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주장에 반가워한 웹툰 작가들... 슬픈 이유가 있습니다

더불어삶 2024. 8. 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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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

[더불어삶]

웹툰 산업의 성장세가 무섭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웹툰은 당연히 무료로 보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웹툰을 보기 위해 쿠키를 굽고(네이버 웹툰), 캐시(카카오페이지) 또는 코인(레진코믹스)을 충전하는 등 지갑을 여는 게 자연스럽다. 웹툰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웹툰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작가들의 수도 빠르게 늘고 기안84처럼 일반대중에게도 유명한 스타작가들도 많아졌다. 지난 6월 28일에는 네이버웹툰의 모회사, 웹툰엔터테인먼트가 미국 주식시장인 나스닥에 상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웹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웹툰 산업은 2018년 첫 실태조사가 시작된 이후로 매년 규모가 커지고 있다. 2022년 웹툰 산업의 총매출액은 역대 최대인 1조 8290억 원으로 전년보다 16.8%가 늘어난 수치라 한다. 장밋빛 성장세가 가득한 가운데, 웹툰 산업의 중요한 주체인 웹툰 작가들의 상황은 어떠할까? 시민단체 더불어삶 회원들이 지난 7월말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나 '웹툰 노동'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아래는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압축 요약한 것이다.).

- 웹툰을 사랑하는 시민들 중에 웹툰작가노동조합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웹툰을 만드는 작가는 프리랜서로 여겨지는데 '노동자'라고 지칭하시는 이유를 설명해 주시면 좋겠네요.

"웹툰의 저작권을 가지니까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의 결과물이 자기에게 귀속되니까 노동자가 아니다, 예술가니까 노동자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 같은 다양한 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는 것과 저작자로서 저작권을 보호받는 것은 상충되지 않습니다. 저작권은 재산권이에요. 노동3권은 헌법에 명시된 일하는 국민의 권리고요. 예술가는 노동자일 수 없다는 것 역시 허위의식이라고 봅니다.

또 밖에서는 웹툰 작가가 '프리랜서', '개인 사업자'로 플랫폼에 작품을 자율적으로 올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휴재나 웹툰 컷 수 조절도 불가능합니다. 플랫폼의 노동 통제와 불공정 계약, 수익 배분 구조 등에 의해 웹툰 작가는 사실상 플랫폼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창작 활동을 하는 '노동자'인 거죠."

- 웹툰 작가의 자유도가 높지 않다는 걸로 들리는데요? 플랫폼과 웹툰 작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웹툰 작가는 플랫폼과 직접 계약을 맺기도 하지만, 제작사(CP)를 통해서 플랫폼에 작품을 연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작사는 작가를 대신해 플랫폼과 계약을 맺고 작품을 기획, 관리, 유통을 합니다. 휴재와 제작과정 등 작가들을 관리하기도 하죠. 이 경우 작가는 제작사와 직접 계약을 맺기 때문에 플랫폼은 작가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자기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플랫폼 페이지에서 작품이 얼마나 어디에 노출되느냐는 작품 매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요.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보이는 페이지 하단에 작게 작품이 걸려있으면 보는 사람도 확 줄어들 수 밖에 없죠. 반면, 웹툰 플랫폼 페이지에 접속하자마자 바로 보이는 곳에 작품이 있으면 당연히 클릭 수가 늘고 매출이 늘어납니다. 페이지 내 작품 배치를 결정하는 건 플랫폼의 권한이에요. 플랫폼이 작가와 제작사보다 절대 우위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플랫폼이 작가에게 특정 장면이나 작화 등을 요구하는 등 작품에 간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당하더라도 요구를 거절하면 해당 플랫폼에서 다음 작품을 연재하기 어렵게 될 테니 작가들은 웬만한 요구는 수용합니다. 마찬가지로 불공정한 계약 조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죠. 어떤 일이 있어도 휴재를 하지 못하고 연재가 끝날 때까지 내 몸을 갈아넣을 수밖에 없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 웹툰산업 구조 웹툰산업의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 더불어삶
- 웹툰 플랫폼과 제작사, 웹툰 작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록 원청 대기업과 하청업체, 하청업체 노동자의 관계와 겹쳐 보입니다.

