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新’ 계속된다…청약·준신축 눈길
“지금 집을 사도 될까요?”
내집마련을 원하는 실수요자가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부동산 지표들이 바닥을 찍던 올 초와 비교해 확 달라진 시장 분위기 속에 주택 가격이 언제까지 상승세를 이어갈지 확신이 없어서다. 정부가 야심 차게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놓으며 집값을 잡겠다고 자신했지만, 정부를 믿고 마냥 기다리기에는 주택이 부족하고 집값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시기가 늦을수록 초기자금 부담이 증가할 수 있는 만큼 내집마련을 서두르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이번 매경이코노미 전문가 설문에 참여한 12명 중 11명이 “지금 집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단기 시황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은 ‘단타’를 노리는 투기 수요”라며 “실거주 목적이라면 집은 언제든지 사도 좋다”고 강조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역시 “당장 내년 이후 주택 공급 부족이 가시화되고 금리가 인하되면 주택 전세 가격과 매매 가격이 동반 상승할 여지가 크다”며 “전세·매매 가격 모두 상승한다면 전세에 머무는 것보다 매입에 비중을 두는 것이 적절한 대응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매수·매도 전략은 무주택, 1주택, 다주택자마다 다르겠지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현금 확보’가 우선이라고 답한다. 자금을 넉넉히 마련해 최소한의 대출로 집을 사거나, 적어도 기존 집을 먼저 처분한 뒤 새집으로 갈아타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늘어나는 가계대출을 잡겠다며 12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이 언제쯤 금리 인하에 나설지도 관건이다.
신축 어렵다면 준신축 눈여겨봐야
무주택자의 경우 당장 집을 마련해도 괜찮다는 의견이 다수다. 무작정 바닥을 기다리기보다는 청약이든 급매든 조건 맞는 주택을 ‘어떻게’ 살지 연구하는 게 현명하다는 취지다.
물론 무주택자에게 제일 좋은 내집마련 방법은 청약이다. 최근 일반분양가가 급등해 예전만큼 ‘로또’ 수준 차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주변 시세보다는 저렴하게 공급되는 데다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축 아파트 선호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마침 올해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송파구 신천동 등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비롯해 성동구 행당동 재개발 아파트, 동작구 본동 수방사 공공분양 등 주요 지역에서 청약이 진행될 예정이다. 무순위 청약 요건도 완화되면서 가점이 낮은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도 기회의 문이 넓어졌다.
물론 분양가, 자금 마련 일정 등을 고려하면 청약이 가장 편리하기는 하지만 희박한 확률에만 승부를 걸 수 없다. 청약에 도전하는 한편 ‘투트랙’ 전략으로 서울·수도권 인기 지역 아파트를 관심 있게 봐야 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서울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준공 5년 이하 신축 아파트를 눈여겨보라고 권한다. 신축 아파트는 구축 아파트보다 전세 시세가 높아 자금 마련 일정이 빠듯한 실수요자 입장에서 투자
하기에 수월하다. 최근 30~40대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재건축까지 멀리 보고 매입하기보단 설계·커뮤니티시설 등을 따져 신축 아파트를 선택하는 경향도 뚜렷해지는 추세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된 데다 공사비까지 상승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사업성이 개선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당장은 신축과 준신축 아파트 몸값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무조건 신축 아파트라고 해서 입지와 관계없이 ‘묻지마 투자’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 전고점을 넘지 않았으며, 대중교통 여건이 우수해 업무지구 접근성이 좋거나 좋아질 예정인 곳을 눈여겨보는 전략이 유효하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강동구 ‘고덕그라시움(4932가구, 2019년 입주)’의 경우 전용 84㎡가 지난 7월 20억1000만원 계약서를 쓰며 전고점을 돌파한 상태기는 하다. 다만 고덕그라시움 인근에는 9호선 4단계 연장 구간 공사가 한창이라 추가 상승 기대감이 크다. 고덕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9호선 연장역 개통 등 호재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강남3구 접근성이 좋은 신축 동네라 거래량과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강북에서는 성북구 장위뉴타운이 눈길을 끈다. 장위뉴타운 ‘꿈의숲아이파크(1711가구, 2021년 입주)’ 전용 84㎡는 지난 6월에만 8채, 7월에도 8채가 사고팔리며 시세가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 7월 19일에는 17층 매물이 11억85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올 초 10억6500만원(16층)에도 거래됐던 아파트가 반년 만에 1억원 넘게 올랐다. 2020년 18층·20층 입주권이 13억원에도 계약서를 썼던 점을 감안하면 전고점까진 여유가 남은 셈이다. 소위 장위뉴타운 북쪽 단지들은 왕십리까지 연결되는 동북선 경전철 개통(2026년 예정)을 앞두고 강남 접근성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가 커졌다.
