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음모의 고려 말, 난세를 말하다 "너의 칼은 누구라 하느냐"
공민왕은 반원정책을 펼쳐 고려의 주권을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적은 내부에 있었다. 무신의 준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던 고려말의 권력구조 속에서 외세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내부를 단속하는 일은 친구와 가족을 외면하고, 자신까지 속여야 할 정도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필요한 일이었다. 과연 공민왕은 어떤 계략이 있었을까?
이인자의 농단과 배신, 그리고 음모. 공민왕은 칼을 어떻게 숨겼을까?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아무리 날 선 칼을 휘둘러댄다 해도 그 끝은 다가온다.
정점에 선 자는 늘 두려움을 느낀다. 내려가는 일만 남았을뿐더러 자신의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는 자들 모두 한 점 흑심을 품고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의심한다. 이인자는 끊임없이 일인자의 자리를 노린다. 제아무리 권력의 중심에 서 있다 하더라도 이인자는 결코 일인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의심과 배신은 늘 권력의 주변을 맴돈다. 음모는 끊이지 않는다.
배신의 미로 앞에서 권력자가 묻는다.
너의 칼의 주인은 누구냐. 너의 칼은 누구를 향하느냐. 하여 너의 칼은 나를 누구라 말하느냐.
소설로 복원한 고려 말 난세의 배신과 음모의 현장
「소설 공민왕, 너의 칼은 누구라 하느냐」
에는 고려 말 공민왕 시기에 일어난 세 가지 큰 사건을 줄기로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권력 암투의 현장이 펼쳐진다.
이 시기는 고려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기운이 쇠하는 시기로 국내 정세 이상으로 국제 정세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돈의 용광로였다. 이런 틈을 타 홍건적이 발호하고,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한다.
소설은 20만 대군이 몰려온 홍건적 2차 침입을 앞둔 절체절명의 시점을 시작으로 문을 연다. 무신들에 둘러싸여 우왕좌왕하는 공민왕은 이인자 김용을 내세우지만, 탐욕스러운 김용은 자신을 견제하는 장수들을 음모로 제거하고 결국 공민왕에게 칼을 들이밀며 흥왕사에서 난을 일으킨다.
노국공주의 충언을 무시한 공민왕의 위기는 그나마 왕에게 충성하는 군신들의 노력으로 김용을 제거하지만, 반원정책을 펴던 공민왕에 대해 원나라 기황후는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임명하고, 덕흥군으로 하여금 고려를 침공하도록 명령한다.
한편 신출귀몰하게 고려와 원을 오가며 중요한 시점마다 나타나 천기를 말하는 청한거사, 그는 어떤 이유로 역사의 현장에 나타난 것일까? 그는 누구일까? 원나라의 침공을 공민왕은 어떻게 이겨낼까? 무신들의 배신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저자 류정식은 소설가이며, 1950년 전북 완주 생이고 2020년 7월 역사소설
「백제 지수신」
을 출간했다.
머리말 “역사는 나의 자화상이다.”
이 문장은 내가 역사소설을 쓰면서 좌우명으로 삼는 말이다.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 보면 울분에 겨워 땅을 칠 때도, 가슴 깊이 벅차오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7천만 우리 민족의 굴곡진 역사가 세월의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내려 자화상의 주름이 되고 자양분이 되었으니, 내가 소설의 구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소설의 배경으로 태평성대가 아니라 역동의 시대, 욕망이 분출하는 시대, 즉 난세를 주목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도 수많은 군웅과 학자들이 나타나 중국문화를 꽃피웠다. 한마디로 춘추전국시대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중국이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고 난 뒤에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받아들인 신라가 중국 못지않게 자신의 문화를 융성하게 꽃피웠다. 그러나 문화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서,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과정에서는 피와 살을 도려내는 아픔도 함께 존재했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고 반복한다. 사계절이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처럼 어제의 역사가 오늘의 현실이 된다. 역사가 순환하니, 우리는 역사의 아픔을 인문학적 사고에만 가두면 안 된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민중들의 삶과 아픔을 받아들여 내 살과 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아픔의 전달자’라는 소명은 감히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아픔을 나의 자화상으로 만들고, 나 스스로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첫 작품으로 쓴
「백제 지수신」
에서도 내가 주인공이 되어 백제 유민의 아픔을 체험해 보았다.
하지만 나의 아픔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일흔 하고도 반을 넘어가는 나이에 새로운 열망을 이끌고 또 다른 격동의 시대 고려 말의 군주, 공민왕을 만나고자 했다.
공민왕 시대는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기로 원나라에 반란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이런 난세에 걸맞게 원나라의 권신들도 서로 파당을 짓고 권력투쟁만 일삼으니 원나라 황제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고려의 형편도 원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민왕이 원나라의 제도를 혁파하고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기황후와 그의 일족이 고려의 국정을 농단하자, 그 역시 원나라 황제처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홍건적이 서경과 개경을 연달아 함락하고. 공민왕이 믿고 의지하던 무장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배신을 일삼으니 공민왕 시대는 난세 중에 난세였다.
나는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하면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했다.
「고려사」
와
「고려사절요」
는 김종서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역성혁명의 당위를 마련하고자 편찬했으니, 역사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볼 때 편향성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좀 더 객관적 시각으로 역사를 읽어내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새롭게 쓴 논문과 저서로 시선을 돌리니, 마침내 공민왕 시대의 면면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쉬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소설의 무대가 대부분 중국과 북한이어서 지리적 고증이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공민왕 시대를 조명한 소설
「소설 공민왕, 너의 칼은 누구라 하느냐」
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소설은 공민왕 시대의 가장 치열하며 역동적인 사건이었던 홍건적의 침략과 기황후의 한풀이에서 비롯한 흥왕사의 난과 덕흥군의 반역을 배경으로, 무장들의 음모와 배신 그리고 공민왕의 용인술 등을 흥미롭게 다루었다.
작가가 소설의 구상을 잘하고 주옥같은 문장으로 소설을 쓴다 한들 평가는 독자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논문이나 평전이 아니라, 역사적 고증에 작가가 상상력을 보태 쓴 소설임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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