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지역의료와 서울대병원, 그 뒤의 고통

Health Socialist Club 2024. 8. 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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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 - 의료대란 6개월, 지역과 의료의 의미를 되묻다]

2024년 2월 19일, 서울을 포함한 각 지역 병원에서 전공의가 병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을 발표한 뒤였다. 전공의가 현장을 이탈하니 의료 대란이 일어난다는 보도가 즉각 쏟아졌고, 정부는 강경 대응을 하겠다며 나섰다. 정부와 의사 간의 공방 속에서 지역 주민들이 겪은 일은 무엇이었나? HSC는 6개월간의 알려진 이야기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짚는다. <기자말>

[Health Socialist Club]

그날 이후, 지역

전국 수련병원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던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자 먼저 곡소리가 나온 지역은 수도권 그리고 비수도권 대도심이었다. 대학병원을 찾던 주민들 사이에서는 수술과 진료 예약이 밀릴 것을 걱정하는 의견이 줄지어 나왔다. 지역에서 거점 역할을 담당하던 병원은 앞다퉈 중증 환자가 아닌 환자에게 퇴원을 권유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전공의가 병원을 일제히 이탈하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진료 차질을 우려하는 의견이 이어졌다. 부산일보 2월 20일 자 2면
ⓒ 부산일보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전공의가 병원을 일제히 이탈하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진료 차질을 우려하는 의견이 이어졌다. 광주일보 2월 21일 자 4면
ⓒ 광주일보
응급실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아플 때 처음 방문하고,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정해 주고, 살인적으로 긴 노동시간 탓에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 한국에서 응급실은 사실상 종합진료센터이자 일차 의료 역할을 하고 있는 탓이다.
이미 코로나19 이후 '수용 거부'와 '뺑뺑이'가 일상이 된 대도심 지역의 응급실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전공의가 이탈하자 응급실에서도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2024년 2월 28일 연합뉴스
ⓒ 연합뉴스
응급실 앞에는 연일 긴 줄이 늘어섰다.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주민들, 상황도 모른 채 불안에 떠는 경증 환자, 지역 요양시설에서 그저 구급차에 실려 온 고령 환자, 사경을 헤매는 중증 환자가 모두 뒤섞여 매일 홍역을 치렀다.

전화 통화에서, 병원 문 앞에서 번번이 "환자 수용이 어렵다"는 거절을 들으며 거리를 헤맨 구급대원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받은 구급대 재이송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10일까지 '전문의 부재' 사유로 구급차가 환자를 재이송한 사례는 955건이나 됐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밀고 들어 온' 환자를 받자 짜증이 난 의료진과 불안에 떠는 환자를 조정해 주려는 권력은 없었다. 정부는 초창기 '면허 정지'를 외치며 의사단체에 대해 강경 대응을 시사했으나 이는 사실상 사태를 악화시켰을 뿐이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코로나19 시기부터 숱한 병상 배정 실패로 지역 의료기관을 통제·조정할 만한 역량이 없음을 드러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운영하는 응급의료 상황판에는 연일 '수용 불가' 메시지가 떴다. 의사가 없어서, 의사가 있어도 '그 처치'는 전문이 아니니까, 병원의 규모가 작아서, 장비가 없어서… 이유는 다채로웠다.
 국립중앙의료원 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에 뜬 ‘진료 불가’메시지. 2024년 8월 11일 검색
ⓒ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응급실 뺑뺑이와 퇴원을 권유받은 환자들, 병원이 문을 닫을까 불안해하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이미 숱하게 보도된 의료 대란의 한 장면이라면, 여기서부터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 뒷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2024년 2월 19일로부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병원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한나절을 가야 하는 농어촌지역, 전공의 이탈로 의료 대란 운운하는 보도가 나오자, 농어촌 지역 주민들은 술렁였다.

"그럼, 이제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하는 기여?"
"우리는 아직 들은 게 없는데?"

상황이 심란하게 흘러갔지만 아무도 주민들에게 친절한 설명이나 안내와 조정을 해주지 않았다. 진료 한 번 받기 위해서 집에서 30분을 걸어서 버스정류장에 가는 그리고 반나절에 한번 오는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원정'을 감행해야 하는 농어촌의 현실을 고려하면, 진료 일정을 두고 일어난 주민들의 불편과 불안은 도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이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의료 인프라 속 주민들은 영문을 몰라 병원 이용을 더욱 줄였다. 진료 예약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전화는 통화량 폭주로 먹통이 됐고, 인터넷을 이용할 줄 모르는 주민들은 그저 발을 동동 굴렀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없었다. 정부는 그저 의사들에게 진료를 개시하라며 엄포를 놨고, 단 한 번도 그 명령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다만 주민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사태를 장기화시켰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냉소가 이어졌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의료는 그저 주민들의 삶에서 부재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미 턱없이 부족한 의료 자원 속에서 생활해 온 주민들에게 이 대란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국가와 지역, 착취와 통치 사이

조금 더 노골적으로 이 사태의 본질이 드러난 시기는 2024년 3월 11일. 정부가 본격적으로 지역 공중보건의사를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파견하면서부터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 시기 각 지방정부에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대형 병원으로 지역 공중보건의를 파견하겠다고 통보한 뒤,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이 공백을 메울 계획을 세웠다.

