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즐거운 갈등, 공존의 기술

조영철 2024. 8. 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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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아저씨, 보수예요? 진보예요?"질문은 당돌했고 대답은 당황했다.

정치적 성향에 대한 청소년들의 질문은 이념 갈등이 진영에서 개인과 가정으로 사회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우리 사회 갈등 가운데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정치 성향에 따른 남녀 교제 의향에 대한 답변은 보수와 진보 사이 갈등을 더 극명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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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냐 진보냐"는 청소년의 질문
사회갈등 공론의 장으로 나와야
열린사회로 가는 시너지 될 수 있어

"기자 아저씨, 보수예요? 진보예요?"

질문은 당돌했고 대답은 당황했다. 필자가 한국신문협회 회원사 기자들이 일선 초·중·고교를 방문해 미디어 교육을 하는 ‘기자 진로 탐색’ 초청 강사를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순간이었다. ‘기자 진로 탐색 프로그램’은 스마트폰 시대 청소년들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을 위주로 하는데 정치 이념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한다. ‘역대 어느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느냐’며 직접적으로 묻는 학생도 있다. 정치적 성향에 대한 청소년들의 질문은 이념 갈등이 진영에서 개인과 가정으로 사회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우리 사회 갈등 가운데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국민 3950명(19~75세)을 면접 조사해 지난 4일 발간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 방안(Ⅹ)’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정치 성향에 따른 남녀 교제 의향에 대한 답변은 보수와 진보 사이 갈등을 더 극명하게 드러냈다. 응답자의 58.2%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결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종교적 이유나 성격 차이가 아니었다. 응답자의 10명 가운데 3명은 정치 성향이 다르면 친구·지인과의 술자리도 갖지 않는다고 답했다. ‘갈등 공화국’ ‘갈등의 블랙홀’에 이어 ‘심리적 내전 상태’라는 자극적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야말로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진단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갈등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온 형국’이다.

그러면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한 모든 갈등은 나쁜 것이고 사라져야만 할까? 갈등이 없으면 반드시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 가정에서도 가족 사이의 갈등은 항시 있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끝없이 다원화하는 21세기에 통합만을 강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갈등이란 잘 못 다루면 회복하기 힘든 심각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선, 사회 ‘갈등’을 단순한 분열로 보는 시각부터 넘어야 한다. ‘agree to disagree’라는 표현이 있다. 갈등도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갈등은 침대 밑으로 숨겨두면 안 된다. 밝은 공론의 장으로 갖고 나와 마주 보며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숙의의 과정이야말로 더 나은 사회로 변화하는 시너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분단기 내부 갈등을 원동력으로 열린 사회를 만든 베를린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은 우리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이 책의 공동 저자 이진(재독 정치문화학자)은 사회 갈등을 관리하는 과정이 새로운 사회로 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며 이를 ‘갈등 능력’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정부와 정당을 포함한 정치사회의 역할과 소수의 의견도 끝까지 경청하는 시민사회의 성숙함이다. 지금 우리에겐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여러 갈등을 ‘즐거운 갈등’으로 승화시킬 ‘공존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제 ‘기자는 보수냐 진보냐’라고 질문한 청소년에게 나의 답을 보낸다. "새는 좌·우 두 날개로 균형 있게 하늘을 날고 있단다."

조영철 오피니언팀장

조영철 기자 yccho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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