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관계는 신비다

2024. 8.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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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외로움이 깊어진 사회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슈가 된 지 오래됐다. 외로움은 우울증 자살 정신질환 심지어 교통사고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개인의 고립은 더 깊어진다. 혼자 지내는 법은 아무리 익혀도 낯설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도록 디자인돼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와 너와의 관계에서 사랑이 일어난다. 사랑의 대상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외로움의 끝에서 찾아오는 공허감이 깊어지면 우울해진다. 성공은 했지만 외로운 리더들이 많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자리에 앉아 있지만 외로움에 지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인생도 많아지고 있다. 외로움은 치명적이다. 깊은 외로움은 죽음에 가까운 경험이라고 한다.

요즘은 주변에 관계하는 사람이 많아도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것만으로는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함께 있어 외로운 삶은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요즘은 가족 간에도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핵개인화 현상이다. 소통은 고사하고 감정적 교감이 끊긴 상태에서 서로를 끌어당기기보다 밀어낸다. 살가운 우정이 사라졌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피상적 ‘함께함’은 폭력성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관계성의 문제로 몸살을 앓는 시대다. 소통은 고사하고 적대적 관계들이 늘고 있다. 혹자는 이를 문명의 대가이거나 일명 문명병이라고도 한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이 본 최악의 질병은 외로움이라고 한 적이 있다. 외로움에 지쳐 어디론가에 빠져들면 거기엔 각종 중독이 도사리고 있다. 중독은 외로움에 대한 빗나간 도피다.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는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속박이다.

현대인들은 더 바빠진다. 스스로 분주한 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다. 이는 외로움에 대한 도피극이며 그 끝은 더 위험한 벼랑 끝이다. 외로움을 위한 나만의 도피처는 없다. 안전한 도피처가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다. 나와 너의 만남이 일어나는 곳이다. 나만의 체온으로는 냉혹한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누군가와 손을 맞잡을 때 그 터치를 통해 나를 자각하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너로 인해 인식된다. 그것이 본래 인간의 삶이다.

나와 너와의 터치에서 삶의 의미가 생기고 사랑의 꽃이 피어오른다.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손이 닿을 때 사랑을 느끼고 심장이 뛰고 성장이 시작된다. 눈과 눈이 마주치며 감각을 익히고 언어를 배워가며 사람이 돼간다. 라인홀드 니버가 말한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가 진정한 삶이다.

안타깝게도 함께하는 삶이 매우 희소해졌다. 어렵고 힘든 삶은 언제나 있었다. 미래학자들은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다양한 전망을 내놓는다. 과연 무엇이 가장 힘든 것일까. 홀로 있는 삶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보다 함께하는 삶에 대한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는 듯하다. 차라리 혼자가 낫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관계가 두려움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관계 안으로 들어가려면 난관을 거쳐야 한다. 까다롭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나 홀로보다 함께함이 주는 유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삶을 나눈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다. 환상적인 관계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갈등과 부조화의 벽을 치열하게 통과해야 한다. 나와 너의 연결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우정을 쌓아갈 때 활기 있는 생명 공동체가 된다. 나만의 삶에서 ‘나와 너’의 삶으로, 싱글에서 듀엣으로, 듀엣에서 트리오로,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하모니 안으로 들어가는 공동체적 삶이 망가진 세상의 유일한 대안이다.

가족과 교회, 원초적 공동체 안으로 연결되고 참여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최고의 보장이며 고통에 대한 지혜로운 대비다. 삶이 힘들어질수록 하나가 아니라 둘, 그리고 둘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의 공허를 메꿔야 한다. 행복은 관계 안에서 조금씩 새어 나온다. 관계가 무시된 복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 미래학자인 레너드 스위트의 말처럼 관계는 신비다. 그 안에 무궁한 보화가 숨겨져 있다.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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