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푸드로드] 비선호 부위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된다면
농촌경제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돼지고기 수입은 작년 동기 대비 13.7% 증가한 32만6000t으로 약 1조7000억원에 달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입 돼지고기 중 약 30%는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삼겹살로, 작년보다 그 비중이 증가했다. 올 상반기 소고기 수입은 경기 침체로 작년 동기 대비 3.6% 감소했으나, 구이용으로 선호되는 냉장 등심, 갈비 부위는 마블링이 많아 한우와 유사성이 높은 미국산이 호주산보다 월등히 많이 수입되고 있으며 그 경향은 더 심해지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수집한 수도권 750여 가구의 40·50대 주부 패널의 ‘22년 소고기 정육상품 지출액’을 분석해 보면 수입산 소고기의 비중이 43%에 달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 해외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국내에서 식용으로 1000만 마리가 넘는 돼지를 사육하고, 350만 마리가 넘는 소를 사육하고 있는데 왜 이리도 많은 고기를 추가로 수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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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겹살 가격, 뒷다리살의 네배
육질 부드러운 부위 선호 높아
식감 좋게 하는 레시피 찾으면
외화유출 절감, 가격 인하 가능
」
우리가 소비하는 고기는 흔히 선호 부위와 비선호 부위로 나뉜다. 선호 부위는 대체로 구이용으로 적합한 부위이고, 비선호 부위는 숯불이나 불판 위에 올려 구웠을 때 질겨서 먹기 힘든 부위이다. 돼지고기의 선호 부위는 주로 삼겹살, 목살 부위이고, 소고기는 주로 등심, 채끝, 갈비, 안심이 선호 부위다.
우리가 먹는 고기는 가축의 근육이다. 그런데 움직임이 많은 부위의 근육일수록 근섬유가 상대적으로 더 두껍고 촘촘하다. 여기엔 근섬유를 묶어주고 지탱하는 결합조직들이 함께 분포하는데, 열을 가했을 때 대체로 더 질긴 식감을 만들어낸다. 이런 부위가 대체로 비선호 부위가 되고 시장 논리에 따라 가격은 선호 부위에 비해 낮게 형성된다. 예컨대 올해 8월 첫 주 돼지고기 비선호 부위인 뒷다리살은 도매가 기준 ㎏당 4500원인데 반해 삼겹살은 ㎏당 1만6000원으로 그 가격 차가 거의 네 배에 달한다.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뒷다리살은 약 13㎏으로 전체 육량의 1/6에 달한다. 모든 부위 중 가장 양이 많지만, 가격은 가장 저렴한 편이다.
삼겹살, 목살과 같은 선호 부위는 부드러운 육질로 다양한 형태로 요리가 가능하니 판매처도 다양하고 그 수요도 다양하다. 숯불로 구운 두터운 생삼겹살 구이만큼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 보쌈을 해 먹어도 맛있으며, 중국식 동파육으로도 훌륭한 재료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다양한 식재료로 활용된다. 반면에 비선호부위인 뒷다리살은 족발 이외에는 다양한 수요를 찾기 어렵고, 주로 햄과 같은 공장 가공용 원료육으로 활용된다. 즉, 기업에서의 가공 수요가 주를 이루다 보니, 수입산 가공 원료육의 가격에 따라 가격대가 형성된다. 소고기도 마찬가지다. 선호 부위는 한국식 숯불구이를 비롯하여 찜요리, 서양식 스테이크 등 다양한 형태의 요리로 다양한 판매처에서 판매되고 있다. 정육점에서는 선호 부위는 없어서 못 팔고, 비선호 부위는 싸게 팔아도 남아서 재고로 쌓인다.
가축의 마리당 생산비는 축종(畜種) 별로 대략 정해져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수요는 선호 부위로만 쏠리고 비선호 부위에 대한 수요는 적으니, 공급자 입장에서는 선호 부위의 가격을 높여서 받아야 낮은 가격에 팔리는 비선호 부위에서 오는 손실을 메꿀 수 있다. 즉, 비선호 부위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면 돼지 삼겹살, 소고기 등심 등의 선호 부위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비쌀 수밖에 없다. 역으로 말하자면, 비선호 부위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안을 개발해서 그 수요를 늘린다면, 선호 부위의 가격을 낮출 수 있고, 선호 부위를 수입하기 위해서 지출하는 비용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외치며 애국심에 기대는 한우, 한돈 소비 진작보다는 과학적 접근으로 비선호 부위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개발(R&D)이 수입 축산물을 줄여 외화 유출을 절감하고, 국민 행복 증진에 훨씬 크게 기여한다. 여기에는 비선호 부위의 질긴 식감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미생물 발효, 효소 숙성 등을 통해 단백질 구조를 변형시키는 생화학적 접근부터 텀블링, 전기 자극 장치 등을 활용한 식품·기계공학적 접근, 셰프들이 자주 쓰는 열, 염, 압력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물리화학적 접근 등 다양한 융복합적 접근이 있다.
이 복잡한 연구 결과물을 우리는 흔히 ‘레시피’라고 부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연구의 결과물을 ‘레시피’라고 하면 하찮다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비선호 부위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레시피야말로 외화 유출 절감부터 선호 부위 가격을 낮추는 효과까지 끌어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R&D는 기초과학, 최첨단 분야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통적인 산업에서의 문제 해결,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생활 밀착형 R&D도 존재하고 필요하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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