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이게 나라냐, 복지부 보면 나오는 한숨
무능한데 부지런하다.
의·정 갈등 국면 이후 헛발질하는 복지부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지난 2월 말 정부 의료정책에 반발해 1만명 넘는 전공의들이 사직서 던지고 병원을 떠났을 땐 벌어지지도 않은 '가짜' 의료공백을 메운다고 부산 떨며 세금 펑펑 쓰더니, 추석을 앞두고 전국 응급실이 하나둘 파행을 겪는 '진짜' 위기 앞에선 "문제없다"는 한가한 소리만 늘어놓으니 하는 말이다.
국내 중증 외상 분야 권위자인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수년 전 복지부를 일컬어 "숨 쉬는 것 빼곤 다 거짓말"이라며 강한 불신을 드러낸 이유를 알 거 같다. 문제는 이런 복지부를 향해 아무리 손가락질해봐야 그 대가는 전부 국민이 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복지부 대응책을 복기해보면 명확하다. 지난 2월 19일 복지부의 '집단행동 대비 비상진료대책'에 따르면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의 24시간 운영 철저 점검 관리, 12개 국군병원 응급실 민간인 개방 등이 나열돼 있다.
■
「 전공의 사직에 "의료공백" 압박
응급실 파행엔 "정상화 과정"
일하는 척 국민 눈속임 아닌가
」
과연 지난 6개월 동안 제대로 돼왔을까. 복지부가 철저히 관리한다던 응급실은 이미 지난 7월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전국 44곳 권역 응급의료센터 중 10곳 이상이 운영중단 위기"라고 경고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7월에만 속초의료원 응급실 운영 일주일 중단, 순천향천안병원 권역 응급의료센터 야간 운영 중단 소식 등이 전해졌다. 김윤(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408개 응급의료기관 중 24곳이 병상을 축소했다.
8월 들어선 세종충남대병원 매주 목요일 성인 응급실 운영 중단, 수원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실 축소 진료, 충북대 병원 응급실 일시 중단에 이어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인 강북삼성병원과 인제대상계백병원, 한림대강남성심병원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지방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서울마저 붕괴 조짐이다. 전공의 떠난 응급실을 지키느라 무리한 당직을 소화해온 전문의들의 피로도가 극도로 누적돼 더는 버티지 못하고 병가·휴직하거나, 이참에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은 상급병원으로 연쇄 이동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통상 명절이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환자가 응급실을 찾는 걸 고려할 때 당장 다음 달 연휴 기간 전국 응급실이 아수라장이 될 게 뻔하다. 전공의 500여명이 응급실을 떠났을 때부터 예상 가능했던 수순이고, 이제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 의료정책을 책임진 복지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복지부가 그간 내놓은 대책을 보면 헛웃음만 난다. 군 병원과 군의관을 활용하거나 PA 간호사로 대체하겠다는 게 전부인데, 진짜 해결책이라기보다 국민 눈속임에 가깝다. 복지부는 응급실 파행 얘기가 나올 때마다 “군의관 핀셋 배치” 운운했는데, 실제로는 민간 상급종합병원에 이미 파견한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군의관 5명을 "재배치"라는 말장난으로 돌려막기 하는 중이다. 또 병원 경영난에 따른 채용 중단 등으로 간호사 수가 줄어드는 와중에 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전공의 업무를 떠맡기다 보니"(대한간호협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채로 환자 안전만 위협당하고 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위기인 동시에 고질적 문제인 응급실의 경증환자 비율 문제를 개선할 좋은 기회였는데 그냥 방치했다. 그 탓에 최근 코로나 유행과 맞물려 가벼운 발열 환자까지 죄다 응급실로 몰리며 경증 비율이 예년보다 더 높아졌다. 진작 치료제를 충분히 확보하고 국민에게 제대로 안내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비판이 들끓자 마지못해 "야간·주말 코로나 환자를 위한 공공병원 중심 발열 클리닉 운영"이라는 실효성 의심스러운 방안을 툭 던졌다.
가장 심각한 건 현실부정이다. 복지부는 지난 20일 응급실 관련 브리핑에서 "일시적 진료 제한이고 완전 마비가 아닌 일부 기능 축소"라며 "전국 408곳 중 파행 빚은 곳은 1.2%에 불과한 5곳"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전공의 의존이 낮아지는) 정상화 과정의 일부"라고 했다.
전국 응급실이 문 닫는 게 위기 아닌 정상화라면 왜 지난 2월엔 국가 보건의료체계 기능이 완전 마비될 때나 발령하는 보건의료재난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상향했을까. 진짜 위기가 아니라 전공의 압박 카드였다는 걸 이제야 자인하는 걸까.
앞서 무능을 얘기했지만, 복지부가 잘하는 것도 있다. 언론플레이다. 연일 무슨 무슨 대책을 내놓으며 일을 한다고는 하는데, 살펴보면 "외국 의사 수입" 등 대부분 미봉책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아무 말 대잔치다. 세계가 부러워하던 필수의료 시스템을 망가뜨리기 전에 복지부가 먼저 해야 했을 '수가 조정'은 건들지도 않은 채 오늘도 "추진·준비·검토"를 달아 열심히 자료만 뿌린다. 지난 20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다들 이번 추석엔 응급실 갈 일 없기를 기원한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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