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엄마, 농구 감독까지 등장... 반전 영화보다 더 재미있다 [최현정의 웰컴 투 아메리카]
[최현정 기자]
▲ 민주당 대선 후보이자 미국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가 지난 1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무대 위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올라온 모습. |
ⓒ 로이터통신/연합뉴스 |
연사 모두에겐 전국에 자신의 얘기가 생방송 되는 최고의 기회다.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느껴진다. 2004년 존 케리 후보를 추대하던 전당대회장에서 처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버락 오바마 같은 이들이 전당대회장을 빼곡히 채운다.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 저리가라 수준의 흥미진진한 말의 향연들이다.
▲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츠 미국 하원의원이 지난 1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1일차 행사에서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
ⓒ 로이터통신/연합뉴스 |
중요 인사의 연설이 끝나면 대회장에 설치된 각 방송사 테이블에서 논평을 했는데, 전당대회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영상들은 민주당이 제작한 짧은 영상들이다. 감동적이고 임팩트 있다. 엄청난 인재들이 달라붙어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엄청난 기부금이 모인다는 소리다.
미국의 많은 매체들은 올해 서른네 살 하원의원의 연설을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았다.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입문해 오는 11월 3선을 눈앞에 두고 있는 뉴욕 제14구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츠. 그가 등장할 때 팝스타를 향하는 듯한 환호가 나왔다. '급진적'이라는 타이틀과 무색하게 참가자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내가 당선되자 공화당 의원들은 나에게 다시 바텐더로 돌아가라고 공격해 왔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난 행복했다고... 생계를 위해 일하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리더가 있는 걸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저격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고 월가 친구들의 손바닥에 (탐욕의) 기름을 바릅니다. 이 말은 그가 이 나라를 1달러에 팔아먹을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전당대회가 열린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 인근에는 전당대회 시작 전부터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의 시위대가 모였다. 이는 1968년 흑인인권 운동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시카고 경찰은 전당대회장 밖 시위대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민주당의 상승세는 어떻게 튈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 그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츠는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가자지구에 대해 발언한 유일한 연설자이기도 했다.
"해리스는 가자의 휴전을 확보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가자' '휴전'이란 말에 대회장의 민주당원들은 그전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환호를 보냈다. 7분여 간의 짧은 연설을 마치고 들어가는 그에게 언론은 상원을 포함해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는 논평을 한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였다는 소리다.
▲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 숀 페인 노조위원장이 지난 1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에서 연설하고 있다. |
ⓒ AFP/연합뉴스 |
지난 파리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한 미국 남자 농구대표팀 스티브 커 감독이 무대에 섰다. 아직 금메달의 환호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제대로 된 리더가 그룹을 올바로 이끄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며 해리스를 지지했다. 그는 11월 선거 결과가 나왔을 때 트럼프에게 '나잇 나잇(Night Night)'이라는 작별 인사를 하자고 귀엽게 말하며 연설을 마쳤다.
숀 페인 전미자동차노동조합 위원장도 연단에 올라왔다. 몇 달 전 전국적인 자동차 노조 파업을 이끌었던 인물로 눈에 익은 이다. 당시 자동차 노조 시위 현장엔 바이든도 함께 해 피켓을 들었다. 그는 스스로 28년간 자동차 노동자로 잔뼈가 굵었다는 이력을 소개한다.
"카멀라 해리스는 파업 중인 노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그건 해리스와 트럼프의 차이입니다."
숀 페인 의장이 연설 중 입고 있던 재킷을 벗자 빨간 티셔츠에 쓰인 글자가 드러났다. '트럼프는 노조파괴자'라고 쓰여있다. 레슬러 헐크 호건이 밀워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보여준 '옷 찢는 동작'과 비견되는, 노조위원장다운 투박한 퍼포먼스였다.
정치 분석가들은 바이든에서 해리스로 깃발이 넘어가면서 생긴 가장 큰 차이로, '낙태 문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언급했다.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은 낙태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오늘 무대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했다. 낙태가 불법인 주에서 건강상의 문제,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으로 낙태를 해야 했던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운 좋은 '생존자'라 불렀다.
"나는 12살 때 임신 테스트에 두 줄이 나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때 처음 선택권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요. 하지만 트럼프의 낙태 금지 정책은 전국에 많은, 나 같은 소녀들의 선택권을 뺏어갔습니다."
5살 때부터 계부에 의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자신과 같은 어린 소녀들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누구보다 강력하게 얘기했다. 그 법을 만드는 이들 앞에서.
행사 중간에 등장한 해리슨의 어린 시절 친구와 그의 엄마는 전당대회를 '인간극장' 같은 사람냄새 물씬 나는 행사로 만들어 줬다. 그는 어린 시절 자기가 만든 찰흙 인형을 남자 애들이 망가뜨리자 어디선가 달려온 친구 카멀라가 그들과 싸웠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그때 카멀라 눈 위에 상처가 났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면서. 친구의 엄마는 세상을 떠난 카멀라의 엄마를 기억하며 외친다.
"카멀라, 엄마는 지금 너를 분명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거다."
8년 전,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힐러리 클린턴도 엄마 얘기를 했다. 유리천장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자신의 엄마도, 해리스의 엄마도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면서. 자신은 실패했지만 해리스가 꼭 그 천장을 깨 달라고 당부하고 힘을 실어줬다.
▲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에서 연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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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민주당 전당대회 첫째 날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위한 헌사였다. 그는 50년 정치 이력에서 수많은 선거를 치렀지만 어느 유세장에서도 보지 못했던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감격해했다. 아쉽고 섭섭한 마음도 읽혔지만 중간중간 실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후보 사퇴는 그가 일생에서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선택이다 싶었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내 조국에 내 마음과 영혼을 바쳤습니다."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은 진심으로 그는 유권자에게 미국인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그 사랑의 크기와 방향이 미국 민주주의의 성공과 번영을 결정할 것이다. 이제 미국 유권자의 결정이 남았다. 오늘(8월 21일)로 대선까지 남은 날은 76일.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는 영화보다 재미있는 76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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