 9월 30일,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시위대와 경찰의 물대포 |
ⓒ wikipedia |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운동은 정치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원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소득 수준이 높고 정치성향이 보수적인 곳으로 기민련의 텃밭이었죠. 하지만 2009년 슈투트가르트 시의회 선거에서 역사상 최초로 녹색당이 다수당이 되었습니다. 2011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에서는 녹색당의 빈프리트 크레치만(Winfried Kretschmann)이 주 총리가 되는, 말 그대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녹색당이 주 정부를 주도하는 것 또한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죠. 2012년 슈투트가르트 시장 선거에서도 녹색당의 프리츠 쿤(Fritz Kuhn)이 시장에 당선되었습니다.
▲ (왼쪽부터) 녹색당 소속으로 당선된 빈프리트 크레치만(Winfried Kretschmann)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 총리(2011년~현재)와 프리츠 쿤(Fritz_Kuhn) 슈투트가르트 시장(2013~2021년 재임) |
ⓒ Stuttgarter Nachrichten |
슈투트가르트 21 철도 프로젝트의 계약 계약에 대한 취소권 행사에 관한 법안(S 21 취소법)에 동의하십니까?
'예'에 투표하면 슈투트가르트 21 철도 프로젝트와 관련된 주 정부의 자금 지원 의무가 있는 계약을 취소하기 위해 주 정부가 해지권을 행사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에 찬성하는 투표를 하게 됩니다.
'반대'에 투표하면 주 정부가 슈투트가르트 21 철도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주 정부의 재정 지원 의무가 있는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해지권을 행사하는 의무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이 투표 문구는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른바 슈투트가르트 21 취소법에 대한 찬성이 41.1%, 반대가 58.9%로 나왔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단순하게 "슈투트가르트 21에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라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운동을 통해 집권하게 된 녹색당 주 정부가 주도하여 슈투트가르트 21을 계속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반대 운동은 끝난 걸까요?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월요시위에 참여하다
▲ 계속 하고 있는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월요시위 |
ⓒ 생명평화아시아 |
▲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월요시위에서 연대 발언하는 생명평화기행팀 |
ⓒ 생명평화아시아 |
기행팀이 초대를 받아 간 곳은 슈투트가르트 어느 골목에 있는 소박한 사무실이었습니다. 거기서 여전히 S 21에 반대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났습니다. 다들 머리가 희끗희끗했죠. 에어컨 없이 선풍기 몇 대가 열심히 돌아가는 그곳에서, 활동가들은 능숙하게 빔 프로젝트를 수동으로 연결하며 미팅을 준비했습니다.
▲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활동가들이 2시간 동안 열띤 발표를 해주었다. |
ⓒ 생명평화아시아 |
버티며 저항하기
월요시위도, 활동가 미팅에서도, 참가자와 활동가대부분 나이가 많아 보였습니다. 월요시위 때 한 참가자에게 젊은이들이 왜 많이 참여하지 않은지 물었습니다. 선뜻 명확한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들도 고민이 많다고 했죠. 한때는 십수만 명이 모여 항의할 정도로 큰 규모였지만, 오랜 투쟁 기간과 몇 번의 좌절과 타협 끝에 많이 줄어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비록 그 수가 적고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활동가와 시민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버티며 저항하기! 슈투트가르트에서 이 사람들을 보고 만나면서 든 생각입니다. 자연스레 제주 강정마을도 생각나고, 곳곳의 투쟁 현장들이 떠올랐습니다. 버티며 저항하는 사람들, 활동과 삶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말이죠. 또 한국의 녹색당 당원들도 떠올랐습니다. 녹색당이 시민을 대표해 의회에 진출하고, 또 영향력 있는 정당이 되길 바라면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언제가 그럴 때가 온다면 한국의 녹색당은 여기 독일 녹색당의 모습과 얼마나 닮고, 또 얼마나 달라야 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과 세계의 곳곳에서 버티며 저항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슈투트가르트를 떠났습니다. 마침내 기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녹색 도시, 프라이부르크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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