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할 돈이 없다…고금리·고물가에 순저축률 10년만에 최저
직장인 이모(35)씨는 지난해부터 적금 등에 넣던 저축액을 매월 60만원씩 줄였다. 고물가에 당장 밥값부터 올라 나가는 돈이 많아졌고, 주택담보·신용대출의 월상환액이 늘어나면서다. 이씨는 “3년 전에는 대출금리도 낮은 데다 코로나19 여파로 소비도 줄어 저축 여력이 꽤 됐다”며 “최근에는 빚 상환에만 월급 절반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금리·고물가 국면이 장기화하자 가계 저축 여력이 약 10년 만에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물가가 오른 만큼 가계 소비지출은 커지는데, 가계가 벌어들이는 돈은 이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빚을 낸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지자 저축 여력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21일 통계청·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순저축률은 4.0%로 전년(6.3%)보다 2.3%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3년(3.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가계순저축률은 가계의 저축 성향을 나타내는 지표다. 세금 등을 제하고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소득 가운데 소비·지출에 쓰고 남은 돈의 비중을 계산한다. 쉽게 말해 이 수치가 감소했다는 건 가계가 쌓아둔 여윳돈이 줄어들었단 의미다.
가계순저축률은 코로나19가 대유행이던 2020·2021년엔 각각 11.4%·9.1%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이 시기엔 소비가 크게 위축된 영향이 컸다. 정부의 현금성 지원금이 가계 소득에 더해진 반면, 여행·숙박 같은 대면서비스 소비는 줄어들면서 저축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2022년부터 양상이 달라졌다.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가계의 저축 여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3.6%로 가파르게 올랐지만, 근로자 1인당 월평균 명목임금은 2.5% 오르는 데 그쳐 실질임금은 뒷걸음질쳤다.
이자 비용이 늘어난 것도 저축 여력을 끌어내렸다. 지난해 1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이자 비용은 전년 대비 31.7% 급증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가계부채가 늘어난 가운데 고금리 장기화 상황이 맞물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가계가 짊어진 빚의 규모를 의미하는 가계신용 잔액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1886조4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8조8000억원 증가했다. 지난 2분기 말 잔액은 1896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운 상태다.
가계순저축률을 계산할 때 쓰는 가계소비(가계 최종소비+정부의 사회적 현물이전)와 가계소득(가계 순조정처분가능소득+가계가 납부한 연금부담금과 연금수취액의 차액) 지표를 봐도 차이가 드러난다. 가계소득 증가율은 2022년 5.4%, 2023년 2.6%로 크게 둔화한 반면 가계소비 증가율은 2022년 8.8%, 2023년 5%로 소득 증가율을 웃돌았다. 물가가 오른 만큼 소득이 따라 올라준다면 저축액을 줄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소득 증가율이 다소 부진했던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소득이 소비를 따라잡지 못하면 가계는 저축을 줄이거나 빚을 지는 식으로 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는 가계소득 증가 폭이 조금씩 커져 가계순저축률이 상승 전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상승률 둔화세가 이어지고 경기가 회복세를 유지하면서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점이 걸림돌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올해 성장률이 개선되는 건 반도체 수출 영향이 커 내수 회복세로 파급되는 데에는 시차가 더 있을 수밖에 없다”며 “회복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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