"플랫폼이 가져가는 과도한 수수료 때문에 작가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 역시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노조에서 계속 노력한 결과, 2021년 국정감사에서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카카오페이지, 카카오웹툰 운영 주체) 대표들을 소환했어요. 그때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동훈 당시 웹툰작가노동조합위원장이 웹툰 산업의 현실을 증언했죠. '1000만 원의 수익이 나면 거대 플랫폼이 30~50%를 떼어간다. 남은 700만 원은 메인작가, 보조작가, 글작가, 제작사가 다시 나눠 (실제로 메인작가가 받은 몫은) 최저생계비에도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다.'

당시 국정감사는 플랫폼이 웹툰 산업의 주체들에 대해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즉, 작가가 제작사와 계약을 맺더라도 최상위에 위치한 플랫폼이 작가의 노동환경과 수익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웹툰노조는 네이버웹툰, 카카오엔터 등 플랫폼과 직접 교섭을 하기 위해 힘써왔고, 2022년에는 창작자(작가), 플랫폼, 제작사 등 웹툰 업계 관계자들과 '웹툰 상생협의체'가 출범했어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웹툰 상생협의체의 논의를 바탕으로 최근 문체부에서 '웹툰 표준계약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 웹툰 수익 배분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뭐가 문제인가요?

"웹툰 업계의 수익 배분 구조는 특이해요. 이걸 이해하려면 MG(minimum guarantee, 미니멈 개런티)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MG는 최소 수익이라는 의미로 작가는 플랫폼이나 제작사에게 계약한 MG를 미리 지급받아요. 하지만 원고료와는 다른 개념이에요. 계약할 때 작가는 플랫폼이나 제작사와 수익 배분 비율도 정하는데, MG는 이 수익 배분 계산에 포함되거든요."

MG 계약은 업계 당사자인 작가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 과정도 복잡할 뿐만 아니라 계약서 상에는 용어를 교묘하게 바꿔 기재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후차감 MG의 수익 배분 방식을 이미지로 그려보았다.
▲ 후차감 MG 후차감 MG 계약의 구조를 그림으로 나타냈다.
ⓒ 더불어삶
"플랫폼이 MG로 200만 원을 지급하고, 작가와 플랫폼(+제작사)가 수익 분배를 5:5로 합의한 경우를 봅시다. 작가가 받는 MG가 200만 원이니, 수익 분배 비율을 맞추기 위해 플랫폼도 200만 원을 가져갑니다. 웹툰 수익이 MG을 넘어간 순간부터 초과수익을 5:5로 나누는 게 아니에요. 플랫폼도 200만 원을 가져간 다음 발생하는 수익부터 5:5로 정산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웹툰 수익이 작가에게 지급하는 MG, 플랫폼이 MG에 대한 수익 배분으로 가져가는 수익금보다 적을 때입니다. 작가는 MG로 200만 원을 미리 지급받았지만, 플랫폼은 웹툰 수익이 적어 MG 계약에 따라 받아야할 금액 200만 원을 다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플랫폼이 100만 원을 받지 못했다고 합시다. 계약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 100만 원을 작가가 갚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상하죠? 원래 Minimum Guarantee는 최소수익보장이라는 뜻이라는데, 현실 웹툰 산업에서 MG는 최소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방식인 거죠."

반복해서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찾아보니 이러한 후차감 MG 방식은 작가에게 위험을 모두 부담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고, '예술인 복지법'상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게 맞았다.

"걸그룹 이달의소녀(LOONA) 출신 츄가 전 소속사와 불합리한 계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진 적 있잖아요. 연예 활동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금의 70%를 소속사가 가져가고 활동에 드는 비용은 50%씩 부담하는데, 전체 매출 중에 회사 쪽 수익을 먼저 떼어가고 나서 비용을 제하는 식이었어요. 그러면 츄는 연예 활동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거죠.

웹툰작가들도 똑같아요. 일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빚이 계속 쌓이고 손해를 보는 구조. 이렇게 불공정한 계약이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어요. 그런데 츄가 전속계약 소송을 해서 이겼잖아요. 우리도 똑같은 상황이니 계약의 부당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작가들이 나서서 증언을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고, 교섭이든 상생협의체든 플랫폼을 불러내는 것도 쉽지는 않죠."

- 수익을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운 계약 구조네요. 웹툰 작가들의 장시간 노동도 전부터 널리 알려진 바인데, 주당 평균 몇 시간 정도 작업을 하시나요?

