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혼 갉아먹는 딥페이크 범죄, 위장수사 허용해야

2024. 8. 22. 00: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이어 인하대서 발생, 초기 수사 미온적


신분 감추고 접근 필요…단순 시청도 처벌해야


여성 사진을 토대로 불법 합성물을 만들어 유포한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건이 인하대학교에서도 발생했다. 인천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불법 합성사진이 유포된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활동한 남성 2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단체방 참여자는 1200여 명으로 추정되지만, 경찰은 아직 주범을 특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는 4명인데, 실제 피해자는 2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 상당수가 특정 학교에 몰려 있고,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됐다는 점에서 지난 5월 공개된 ‘서울대 N번방’ 사건과 닮은꼴이다. 특히 경찰이 초동 수사에 소극적이어서 피해자가 추적 끝에 피의자를 특정한 점까지 비슷하다. 전문가도 아닌 피해자가 한 일을 경찰은 미리 텔레그램의 협조를 받기 어렵다는 핑계로 포기했다. 경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수사와 처벌을 위한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불법 합성사진 만들기가 지극히 쉬워졌다. 또 텔레그램 등 해외에 있는 서버를 이용해 은밀히 유통하고, 필요하면 흔적을 말끔히 지우는 일도 어렵지 않다. 따라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수사관이 신분을 감춘 채 범죄 현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위장수사가 폭넓게 허용될 필요가 있다. 서울대 사건 당시 경찰은 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건으로만 제한된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전혀 진척이 없다. 국회에서도 지난 7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성폭력 방지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위장·함정 수사가 국민을 속이고, 일부러 범죄를 부추길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작용을 통제할 방법을 깊이 고민해 보완하면 된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손 놓고 있으면 범죄와 피해자만 양산될 뿐이다.

제작과 유포뿐 아니라 2차 가해와 단순 시청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하대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노력으로 덜미가 잡힌 용의자가 경찰에서 “사진을 단순히 보기만 했다”고 주장해 결국 풀려났다고 한다. 무분별한 유포 예방을 위해서라도 단순 시청자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헌재도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다운로드와 소지자 처벌조항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정한 바 있다.

성착취물을 직접 제작하는 것 못지않게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들고 유포하는 것도 영혼을 파괴하는 중범죄다. 피해자는 수치스러움을 넘어 인격적 살해를 당한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혹시 주변 사람이 볼까 봐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수사도 수사지만, 무심코 이런 범죄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지 시민 스스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