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부동산 대책, 고삐 풀린 집값 잡을까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4. 8. 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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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이후 12년 만에 그린벨트 해제
재건축·재개발 속도 내 주택 공급 확대

정부가 치솟는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또다시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MB정부 이후 12년 만에 서울에서 대규모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에 나서는가 하면 재건축·재개발 특례법까지 제정해 주택 공급 속도전에 나섰다. 오피스텔, 빌라 등 비아파트 공급 활성화에도 안간힘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고삐 풀린 집값을 잡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린벨트를 풀더라도 입주까지 최소 10년가량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 공급 부족 해소 역할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신축 아파트 인기가 치솟는 상황에서 비아파트 규제를 푼다고 해서 얼마나 수요가 분산될지도 미지수다.

정부가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놓으면서 집값 안정 효과를 낼지 부동산업계 관심이 뜨겁다. 사진은 서울 강남권 아파트 전경. (매경DB)
“무려 12년 전에 등장했던 서울 그린벨트 해제 카드가 또다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정부가 다급하다는 방증 아닐까요.” 건설업계 관계자 귀띔이다.

이번 8·8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그린벨트 해제, 재건축·재개발 사업 촉진, 비아파트 활성화로 요약된다. 이 중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가 가장 눈길을 끈다. 서울에서 대규모로 그린벨트가 해제되는 것은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이뤄진 2012년 이후 무려 12년 만이다. 당시 MB정부는 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 일대 5㎢를 해제한 바 있다.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 규모는 8만가구(올해 5만가구, 내년 3만가구)로 올 초 1·10 대책에서 발표한 신규 공공택지(2만가구)보다 4배나 크다.

그린벨트가 풀리는 지역은 어디일까.

서울에서는 총 149㎢의 그린벨트가 지정돼 있다. 전체 면적의 4분의 1에 달한다. 이 중 평지가 몰려 있는 데다 입지가 좋은 서초구(23.89㎢)와 강남구(6.09㎢) 일대가 해제 지역으로 유력하다. 업계에서는 강남구 세곡동과 수서차량기지, 서초구 내곡·염곡동, 송파구 방이동 등이 그린벨트 해제 대상지로 거론된다. 훼손이 심해 보전 가치가 떨어지는 그린벨트 3~5등급지 위주로 풀릴 전망이다. 서울 그린벨트 해제 지역은 오는 11월 발표된다. 서울시는 투기 방지를 위해 그린벨트 전역을 신규 택지 발표 시기인 11월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고시했다.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서 전체 물량의 35% 이상을 ‘신혼부부 장기전세주택2’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장기전세주택2는 주변 임대료 시세의 최대 80%로 최장 30년간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거주 기간이 연장되는데, 3명을 낳으면 시세보다 20%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재건축·재개발 촉진법 제정

사업시행-관리처분인가 절차 통합

재건축, 재개발 속도를 높이기로 한 점도 돋보인다. 특례법인 ‘재건축·재개발 촉진법’을 제정해 도심 주택 공급에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정비사업의 첫 단계인 기본계획 수립과 정비구역 지정 절차를 하나로 묶고,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 절차를 통합한다. 이와 함께 조합설립 동의율도 기존 75%에서 70%로 완화하고, 정비사업 단지의 전용 85㎡ 이하 주택 공급 의무도 폐지한다. 기존에는 전용 85㎡ 이하 주택을 재개발 지역에선 80% 이상, 과밀억제권역 내 재건축 단지는 60% 이상 공급해야 했지만 이런 규제가 풀린다는 의미다.

정비사업 용적률도 완화한다. 법적 상한 기준에서 3년간 한시적으로 추가 허용하는 방안을 예고했다. 3종주거지역의 경우 법적 상한 용적률이 300%인데 이를 일반 정비사업 지역에서는 330%까지, 역세권은 390%까지 확대한다.

재건축 사업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불렸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도 추진하기로 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으로 조합원이 얻는 시세차익이 주변 집값 상승분과 비용 등을 빼고 1인당 평균 8000만원이 넘을 경우 초과이익의 최대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초과이익환수제가 폐지될 경우 그만큼 재건축 사업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정부는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통해 서울에서 13만가구의 재건축, 재개발 물량이 조기에 공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서울 신축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재건축, 재개발밖에 답이 없다.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는 단기적인 효과는 적어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꼭 필요한 대책”이라고 진단했다.

