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묵의 과학 산책] 불규칙 속의 규칙
지도는 기본적으로 정보 제공이 목적인 문서이지만, 정보 제공을 떠나 어지러이 얽힌 도로망은 잘 그린 그림 같다. 도시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도로망은 네모반듯한 인위적 격자로 보이는 반면 오랜 세월에 걸쳐 생겨난 도로망은 더 자연스레 보인다. 이 불규칙한 자연스러움 속에 숨은 규칙이 있을까? 도로를 추상화하여 2차원의 면을 가르는 선으로 생각해보자. 도로들로 둘러싸인 면들은 다각형인데 계획 없이 비뚤비뚤 생겨났어도 대부분 사각형이다. 자생적 사각형의 신비로움은 면을 가르는 다른 예들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벌집은 상당히 규칙적인 육각형으로 이루어졌고, 비누 거품도 단면을 보면 정확하진 않아도 대체로 육각형이다. 도자기 표면의 아름다운 잔금이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은 사각형들의 모임이다.
어떤 경우에 사각형 혹은 육각형이 되는가는 면을 가르는 선들의 유동성에 따라 결정된다. 도자기를 구울 때나 가문 논바닥이 햇볕에 가열될 때 표면과 안쪽의 비대칭적인 열팽창으로 야기된 스트레스로 표면이 갈라지고, 일단 생긴 금은 위치를 바꾸지 않는다. 이후 생기는 금은 다른 방향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기존의 금에 수직으로 생겨 사각형을 이룬다. 도로도 금과 같이 위치가 고정되고,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곁가지 도로들이 기존 도로에 수직으로 생긴다. 반면 벌집이나 비누 거품은 생성될 때 경계가 유동적이라 역학적 평형을 찾으며 안정된 육각형 구조를 만든다. 나무 잎사귀의 수관도 굵은 것들은 위치가 고정되어 사각형 무늬를 만들고, 재배열이 가능한 미세한 수관들은 육각형을 이룬다.
초등학교 때 배우는 다각형 지식만 가지고도 불규칙 속에서 규칙을 찾고 분류하고 숙고할 수 있다. 복잡한 세상은 추상화를 통해 마음속에서 정돈된다. 중요한 것은 주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자기의 하찮은 지식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가이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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