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송정쟁의 늪' 빠진 과방위…AI 등 과학기술법 논의는 '0'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개최한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관련 ‘방송장악 3차 청문회’는 또 파행이었다. 여당 의원들은 20분 만에 “위법 청문회”라며 퇴장했고, 야당 의원들만 자리에 남아 반쪽으로 진행됐다. 탄핵 소추된 이진숙 방통위원장도, 직무대행인 김태규 부위원장도 출석하지 않았다. 야당은 “국회를 우습게 보고 국민을 모욕한다”(한민수 민주당 의원)며 두 사람을 고발하는 안건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기 전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과방위를 민생과 밀접한 과학 관련 일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고 성토했다.
실제 22대 국회 들어 국회 과방위는 3개월간 18차례나 전체회의를 열었다. 국회 상임위원회 중 최다횟수 개최였다. 하지만 싸움판만 벌어졌다. 특히 방통위 2인 체제의 실효성 여부, 공영방송 이사 선임 등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쟁이 반복됐다. 여당 간사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화와 협치가 사라진 대표 상임위가 돼 버렸다. 민생을 위해 보여준 게 없어 국민께 면목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3개월간 18차례 전체회의의 총 시간은 112시간 46분이었다.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해 처리된 법안은 고작 4개였는데, 이른바 ‘방송 4법' (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었다. 공영방송 이사진 확대와 방통위 의결 방식을 바꾸는 내용이었다. 민주당 단독으로 본회의까지 밀어붙였지만, 지난 13일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 막혀 수포로 돌아갔다. 합의 처리된 법안은 당연히 하나도 없었다. 결국 ‘성과 제로’였다.
전장이 ‘방송장악 대 방송정상화’에 매몰되면서 피해는 엉뚱한 곳에서 생겨났다. 과학기술 관련 법안이 철저히 등한시된 것이다. 개원 후 21일까지 113건의 법안이 과방위에 계류됐으나, ‘방송 4법’을 제외하고는 단 한 건도 논의되지 못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본법, 소프트웨어진흥법, 전기통신사업법 등 과학기술 산업 육성에 필수적인 법안이 휴면 상태에 들어갔다. 휴대전화 구매비용을 낮출 단통법 폐지도 여야 이견이 없지만, 법안 심사는 감감무소식이다.
국회 과방위에는 두 개의 법안소위가 있다. 과학기술원자력 법안소위와 정보통신방송 법안소위다. 둘 다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통상 소위에서 법안을 심도 있게 논의한 뒤 전체회의에서 결정해야 하건만, 염불(법안)보다는 잿밥(자기편 방송)에만 관심 있는 터에 전체회의만 뺑뺑이 돌리듯 연 셈이다. 국회 과방위는 방통위 외 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와 우주항공청,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다. 연간 25조원 안팎의 과학 분야 연구개발(R&D) 예산 심사라는 과방위의 핵심 기능도 정지상태다.
22대 국회가 여야 충돌이 가팔랐지만 유독 과방위 행태는 심하다. 개원 후 7차례 전체회의를 개최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21일 전체회의를 열고 여야 합의로 전세사기 특별법과 택시기사 월급제 유예안을 처리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도 전체회의는 아니지만, 지난 20일 소위에서 소재부품 장비 산업법 특별회계 연장과 도시가스 요금감면 근거를 신설한 도시가스사업법 등을 처리했다.
이처럼 과방위가 공영방송을 두고 끝 모를 충돌을 이어가자 아예 과학 분야와 방송분야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과방위 소속의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과방위를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와 미디어위원회로 나누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 의원은 “전체 소관 기관은 81개에 달하지만, 이 중 10%에 불과한 방송과 통신 영역 8개 기관에 모든 이슈가 집중되면서 과학기술 법안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안철수 의원도 “방송 이슈로 여야 간 극심한 대립이 이어지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입법 논의가 소홀해지고 있다”고 동조했다.
과방위는 여태 소관 기관의 업무보고도 받지 못했다. 다만 여론의 뭇매가 이어지자 부랴부랴 법안 심사에 나설 참이다. 오는 26일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와 함께 계류된 법안을 상정한 뒤 다음 달 초 법안소위를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여야가 싸울 때 싸우더라도 법안을 심사할 소위는 정상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그게 국회법의 취지”라며 “과방위원장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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