신축 아파트가 품귀 현상을 빚자 최근에는 신축 범위가 준공 5~10년의 ‘준신축’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공사비 인상 여파로 아파트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생긴 현상이다. 준신축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이들 아파트값도 조정기를 마치고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매매 가격은 신축 → 준신축 → 구축 순으로 오른다. 비슷한 입지 조건이라면 누구나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겠지만 신축 아파트를 마련하자면 당첨 가능성이 희박한 청약의 문을 뚫거나, 이미 집값에 높은 웃돈을 얹어 분양권을 매수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민간 아파트 분양가가 급등하면서 청약 매력이 다소 반감됐고, 기존 신축 아파트에는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높은 웃돈이 붙어 있다 보니 ‘신축 프리미엄’이 적당히 빠진 준신축으로 수요가 몰린다는 분석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통계를 살펴보면 신축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떨어지는 편”이라면서 “신축 못지않게 커뮤니티시설이 갖춰져 있고, 리모델링만 해 주거 만족도를 올릴 수 있는 준신축이 오히려 각광받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준신축 아파트 수요가 몰리는 대표 지역은 신길뉴타운이 위치한 영등포구 7호선 신풍역 인근이다. 일대 대장 단지 ‘래미안에스티움(1722가구, 2017년 입주)’은 전용 84㎡ 로열층 아파트 3채가 15억5000만원에 연달아 팔렸다. 17억원 후반대에도 사고팔렸던 호황기(2021년)와 비교하면 고점 회복까지 갈 길이 멀지만,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봄에는 12억~13억원대까지도 가격이 떨어졌던 아파트다. 최근 준신축 아파트가 다시 각광을 받으면서 몸값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특히 신길뉴타운 7호선 신풍역에는 곧 신안산선(2026년 예정)이 개통해 여의도까지 환승 없이 이어지는 등 호재가 적잖다.
신통기획 재건축 잠실장미 눈길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울 인기 지역에 투자하고 싶다면 재건축 단지도 괜찮은 선택지다. 정부가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최근 서울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아파트값이 완연히 회복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특히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내세운 ‘신속통합기획’이 서울 곳곳에서 확정되면서 시장에서는 재건축 기대감이 부쩍 높아진 상태다. 압구정, 여의도 등 서울 한강변 아파트 단지에서는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 기조에 발맞춰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학부모 선호도가 높은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에서는 6단지가 최초로 정비계획을 확정했고 1~3단지를 제외한 나머지 단지도 연내 정비구역 지정이 유력하다. 이미 모든 단지 안전진단이 끝난 상태여서 본격적인 사업 추진 기대감이 높다. 목동신시가지4단지와 14단지를 비롯해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자문을 진행 중인 재건축 단지 모두 연말까지 정비계획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최근 신속통합기획 재건축을 확정한 신천동 잠실장미(장미1·2·3차)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상 잠실 한강변 마지막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번에 신속통합기획을 확정하면서 장미1·2·3차는 최고 49층, 약 4800가구 규모 새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할 길을 마련했다. 잠실장미는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과 가깝고, 2·8호선 잠실역도 걸어서 이용 가능한 입지다. 단지 안에 잠동초, 잠실중이 있고 상업·생활편의시설도 풍부해 실거주 수요가 꾸준하다. 다만 준공 45년을 넘긴 노후 주거 단지라 주차난 등은 감안해야 한다.
재건축·재개발 투자 기대감이 높은 이유는 향후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전국에서 아파트 24만8713가구가 집들이에 나선다. 올해 예정 물량(35만5798가구)보다 30% 이상 감소한 규모다. 2013년 19만9400가구 후 12년 만에 가장 적은 물량이다.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같은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해서라도 향후 몇 년간 공급을 사수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제도적 지원에 따른 정비사업 활성화 기대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압구정, 여의도, 목동 같은 인기 재건축 지역은 여전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주택 매수인이 2년 이상 직접 실거주하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다.
반대로 당분간 실거주할 의사가 없다면 경매를 ‘갭투자’ 수단으로 활용해볼 수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주택을 살 경우 매수인이 의무적으로 해당 주택에 2년 이상 거주해야 하고 갭투자도 불가능하지만, 경매를 통해 주거용 부동산을 낙찰받은 경우에는 세입자를 받을 수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 해도 실거주 의무 역시 면제된다. 또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강남3구와 용산구 재건축 단지의 경우 조합이 설립된 이후 조합원 지위 승계가 여전히 제한돼 있는데 경매를 이용하면 이 역시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장점 덕분에 꼭 신속통합기획 단지가 아니어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지역에서는 매매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경매 물건이 낙찰되기도 한다. 최근 법원경매에 등장한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는 매매 최고가 수준에 낙찰돼 시장 관심을 모았다.
경·공매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7월 22일 경매가 진행된 리센츠 전용 59㎡는 13명이 응찰해 22억3388만원에 낙찰됐다. 최저 입찰가는 17억6000만원이었는데 낙찰자는 이보다 4억7000여만원의 웃돈을 얹어 사간 셈이다. 해당 아파트는 권리상 하자나 임대차관계가 없는 물건이었다. 최근 같은 아파트 전용 59㎡가 22억50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새로 썼는데, 경매 시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금액에 낙찰된 것. 직전 최고가는 같은 달 5일 거래된 22억원으로 2주 만에 기록을 경신했다.
비슷한 사례로 앞서 6월엔 서초구 서초동 ‘서초트라팰리스’ 전용 116㎡가 19억6870만원에 낙찰됐고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아파트’ 전용 114㎡ 또한 한 차례 유찰된 이후 두 번째 경매에서 13명의 응찰자가 몰려 감정가 25억3000만원보다 2억원가량 높은 27억880만원에 낙찰됐다.
이외에 자금이 부족한 투자자라면 수도권 1기 신도시 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면서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덜 오른 신도시 지역 매물을 매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수도권 신도시에 투자할 때는 서울 접근성과 함께 주거 환경, 입지, 학군 등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은 값은 싸지만 언제 오를지 모르는, 도박에 가까운 투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 변동성이 크고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는 만큼 내집마련 자금을 마냥 대출로 충당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주택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매매했다 해도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내집마련 기회가 확대된 것은 맞지만 종잣돈은 주택 가격(또는 분양가)의 최소 50% 이상을 마련해놓고 대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안전하다.
설문에 도움 주신 분들(가나다순)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장,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3호 (2024.08.21~2024.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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