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영화 만들었는데 일 끊긴 건 처음, 상황 어렵다"
[이선필 기자]
▲ 영화 <파일럿> 스틸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여러 관계자들은 천만영화 등장으로 극장에 관객들이 더욱 몰릴 것이라는 낙수효과를 들며 대형 영화 중심의 공격적인 배급을 지지했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2017년~2019년) 평균 매출액의 약 72% 수준에 그쳤다.
우려스러운 건 두 편의 천만영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저예산 한국영화가 모두 손해를 봤다는 점이다. 제작비 100억 원 미만, 손익분기점 200만 관객 규모인 중급 영화 중에서 올해 6월까지 200만을 넘긴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그나마 7월 들어 개봉한 <탈주>와 <파일럿>이 200만 관객과 300만 관객을 넘기며 체면을 살렸다. 두 영화의 순제작비는 각각 80억 원과 60억 원 수준이다. 하반기, 특히 본격적인 여름 성수기를 살짝 피한 배급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상반기 천만영화의 낙수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양극화 심화 현상, 도대체 왜?
<범죄도시4> 개봉 당시 일일 상영 점유율은 82%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이는 역대 최고 점유율에 해당한다. 평소 같았으면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극장 상황과 한국영화산업 침체를 해소할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중저예산 영화 입장에선 스크린을 힘들게 확보해도 개봉 2주 차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하이재킹>처럼 수요일 개봉이 아닌 금요일 개봉을 울며 겨자 먹기로 택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런 이유로 2024년 상반기 평균 관람 요금(객단가, 영화의 전체 매출액을 총 관객수로 나눈 금액. 이 금액을 극장과 제작사가 나눠 갖는다) 또한 3년 만에 1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영진위가 발간한 상반기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평균 관람요금은 9698원이다. 외국영화 및 특수관 영화들의 매출 감소가 주원인이라 분석하고 있지만, 이 또한 천만영화의 낙수효과가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영화 <탈주> 스틸컷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이 관계자는 "제작단가도 너무 올랐다. 인건비를 줄일 수는 없고, 배우들 출연료도 너무 많이 오른 상태라 이름 있는 배우 두 명 정도 캐스팅하고 로케이션 한 번 다녀오면 제작비 80억 원 정도를 훌쩍 넘긴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투자 관계자 B씨는 "이번 추석도 텐트폴 영화(텐트를 칠 때 세우는 지지대처럼, 한 투자배급사의 라인업에서 가장 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 - 기자 말)라고 하면 <베테랑2> 한 편밖에 없는데, 그만큼 시장이 양극화된 것은 맞다"며 "콘텐츠의 질로 평가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중저예산 영화 같은 경우 전략적으로 강한 영화를 피해 빈집털이하는 식으로 배급한다든가, 마케팅에 힘을 주는 방식으로 가게 된다"고 답했다.
B씨는 "당연히 시나리오가 좋다면 중급 영화 또한 투자하겠지만, 단순히 손익만 계산해서 들어오는 작은 영화의 경우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며 "작은 영화든 큰 영화든 마케팅 비용은 비슷하게 들어가기에 극장만 바라보고 영화를 택하기보다는 해외 판매나 부가판권 등까지 고려해서 투자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 출범식이 끝난 후 이어진 일일호프에서 출범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는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
ⓒ 성하훈 |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DGK),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여성영화인모임, 전국독립영화전용관네트워크 등 국내 18개 영화 단체가 참여했다. 영화인연대는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포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객단가 정상화, 스크린독과점 방지, 영진위 지원사업 복원, 홀드백(극장 상영에서 다른 부가 상영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기간) 법제화 등 멀티플렉스와 정부를 향해 적극적인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이 같은 영화인연대의 행동엔 ▲공정하고 객관적인 극장의 수익 배분으로 제작사와 일선 영화인들의 창작 동기를 부여하고 ▲법적으로 특정 영화의 독과점 상영을 막고 ▲극장 상영 기간 자체를 확보함으로써 다양성 확보 및 기본적 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가 깔려 있다.
이처럼 영화계에서 여러 목소리가 나오지만, 주요 투자배급사 중에서 내년 및 내후년을 바라보고 중급 영화들에 투자를 확정했다는 소식은 요원하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개봉하지 못했던 영화들이 올해까지 대거 개봉한 가운데, 새 작품들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이번 여름 시즌을 겨냥하고 개봉한 <행복의 나라>와 <빅토리>> 또한 기대 관객수에 훨씬 못 미치면서 손익분기점 돌파가 어려워졌다. 당분간은 한국영화산업 위기론이 거세게 불거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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