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상속증여세법으로 공익재단 족쇄[날개 꺾인 공익법인]

세종=이은주 2024. 8. 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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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규제로 재원 확보 어려워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5%'룰 개정 필요

과도한 규제로 공익재단의 재원 확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의 ‘5%룰’ 개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미 우리나라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출집단) 소속 공익법인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행사를 제한해 편법 지배 우려를 상당 부분 덜어낸 만큼 높은 수준의 세 부담 규제는 과하다는 진단이다. 현행 상증세법은 상출집단 소속 공익법인에 주식 출연 시 증여세 면제 한도를 5%로 제한하고 있다.

재계는 기업 공익재단 관련 규제가 민간 기부 활성화를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2일까지 공시대상기업집단 88개 그룹 소속 219개 공익재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 공익법인 제도개선 과제 조사' 결과를 지난 13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 공익재단의 절반이 넘는 61.6%는 상속·증여세법,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기부금을 기반으로 한 기업 공익재단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했다.

1991년 공익재단 주식 보유 비과세 규제 신설…기업 편법 지배 방지

우리나라 공익재단에 비과세하는 주식 증여에 한도가 생긴 건 1991년 이후다. 대기업 대주주가 공익법인 출연 주식에 대해서는 상속세나 증여세 부담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내국법인에 대한 우회적인 지배 수단(편법적인 승계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편법 행위 방지를 위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상증세법에서 세금을 내지 않고 증여를 받을 수 있는 한도가 신설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규제 강도는 점차 높아졌다. 1991년에는 공익재단이 세금 없이 증여받을 수 있는 주식 보유 한도를 20%까지 규정했었지만 1994년에는 한도가 5%로 줄어들었다. 2007년 말에는 법을 개정해 성실공익법인만 10%로 완화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에 상출집단과 특수관계가 있는 성실공익법인에는 주식보유 한도를 10%에서 5%로 하향 조정하는 등 규제의 강도를 다시 높였다. 그러다가 2021년부터는 성실공익법인과 일반 공익법인의 구분을 폐지했고, 기본적인 보유 한도를 10%로 하되 일정한 요건을 위반한 경우 5%로 맞췄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엔 ‘5%룰’ 적용…재벌 대기업엔 강력 족쇄

현행 상증세법은 특히 상출집단 소속 공익법인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재벌 대기업’은 소속 기업재단에 주식을 출연할 때 예외 없이 5%까지만 비과세 증여가 허용된다. 나머지 기업들에는 차등적으로 10~20%가 적용된다. 일반 공익법인은 10%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주식을 증여받을 수 있다. 자선·장학·사회복지 목적의 공익법인은 의결권 불행사를 전제로 20%까지 한도를 적용받는다. 상출집단 공익법인에 증여세 부담이라는 강력한 견제 장치를 부여해 공익재단을 통해 상출집단 기업 주식을 취득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물론 증여세를 납부하면 공익재단은 5% 이상 계열사 주식을 증여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배당 이익을 얻는 등 활동에 필요한 재원을 좀 더 확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추가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증여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의 ‘공익법인 활성화를 위한 상속세제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상출집단에 5%룰이 적용된 이후 계열회사에 대한 공익법인 지분율이 5% 미만인 회사가 대부분(71.1%)이다.

박창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대부분 공익법인은 재원이 넉넉지 않은 게 현실인데, 5% 이상을 증여받아 세금을 내려면 결국 (증여받은) 주식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총수 일가가 현금을 출연할 경우엔, 일가가 현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주식 등을 정리할 것이고 이 경우 양도세를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그 때문에 5%룰이 주식출연 제한 요건으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2020년 공정거래법 의결권 제한 규정 신설…세계 유일무이 규제

여기에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규제도 강하게 작동한다. 공정위는 2020년 말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공익법인이 국내 계열 회사 주식에 대해 원천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2018년 6월 공정위가 실시한 공익법인 운영실태 조사·분석 결과에 따라 공정위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165개(2017년 말 기준) 대부분이 세제 혜택을 받고 설립된 후 총수 일가가 이사장 등 직책을 통해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예외적인 경우(임원 임면, 정관 변경, 합병 등)에만 특수관계인과 합산해 15%까지만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공익법인이 계열사의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해 놓은 것이다. 박 변호사는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기업의 우회지배 위험이 사실상 차단됐다”며 “그런데도 상증세법은 그대로여서,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이 없던 시기에 기업 우회 지배 방지 목적에 따라 규정된 한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작동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다.

미국 20%, 일본 50%, 독일은 ‘무제한’ 인정

대다수 국가가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하는 경우 면세 범위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는 상황과 대조된다. 미국은 비영리법인이 의결권 있는 주식의 2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그 초과분에 대해서 연방세를 부과한다. 독일은 공익법인의 주식 취득이나 보유에 대한 제한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일본은 출연 대상 법인의 주식 50%까지 비과세를 적용하고 있다. 스웨덴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주식 소유 한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또한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해외 주요 국가들은 공익법인 활동의 공익성을 철저히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미국은 국세청이 공익성 검증 절차를 통해 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익법인을 철저히 테스트한다. 조직테스트와 운영 테스트를 수행해 살아남은 재단에만 면세 혜택을 적용한다. 일본 또한 공익성 심사를 통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익재단을 까다롭게 선별한다. 학술, 기예, 자선, 종교 등 목적의 공익사업을 수행해야 하고 공익목적사업의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하는 등 꽤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면세 혜택을 관대하게 넓힌 만큼 이전된 재원이 공적인 활동에 잘 쓰이도록 촉진하는 규제를 하는 것이다.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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