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유럽연합의 미래

2024. 8. 22. 00: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EU 이사회 순회의장국인데도
러시아·중국 밀착 행보 가시화

한때 국민적 영웅이었던 총리
장기집권에 민주주의 후퇴해

소득 정체되고 민생 흔들리면
국제 무대 존재감 허상에 불과

지난 주말 부다페스트는 여전히 무더웠다. 부다성과 마차시 성당 주변, 강 건너 페스트 지역 국회의사당 앞과 자유광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 합류한 지 벌써 20년. 올해 하반기 EU 이사회 순회의장국을 맡고 있는 헝가리는 지금 러시아와 벨라루스인들에 대한 체류비자 완화 문제로 EU와 팽팽한 긴장 속에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EU 차원의 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회원국 중 친러 경향이 강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정부는 8개 제3국 국적의 국민들이 최초 2년에 이어 3년 더 연장해 체류할 수 있는 비자발급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여기에 제재 대상인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속해 있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와 발틱 3국의 외무장관들은 항의 성명을 발표했고, 일각에서는 러시아 스파이의 합법적인 장기체류 가능성으로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지역에서 헝가리를 제외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윌바 요한손 내무담당 EU 집행위원은 19일까지 설명하라는 최후통첩성 공개편지를 보냈으나, 헝가리 정부는 시한이 지났음에도 답변 없이 버티고 있다.

헝가리와 EU의 긴장관계는 이것만이 아니다. 오르반 총리는 순회의장국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우크라이나로 달려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EU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방문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잇따라 방문해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재확인했다.

문제는 오르반 총리의 방문이 헝가리 총리로서뿐만 아니라 EU 순회의장국 자격으로 비칠 수 있으며, 오르반 총리도 이런 모양새를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EU 측에서는 “EU의 대외관계는 순회의장국 의장이 아닌 EU 대외관계 최고대표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U 집행부가 바뀌는 ‘정권 교체기’에 공교롭게도 헝가리가 의장국을 맡게 되면서 제도의 허점과 EU의 불안정성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는 형편이다.

1989년 영웅광장에서 자유선거를 요구하며 소련 군대는 물러나라는 대담한 연설을 하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오르반 총리는 불과 27세의 나이에 국회의원이 됐고, 30세에 현재 집권당인 피데스(Fidesz)의 당수가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8년 35세에 처음으로 총리가 돼 4년을 집권한 다음 2010년에 다시 총리가 돼 지금까지 18년 동안 헝가리 정부를 이끌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회의주의, 애국주의, 실리 외교 및 포퓰리즘적 성격을 잘 버무려 다섯 번의 총선에서 승리하는 정치 천재로 인식된다. 2011년 헌법 개정을 통해 언론과 사법부에 대한 간섭과 견제를 강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민과 난민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인해 독일 등 다른 EU 회원국들과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거의 20년 만에 헝가리를 방문했다. 크로아티아에서 헝가리로 넘어오는 길과 오스트리아로 가는 국경 도로에는 EU 깃발과 속도를 줄여서 통과하라는 표지판만 있을 뿐 주의하지 않으면 국경을 넘는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EU 모든 회원국에서 통용되는 규칙이기에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체코나 슬로베니아가 이제는 거의 서유럽에 육박하는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데 반해 헝가리는 정체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숙소에 들어와 EU 가입 후 소득변화를 추적해 보니 헝가리의 상대적 정체가 확인됐다. 2004년 EU 가입 당시 독일을 100으로 볼 때 체코가 34, 헝가리가 30, 폴란드는 20으로 헝가리는 체코와 유사한 수준의 소득을 보였다. 그랬던 헝가리는 2023년 현재 42로 올라가 비록 EU 가입 후 독일로의 소득 수렴이 일어났지만 체코의 58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고, 과거 한 단계 아래였던 폴란드와 같은 수준에 있었다.

국민들은 EU 가입의 혜택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회의주의는 이민과 난민 문제,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좋은 방편이 된다. 지정학적 특수성과 에너지 조달의 특수성에 따른 중립외교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민생과 민주주의가 흔들리면 대외관계에서 존재감은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