서울뿐 아니라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정비사업에도 속도를 낸다. 오는 11월부터 2만6000가구(최대 3만9000가구)의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를 선정한다. 선도지구로 지정되면 2025년 특별정비구역 지정, 2026년 사업시행계획 인가 등을 거쳐 2027년 첫 착공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된다. 정비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해 2029년까지 인허가 물량 8만8000가구와 착공 4만6000가구의 목표치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수도권 주택 공급 물량도 대거 늘리기로 했다. 기존에 발표한 3기 신도시와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2만가구 이상을 추가로 확보한다. 2022년 이후 발표한 수도권 공공택지 5곳, 즉 김포 한강, 평택 지제, 용인 이동, 구리 토평, 오산 세교지구는 내년 상반기까지 지구 지정을 완료할 예정이다.

수도권 공공택지 공급을 늘리기 위한 민간 건설사 지원책도 마련했다. 22조원 규모 ‘미분양 아파트 매입 확약’이 대표적이다. 내년까지 민간 건설사가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아파트를 착공하면 준공 후 미분양이 나더라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2조원 규모까지 사준다. 미분양률에 따라 분양가 대비 85~89% 수준으로 매입한다. LH가 매입한 주택은 무주택 청년이나 신혼부부가 6년 임차 후 분양받는 공공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향후 6년간 서울과 수도권의 우수한 입지에 42만7000가구 이상의 우량 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오피스텔·빌라 등 非아파트 활성화

전용 85㎡ 이하 보유하면 무주택 인정

오피스텔, 빌라 등 비아파트 활성화 정책도 실수요자 시선을 끈다. 비아파트를 구입할 때 세금을 감면해주는 당근책을 내놨다. 앞으로 전용 60㎡ 이하 오피스텔, 빌라 등 신축 소형 주택을 구입하면 2027년 12월까지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세금 산정 때 주택 수에서 제외해준다. 기존 소형 주택도 2027년 12월까지 구입해 등록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세금 산정 때 주택 수에서 빼준다. 수도권 6억원·지방 3억원 이하 주택이 대상이다.

생애 최초로 전용 60㎡ 이하 소형 주택을 구매한 사람은 취득세 감면 한도를 현행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확대한다. 청약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무주택으로 인정하는 비아파트 범위도 전용 60㎡ 이하에서 85㎡ 이하로 넓힌다. 무주택 공시가격 기준은 수도권은 1억6000만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지방은 1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높일 예정이다. 또한 내년까지 11만가구 이상의 오피스텔, 빌라, 도시형 생활주택 등 신축 매입 공공주택을 수도권에 집중 공급하기로 했다. 서울은 공급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무제한 매입한다. 신축 매입 약정은 민간에서 건축하는 주택에 대해 사전 매입 약정을 맺고, 준공 후 LH가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좋은 품질의 임대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제도로 손꼽힌다.

비아파트를 공급하는 소규모 건설사업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 배제 요건도 완화한다. 주택신축판매업자가 주택 건설을 위해 주택을 취득할 때는 최대 12%의 중과세율이 아닌 1~3%의 일반세율이 적용된다. 대신 취득일로부터 1년 내 주택을 멸실한 뒤 취득일로부터 3년 이내에 주택을 신축하고 판매를 완료해야 취득세가 중과되지 않는다.

정부는 수도권 위주 대책만 쏟아낸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지방 미분양 활성화 정책도 내놨다. 아파트값 상승, 공급 부족으로 청약 열기가 뜨거운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미분양 물량이 갈수록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미분양 물량 해소를 위해 CR리츠, 즉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를 도입하기로 했다. 시행, 시공사와 재무적투자자 등이 투자한 리츠가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임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방 미분양 CR리츠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리츠가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때 취득세 중과와 종합부동산세 합산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또 미분양 주택을 담보로 잡을 때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모기지 보증가입도 허용한다. 이 경우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에 의무 가입하도록 해 임차인 보호에도 나선다.

전문가들은 전방위적인 주택 공급 방안을 담은 이번 대책이 부동산 시장 불안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재건축, 재개발 사업 기간을 줄이고,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택지 공급에 힘쓰기로 한 만큼 점차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는 기대다.

물론 변수는 있다. 재건축·재개발 촉진법뿐 아니라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방안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투기 수요 발생을 이유로 법안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야심 차게 내놓은 그린벨트 해제 효과가 곧장 나타날지도 의문이다. 오는 11월 그린벨트를 해제해 신규 택지로 지정하더라도 입주까지는 최소 10년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당장의 집값 급등세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시민단체 중심으로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집값 안정 효과가 없는 공급 확대를 위해 수도권 허파인 그린벨트를 단 한 평도 허물어서는 안 된다. 서울과 수도권 과밀을 부추기는 주택 공급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3호 (2024.08.21~2024.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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