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에 영화인 300명 모여 파티, 대구영화제만의 특징"
[성하훈 기자]
▲ 대구단편영화제 정재완 집행위원장 |
ⓒ 성하훈 |
독립영화도 비슷하다. 2018년 유지영 감독이 대구에서 제작한 <수성못>이나, 2019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김현정 감독의 <입문반>, 2021년 전북독립영화제 옹골진상(대상)을 수상한 대구 이야기를 담은 감정원 감독의 <희수> 등은 대구영화의 저력을 상징하는 대표적 성과들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창작의 흐름이 계속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을 만큼 다른 대도시 지역과 비교해도 남다른 면이 있다. 지역 대학에 영화전공학과가 없는 데도 꾸준히 창작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의 창작 열기를 담아내고 있는 그릇이 올해로 25회를 맞는 대구단편영화제다. 2000년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결성과 함께 시작된 영화제는 서울 이남에서 최고의 단편영화제라는 자부심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역 개최 영화제에 독립영화제가 아닌 단편영화제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대구만의 차별성이다. 보수성이 강한 지역에서 독립영화가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것은 특별하다.
대구단편영화제 개막일인 21일 정재완 집행위원장을 만나 올해 영화제의 특징과 지역영화에 대한 고민을 들어봤다.
정 위원장은 영남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2023년부터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그래픽디자인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인터뷰 과정에서 영화인이 아니라는 점을 되풀이하며 강조했다.
▲ 2023년부터 대구단편영회제를 이끌고 있는 정재완 집행위원장 |
ⓒ 대구단편영화제 제공 |
"저는 영화인은 아닙니다. 2016년, 당시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에 계셨던 한상훈 선생님이 기획한 <Movie x Art 독립만개 포스터전>에 참여하면서부터 오오극장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로 영화제 운영위원으로도 참여했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인들 주변에 있게 됐습니다."
-지난해부터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계기는?
"영화인이 아니기에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자 지역에서 활동하는 감독님들을 마음으로 응원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초에 영화제 사무국에서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영화감독님들이 맡았던 일이었고, 그 당사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감독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화감독이 위원장을 맡으면 오히려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출품이나 심사 등에 관여해야 하니 본인의 창작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거죠. 듣고 보니, 그런 짐을 덜어 드리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영화인이 아니니 제가 감독님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한번 해보자고 마음 먹은 것입니다."
정 위원장은 이때 사무국장에게 '그럼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하고 물었다고 한다. 답변은 '개막식-폐막식에 참석해서 인사말을 해주시면 된다'는 정도였다는 것. 그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위원장을 맡았다"면서 "그런데 맡고 보니 이 자리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자리였고, 그래서 후회도 조금, 반성도 조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최고의 단편영화제 자부"
-국내 다른 영화제와 비교해 대구단편영화제만이 내세울 수 있는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을 강조할 수 있을까요?
"각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저마다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단편영화제는 전국 최고 규모의 단편영화제입니다. 올해에는 국내경쟁 1203편, 애플시네마 37편이 출품됐고, 이 중 경쟁작으로 국내경쟁 32편, 애플시네마 7편을 선정했습니다. 31편의 초청작과 함께 영화제 기간 중 70편의 영화를 상영합니다.
▲ 대구단편영화제 네트워크 파티 |
ⓒ 대구단편영화제 제공 |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단편영화제는 시작합니다. 예산이 줄어든다고 해서 만들어야 할 것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대구광역시의 예산지원이 있어 기본적인 틀은 잡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19년에 지역에서도 영상영화진흥조례가 통과되면서 안정적인 지원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영진위 지원사업 비중은 대구단편영화제 전체 예산의 30%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간 영진위 예산으로 영화제를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아쉬움이죠. 게스트 편의 제공이 부족해지는 문제도 있으나 많은 분들께서 영화제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주시는 건 힘이 됩니다. 다행히 올해에는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대구음악창작소 등 지역 내 유관문화단체들로부터 세부사업 지원을 받아서 재정에 보태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산상 가장 큰 타격은 인건비인데, 인력지원사업이 줄어들어서 현장에서 영화제를 준비하는 실무진들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현재 이런 문제는 비단 영화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분야 모두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정 위원장은 "여기저기서 정부와 지자체의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들린다"며 "개인적으로 영화 등의 문화예술을 성과를 기대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예술의 부가가치가 경제적 파장을 불러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소위 문화예술을 이익 창출이나 성과를 내는 수단으로 보는 것은 어리석다"라고 단호하게 비판했다.
-올해 예산은 지난해 대비해서 어느 정도 되나요?
"약 30% 정도 줄어든 예산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체 예산은 1억 정도라 부대행사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구영상미디어센터 등과 공동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하는 등 예산 절감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경쟁작과 초청작 등의 상영규모는 예년과 비슷하고, 아시아해외단편 초청 등 영화인들이 발로 뛰어 만들어낸 섹션도 많아서 상영프로그램 측면에서는 작년보다 풍성한 느낌도 드실 겁니다."
-대구는 창작이 활발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지역 차원에서 관심을 보이는 지원사업이 있나요?
"창작 활동에 비해 지역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창작 활동은 꾸준합니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가 창작지원, 제작지원, 장비지원, 인력교육 등 일당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다른 지역같으면 영상위원회 등이 감당해야 할 일까지도 한 기관이 모두 담당하고 있어서 업무과중이 크다고 합니다.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도 영화제 운영, 교육과정 운영, 상영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지역 독립영화제의 관객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대구는 어떤가요?
"아직까지 작년 대비 크게 늘어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구는 창작자 중심으로 독립영화 신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비평 영역과 관객운동 영역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면이 있습니다. 영화제를 하나의 문화 또는 축제로서 즐기려는 시민들이 적게나마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좀 더 깊게 독립예술영화를 응원하는 두터운 관객 저변 확대를 고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25회 대구단편영화제 포스터 |
ⓒ 대구단편영화제 제공 |
"영화제는 영화인들의 잔치면서 동시에 관객의 잔치입니다. 영화와 시민의 거리가 더 좁혀지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변에 물어보면 대구단편영화제를 모르는 시민도 많아요. 먼저 그들에게 대구단편영화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을 찾아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의 매력을 시민들에게 더 알려야 합니다. 대구단편영화제는 공원과 광장에서 인디 뮤지션과 협업 공연을 연다거나 젊은이들이 찾는 카페나 식당에서 디자이너들이 만든 단편영화 포스터를 전시(diff n poster)하는 등 영화와 시민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이고 있습니다. 훌륭한 관객이 훌륭한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대구단편영화제가 훌륭한 관객이 모이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집행위원장으로서 각오 또는 관객이나 영화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저는 영화인이 아닙니다만 대구단편영화제를 아끼고 응원하는 한 시민으로서 활동한다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영화제를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영화가 없는 세상은 꿈도 현실도 거세된 곳입니다. 누구든지 오오극장을 후원하거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를 후원하실 수 있고, 영화제에 크고 작은 물질적 정신적 스폰서가 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제를 지킬 수 있는데, 대구단편영화제가 지속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단편영화제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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