지방정부는 즉각 항의했다. 지역 공중보건의가 매년 줄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차출까지 이뤄지면 주민들의 불편이 더욱 커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로 파견하는 상급종합병원은 한국에서 가장 고도의 의료를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전국 47개 기관 중 절반 가량인 23곳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 있다. 결국 지역 주민들은 이용할 수 없는 의료기관으로 주민들의 일차적인 건강돌봄을 담당하던 의사를 차출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항의는 한마디로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물러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정부의 태도는 강경했다. 통보 직후 바로 차출이 이뤄졌고, 당장 지역 보건지소에는 불이 꺼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수도권으로 차출된 공보의 108명 중 83명(76.9%)은 비수도권에서 차출됐다.
▲ 전국 상급종합병원 지도 47곳 중 23곳이 수도권에 있다. 지역에 있는 나머지 상급종합병원 24곳도 대부분 KTX가 지나가는 대도시 지역에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기반으로 HSC가 재구성한 그림.
ⓒ HSC
공중보건의 차출 이후 5개월여가 지난 지금, 지역을 떠난 의사는 돌아오지 않고 주민들은 갈 곳을 잃은 채 원정 진료조차 감행하지 못하며 시름하고 있다. 보건소는 필수적인 지역 보건사업조차 하지 못하고,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 예방접종 계획을 우려하며 발을 구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역 공중보건의 파견을 끊임없이 연장하며 지역을 떠난 공보의를 지역으로 되돌려주지 않고 있다.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의료입니까

의료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지역이라는 단어를 그 앞에 붙여본다. 지난 6개월은 지역의료라는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등장한 시기였다. 동시에 지역과 의료가 그 어느 때보다 오해받고 수모당한 시기였다.

한국에서 지역의료에 대한 폄훼는 흔히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지방 사람들 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 간다"
"지역 사람들도 지역의료는 못 믿는단다"
"지방 사람들은 다 자기 지역에 서울대병원 지어달라고 한다."

폄훼와 무시 속에서 '큰 병원' '못 믿을 지역의료' 그리고 '서울대병원'이라는 단어 뒤에 담긴 고통을 들여다본다. 가까이에서 건강을 돌봐줄 이 없는 그리고 어려울 때 믿을 수 있는 의료 안내를 경험하지 못한, 보통의 지역 사람들에게 큰 병원이란 믿을 수 있는 의료의 또 다른 단어일 뿐이다. 서울대병원이란, 우리 지역에도 문 닫지 않는, 중증 질환에 걸렸을 때 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병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다. 그러나 과학적, 최첨단, 최신으로 포장된 기술주의적 의료 뒤에서 주민의 요구는 오늘도 무시의 대상이 되어 허공을 떠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2024.6.7
ⓒ 연합뉴스
서울 한복판에 있는 큰 대학병원에서 길을 잃는 대신 주민들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선택지는 삶을 지지하고 존엄한 생을 함께 돌보는 것이었다. 의대 정원 증원 이후 6개월간의 대란 대신 만들어갈 수 있었던 미래다. 하지만 전공의가 현장을 떠나고, 수도권 대형 병원의 공백을 메우려고 투입된 지역 공중보건의사를 보며 주민들은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의료란 누구를 위한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현장 이탈, 무책임, 차출… 그곳에 주민들의 삶은 없었다.

6개월간의 혼란이 오롯이 주민들의 고통으로 남은 지금, 우리는 주민의 관점과 삶으로 의료의 의미를 되묻는다. 주민의 삶에서 의료는 왜 중요한가? 아마 의료가 특별히 과학적이거나 최첨단이거나, 의사가 선망의 대상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존엄한 삶을 지지하고, 살던 곳에서 평안하게 눈감는 삶을 조력하는 기술이 의료일 뿐이다. 6개월 그리고 그보다 더 긴 세월 존엄한 삶을 지지하는 의료를 막아온 힘을, 지역 주민들이 고통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 필자 소개: Health Socialist Club은 사회정의와 형평의 관점에서 인구집단 건강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 주제와 내용을 일반 시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게끔 글을 쓰고 자료를 만드는 연구모임입니다. Manager 김새롬/ Member 김진환·문다슬·문주현·박서화·이한빈. HSC의 블로그( https://www.notion.so/healthsocialist/Health-Socialist-Club-4f293bb8aab34b3c91dfed0ddd7f7ba3)에서 더 많은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들
(2)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3) 의료체계에 던지는 질문들
(4) 노동에 던지는 질문들
(5) 의사에 던지는 질문들
(6) 7개월, 질문 위에 서서

덧붙이는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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