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영전에 금메달" 파리패럴림픽 태권도 주정훈의 각오
"지난번에 못 딴 금메달을 따왔다고 할머니에게 말하겠습니다."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주정훈(30)이 돌아가신 할머니 영전에 패럴림픽 금메달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2024 파리 패럴림픽이 29일(한국시간) 개막해 13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장애인 스포츠 최고의 축제인 패럴림픽(Paralympic)은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패러플레지아(Paraplegia)와 올림픽(Olympic)을 더한 말이다. 지금 '파라(para)'는 장애가 아닌 '나란히'란 뜻으로 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고, 올림픽과 나란히 열린다는 뜻을 담았다. 이번 대회엔 182개국 4000여명의 선수단이 22개 종목에서 549개의 금메달을 놓고 겨룬다.
한국 선수단은 지난 14일 선발대가 떠난 데 이어 21일 본진이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처음으로 사전 캠프를 꾸렸다. 이번 대회 목표는 금메달 5개, 종합순위 20위다.
12일 폐막한 파리올림픽에서 태권도는 효자 종목의 위상을 되찾았다. 유서 깊은 장소인 그랑팔레에서 박태준과 김유진의 화려한 발차기를 선보여 금메달을 따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된 뒤 14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패럴림픽에도 태권도가 있다. 경기장도 같은 그랑팔레다. 지난 2020 도쿄 대회에서 처음 정식종목이 됐고, K44등급 지체(한팔) 장애 남녀 각각 5개 체급 경기가 치러진다. 한국은 주정훈(80㎏급)과 이동호(63㎏급·이상 남자)가 나선다.
세계랭킹 2위 주정훈은 메달 유력후보다. 주정훈은 3년 전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파라게임에서는 금메달, 멕시코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번째 패럴림픽에 나서는 주정훈은 선발대로 떠나 파리 인근 크레티유의 사전 훈련장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다.
주정훈은 2세 때 장애가 생겼다. 자신을 돌보던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넣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주정훈은 "철이 들 무렵에 사고에 대해 알았다. 어렸을 땐 친구들도 잘 대해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8세 때 어머니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한 주정훈은 중학교 때부터 엘리트 선수로 활동했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방황했다. 주정훈은 "두 번 정도 태권도를 그만뒀다. 밸런스가 안 맞으니까 발차기를 한 뒤 잘 넘어졌다. 남에게 (장애가 있는)내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2학년 때 태권도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 창원에서 부모님 식당 일을 도왔다.
다시 도복을 입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태권도가 도쿄 패럴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됐다. 2017년 겨울 그는 이루지 못한 올림픽의 꿈을 패럴림픽에서 이루기로 결심했다.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첫 패럴림픽 도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출전권을 따냈지만 코로나19 시국이라 훈련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주정훈은 "친구가 운영하는 복싱장에 몰래 가서 혼자 운동했다. 복싱코치인 친구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패럴림픽도 혼자 나가 선수촌 훈련이 힘들었다"고 했다. 첫 판에서 패했지만, 패자부활전을 거쳐 동메달을 따냈다.
"금메달을 따겠다"는 약속을 지키진 못했지만, 한국 장애인 태권도 첫 메달을 들고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를 찾았다. 평생 손자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았던 할머니는 손자의 손에 있는 메달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별세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주정훈은 "내 이름을 부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도쿄에서 실패는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환경도 좋아졌다. 체계적인 지원을 받아 국제대회에 자주 나서면서 랭킹 포인트로 여유있게 파리행 티켓을 따냈다. 장애인 태권도는 얼굴 공격 득점을 인정하지 않고, 몸통 공격만 점수를 준다. 그래서 호쾌한 경기가 펼쳐지지만, 기술 노출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주정훈은 패럴림픽을 앞두고 비디오 분석을 통해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저산소방에 들어가 지치지 않는 체력도 키웠다. 태권도를 알린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패럴림픽을 앞둔 주정훈은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는 "처음으로 혼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갔다"고 했다. 그는 "할머니께서 생전에 저를 보면 안타까워하셨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남들처럼 부족함 없이 평범하게 잘 살았을텐데 미안하다'는 말을 내게 많이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있다"고 했다. 주정훈은 "이번에는 할머니에게 지난번에 못 딴 금메달을 따왔다고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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