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시기 놓친 대출 규제

권기석 2024. 8. 2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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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금융 소비자의 이익과 가계대출 관리는 둘 다 중요한 일이어서 어느 정도 '시소 타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지금 국면에서 당국의 결정적 실수는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돌연 연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금융 당국은 다음 달 시행하는 스트레스 DSR 2단계에서 더 강한 대출 규제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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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 경제부장


지난 4월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장 뒷줄에 앉아 있던 A사무관을 지목하며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고 했다. 금융위원회의 ‘대출 갈아타기’ 성과를 보고받은 뒤 정책의 아이디어를 낸 A사무관을 직접 치켜세운 것이다. 은행별 대출 금리를 비교해 더 낮은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게 한 서비스가 호평을 받고 있던 때였다. 이 장면만 기억하면 정부 금융 정책의 방점은 ‘금융 소비자의 이익’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4개월여가 지난 지금 ‘금융 소비자 이익’은 뒷전으로 밀려 있다. 5대 은행은 지난달부터 줄기차게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시장 금리가 떨어져 예금 금리는 내리면서도 대출 금리는 올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 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건 이제 우선순위가 아니다. 지금 정책의 방점은 사상 최대로 늘어난 가계대출 관리에 있다.

정부는 줄곧 ‘금융 소비자의 이익’과 ‘가계대출 관리’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지난해 1월에는 무주택·1주택자에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적용 없이 집값의 최대 80%를 4%대 금리로 빌려주는 ‘특례 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이어 7월에는 은행권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하는 것을 허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상품들의 영향으로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에 이르자 10월 정부·여당은 스트레스 DSR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가계부채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외환위기보다 수십배 더 큰 여파가 있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그랬다가 11월이 되자 정부는 금융 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낮추라고 은행권에 압박을 가했다. 당시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주 회장들에게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자 부담을 줄일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지난 2월엔 입장이 또 달라진 건지 금융위 부위원장이 은행권에 단기 이익을 위한 불필요한 경쟁을 지양하라고 경고했다.

금융 소비자의 이익과 가계대출 관리는 둘 다 중요한 일이어서 어느 정도 ‘시소 타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젊은 부부의 거주와 이자 비용을 줄여주는 게 필요하다. 내 집 마련을 하겠다는 욕구도 억누를 수만은 없다. 여러 정책 목표의 달성을 위해 때로는 금융 소비자 이익을 앞세울 수 있고, 때로는 대출 규제를 앞세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과 일관성이다. 금융 정책이 갈지자를 그렸어도 그 기준이 명확했다면 그다음 스텝의 예측이 가능했을 것이다. 특정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됐다면 시장의 혼란은 최소화했을 것이다.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지금 국면에서 당국의 결정적 실수는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돌연 연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이 제도를, 금융위는 시행 일주일을 앞두고 지난 6월 말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금 수요가 긴박한 서민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연착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시장은 당혹스러워했다. 정책의 방점이 갑자기 ‘금융 소비자의 이익’으로 돌아선 이유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성이 사라진 시장에서 잠재적 대출 수요자들은 행동을 서두르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가계대출 관리 실패로 돌아왔다.

금융 당국은 다음 달 시행하는 스트레스 DSR 2단계에서 더 강한 대출 규제를 하기로 했다. 초기 치료 시기를 놓쳐 더 센 항생제를 처방하는 꼴인데 이미 병이 악화한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이달 말까지 ‘대출 막차를 타자’는 수요를 자극해 가계대출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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