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 공시 매일 쏟아지는데…

문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moon.jimin@mk.co.kr) 2024. 8. 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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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은 실패한 주가 방어 수단

올 들어 자사주 매입 공시가 연일 쏟아진다. 연초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자 이에 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8월 들어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증시가 급락하며 주가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자사주 매입을 활용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자사주 매입 공시 후 주가가 오히려 고꾸라진 경우가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사주 매입만으로는 주주 가치를 제고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튼튼한 기초체력(펀더멘털)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제시하는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주가 부양 효과 ‘글쎄’

자사주 소각 동반돼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8월 9일까지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상장사는 총 253곳이다. 시장별로는 코스피 90곳, 코스닥 163곳으로 집계됐다. 특히 8월 들어 이런 분위기가 더욱 완연하다. 지난 8월 2일부터 8일까지 주가 안정과 주주 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내세워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상장사가 34곳에 달한다. 34곳이 밝힌 자사주 취득 예정 규모는 약 1조원이다. 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며 주가가 급락함에 따라 다수 기업이 주가 부양 수단으로 자사주 매입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일반적으로 주가가 저점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데이터를 살펴보면 자사주 매입 공시 후 주가가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자사주 매입 공시 후 주가가 하락한 곳은 141곳에 이른다. 전체의 56%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주가가 오른 곳은 107곳으로 집계됐다. 전체의 42%다. 나머지 5곳은 주가가 횡보하는 중이다. 개별 종목별로는 SG(149%), 브이티(142%), 한미반도체(106%) 등이 자사주 매입 공시 후 주가가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푸드나무(-52%), 티이엠씨(-48%), 에이피알(-43%) 등은 내리막을 걸었다.

시장별로는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기업 중 코스피 기업 주가 흐름이 비교적 양호했다. 코스피 기업 주가는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후 평균 2.6% 상승했다. 코스닥 상장사는 같은 기간 주가가 평균 2.7% 하락했다. 올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2.5%, 10.8% 하락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기업의 주주 가치 제고 의지에 따라 자사주 매입 공시 후 주가가 엇갈린 것”으로 분석한다. 단순히 주가 하락을 자사주 매입으로 방어하려는 의도라면 투자자가 결코 호응하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튼튼한 펀더멘털을 바탕으로 한 장기적인 주주 가치 제고 방안을 내놓는 기업만이 투자자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 모아 강조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대부분 자사주 매입 규모는 시가총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자사주 매입 자체로 주가가 상승하기보다는 기업의 실적 성장세가 뚜렷하고 수급도 좋은데 자사주 매입까지 겹쳐 주가가 올라간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이익 성장 기반이 약한데 자사주 매입을 발표하면 오히려 개인 주주는 기회로 삼고 매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소각이 동반되지 않은 자사주 매입은 주가 부양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사주 매입 시 소각을 동반할 경우 주주의 주당 가치는 높아진다. 그러나 소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매입한 자사주의 용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주주 가치가 제고된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다. 자사주 매입 효과가 영구적으로 유지되려면 자사주 소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규정상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 의무는 아니다”라며 “주주 가치 제고보다는 단순 지분율 확보를 위한 조치라는 시각도 존재하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식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일정 비율까지만 자사주를 보유하고 추가 매입을 위해서는 소각을 의무화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익 부실하면 효과 없어

금융사 사례 참고할 만

전문가들은 올해 금융사가 발표한 자사주 매입 공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KB금융·하나금융·신한지주 등이 자사주 매입 공시 후 주가가 20% 이상 상승했다.

신한금융지주가 대표적이다. 최근 신한금융지주는 현재 5억900만주인 주식 수를 오는 2027년 말 4억5000만주까지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사용되는 금액만 3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이와 함께 2027년까지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주주환원율 50%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주식 수를 줄이면 시가총액과 배당총액이 유지될 경우 주당 가치와 배당이 높아지는 효과가 기대된다.

바람직한 사례로 메리츠금융지주를 꼽는 전문가도 꽤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국내 금융지주 중 처음으로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다. 2025회계연도까지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통해 50%가 넘는 주주환원율을 유지하고, 2026 회계연도 이후 내부투자 수익률과 현금배당 수익률, 자사주 매입 수익률 등을 비교한 뒤 주주 가치 제고에 최적의 자본 배치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연 4회 실시하는 실적 공시에 ‘밸류업 계획’을 함께 공개하고 계획과 이행 현황을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한 기업설명회(IR)에서 직접 설명할 계획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메리츠금융지주는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구체적이고 중장기적인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며 “발표 후 꾸준히 계획을 실행하는 중이고 임직원도 함께 동참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주환원 정책의 좋은 선례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 금융지주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튼튼한 이익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결과다. 꾸준한 자사주 매입을 위한 재원 확보 가능성을 판단하는 측면에서 기업 성장성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중소가치팀장은 “뛰어난 수익성과 풍부한 순유동자산을 바탕으로 주주환원 성장을 도모하는 기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며 “특정 업종보다는 개별 기업으로 접근하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하려는 기업의 과거 주주환원 정책 발표 내용을 찾아보고, 계획대로 이행했는지 찾아보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

반대로 기업이 제시한 주주환원 정책을 앞으로 꾸준히 이행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투자자가 먼저 살펴야 하는 지표는 실적 개선 여부다. 이후 창출된 이익을 자사주 매입 형태로 주주와 나누려는 계획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때 기업이 과거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지키지 않은 적은 없는지, 중장기적인 계획이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인지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 기업이 주주환원 정책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배당을 포함해 다양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제시할수록 투자 매력이 높다고 본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의 조언이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3호 (2024.08.21~2024.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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