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오바마 도왔던 해리스 우정…이번엔 오바마가 '보은'(종합)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전당대회 둘째 날인 20일(현지시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를 찾아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가장 강력한 우군을 자처했다. 현지에서는 과거 해리스 부통령이 2008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오바마 당시 후보의 몇 안 되는 지지자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오랜 우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날 전당대회 연설이 오랜 친구의 ‘보은’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시카고 찾은 오바마 "횃불 전달됐다…해리스, 준비된 대통령"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황금시간대 마지막 연사로 나서 "미국은 새로운 장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며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역시 그 일을 할 준비가 됐다"고 지지를 촉구했다.
대의원들의 박수 속에 무대 위에 등장해 "시카고! 집에 오니 좋다"고 정치적 고향을 향한 애정을 표현한 그는 먼저 재선 포기 용단을 내린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또한 "횃불은 전달됐다. 이제 우리 모두가 우리가 믿는 미국을 위해 싸워야 한다"면서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을 이끌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미 최초의 여성 대통령 겸 흑인 여성 대통령 겸 인도계 대통령에 도전하는 해리스 부통령이 과거 자신처럼 역사적 장벽을 깨뜨릴 것임을 강조하며 ‘어게인 2008’을 선언한 셈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간단한 질문"이라면서 "누가 우릴 위해 싸울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누가 나의 미래를 생각하는가, 내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가, 우리가 함께하는 미래를 생각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그 질문에 잠을 못 이루진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리는 4년 더 허세, 어리석음, 혼란을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이미 (트럼프 집권) 영화를 봤고, 속편이 보통 더 나쁨을 알고 있다"고도 말했다. 또한 "미국은 새로운 장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 더 나은 이야기를 준비했다"면서 해리스 부통령을 그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는 "해리스는 그 일을 할 준비가 됐다. 그녀의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대신해 평생을 싸워온 사람"이라며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기 위해 달려가는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명연설가’로 유명한 미셸 오바마도 고향인 시카고에서 민주당 전당대회 연단 위에 올랐다. 미셸은 "희망이 돌아오고 있다"면서 해리스 부통령을 "이 순간을 위해 충분히 준비됐다. 대통령으로서 가장 자격을 갖춘 사람 중 한명"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우리가 느꼈던 절망을 잊지 말자"면서 "해리스의 어머니가 ‘그냥 앉아서 불평하지 말라. 뭔가 해’라고 한 말을 기억하는 건 우리에게 달렸다"고 투표를 촉구했다.
오바마 전폭지원에 후광 효과 볼까…" 20년 우정" 눈길
해리스 지원 사격에 나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현직 미국 대통령을 통틀어 가장 스타파워가 강하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줄리아나 스트랜튼 일리노이 부지사는 AP통신에 "오바마는 여전히 당내 북극성"이라며 "민주당원을 자극하고, 무소속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온건파 공화당원을 설득하는 데 오바마보다 더 중요한 목소리는 없다"고 그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를 위해 전당대회 연설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날 연설은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해리스 부통령과의 각별한 우정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CNN방송은 "오늘 밤 오바마가 ‘그의 친구’ 해리스를 위해 연단에 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오바마-해리스 우정의 이면 : 중요한 지지와 비슷한 영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두 사람의 우정을 주목했다.
NYT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 당시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의 당내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컸던 상황에서도 초기부터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NYT는 "민주당 전체를 통틀어 오바마를 지지했던 사람은 몇 안 됐었다. 정치적 리스크였다"면서 "해리스의 초기 투자는 결국 성공했고, 오바마는 그 일을 절대 잊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측근은 NYT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날 전당대회 연설에서 해리스 부통령에게 "보답할 것"이라며 두 사람이 20년 이상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걸어왔다고 강조했다.
해리스 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계 이민자 아버지를 둔 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종, 문화적 배경 외에도 다양성, 희망을 강조하는 등 정치이념도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리스 부통령을 향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는 최근 참모들의 행보에서도 확인된다. 1년 전 해리스 부통령의 측근으로 합류한 스테파니 커터는 과거 오바마 행정부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여기에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이후 캠프 핵심 인사들도 오바마 캠프의 베테랑들로 새롭게 채워졌다. 이들의 합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독려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해리스 캠프가 최근 기쁨, 자유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 16년 전 오바마 캠프가 희망, 새로운 출발을 약속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짚었다. 앞서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포기 소식을 전달받은 직후에도, 가족에 이어 3~4번째로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CNN방송은 이날 오바마 전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가 대선까지 남은 11주 동안 해리스 부통령을 돕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보좌진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날 시카고에서 해리스 캠프를 위한 영상을 이미 녹화한 상태다. 대선 직전에는 직접 유세에도 나설 예정이다. 해리스 캠프 측은 향후 몇 주간 미셸 오바마의 메시지도 캠페인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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