"제가 저의 노동시간을 측정해 보니까, 2022년과 2023년의 평균 노동시간이 주당 80시간 정도 되더라고요. 저는 제가 제일 많이 일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웹툰 작가들 대상으로 실태 조사 인터뷰를 해보니까 (주당 작업시간이) 100시간 넘는 분들이 꽤 되더라고요. 매일 12시간씩 일하다가 어느 날 하루는 밤을 새서 마감을 하다보면 100시간이 넘어가는 거예요. 다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책상에서 밥을 먹어요.

이렇게 장시간 노동을 하다 보니 작가로 일한 지 10년이면 몸이 완전히 소모가 되어버려요. 손목이 나가는 건 당연하죠. 손목 관절은 소모품이니까요. 이 분야에서 골격근 질환 없는 사람은 없어요. 저만 해도 작년에 목디스크가 심하게 와서 한동안 일을 하지 못했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최대 '주 69시간' 노동을 허용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을 때, 작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다른 반응이 나왔어요. 우리는 69시간만 일해도 하루를 쉴 수 있어서 너무 좋거든요. 주 52시간 이상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거는 완전 딴 세상 이야기이죠. 워낙 오래 일하니까 노동시간 대비 수입을 계산해 보면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쳐요. 그래서 최저임금 이야기를 해도 다들 매우 놀랍니다."

참고로 콘텐츠진흥원의 '2023 웹툰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업계 종사자의 일주일 중 평균 창작 일수는 5.8일, 창작하는 날의 평균 소요 시간은 9.5시간으로 조사됐다. 이 결과만 봐도 웹툰 작가의 장시간 노동이 보편적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하신아 위원장은 현실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현재 웹툰노조는 자체적으로 웹툰 작가의 근로시간 등 노동 환경을 조사하고 있다.

- 웹툰 작가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지점은요?

"웹툰노조에서 가장 힘쓰고 있는 건 웹툰 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겁니다. 웹툰 작가들의 과도한 업무량과 장시간 노동은 자발적인 게 아니에요. 플랫폼의 압박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플랫폼이 사실상 사용자라는 건 웹툰 작가도 노동자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죠. 이 부분은 웹툰 작가의 적절한 노동시간과 쉴 권리(휴재), 적정 임금과도 바로 연결됩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작가들이 휴재는커녕 매번 엄청난 작업량과 마감에 쫓겨야 하는 건 플랫폼의 과도한 요구, 불공정한 계약조건 때문이에요."
▲ 휴재가 어려운 이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웹툰작가 실태조사' 결과의 일부
ⓒ 한국콘텐츠진흥원
- 사각지대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확대 토론회에서 웹툰 업계는 "임금은 하한선, 노동시간은 상한선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플랫폼이 사실상 사용자인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웹툰 작가는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일한 만큼의 적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너무나 중요해요.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겠지만, 웹툰 작가에게는 특히 시간은 곧 돈이에요. 한번 따져 볼까요? 보통 신인 작가의 경우 회차당 40~60만 원 정도를 받아요. 그런데 1회의 웹툰 원고가 약 70컷이거든요. 시나리오 다음에 그림 부분만 콘티 70컷, 배경 70컷, 밑그림 70컷, 선화 70컷, 밑색 70컷, 음영 채색 70컷, 후보정 70컷... 이렇게 최소 7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잡아도 회차당 140시간은 걸려요. 이걸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을 받는 거죠. 앞에서 MG의 문제점을 설명했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갚아야 하는 MG마저도 최저임금 미달인 거예요.

5월에 소득세 신고를 하잖아요. 제가 여러 회사와 플랫폼에서 일해도 국가는 저의 소득을 아주 투명하게 파악하고 있거든요. 모든 기록이 플랫폼 서버에 남고 그걸 국세청과 근로복지공단이 다 파악해서 세금과 고용보험료를 떼어가요. 이럴 땐 사각지대가 아닙니다. 그런데 최저임금 같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때가 되면 갑자기 우리를 사각지대로 내몰아요.

우리 웹툰작가들도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국민이잖아요?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에 확대 적용의 근거가 있어요. 국가가 우리의 데이터를 투명하게 파악하고 있으니까, 우리의 노동에 대한 시간당 임금을 계산하는 것도 가능하거든요. 그 금액이 산출되려면 얼마만큼의 노동량이 드는지, 또 작품의 종류마다 노동량이 어떻게 다른지, 조사하면 알 수 있다는 거죠. 화물 안전운임제나 소프트웨어 기술자 노임단가처럼 이미 적용된 사례도 있고요. 그래서 웹툰작가에게도 최저임금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최저임금법 제5조(최저임금액)
① 최저임금액은 시간ㆍ일(日)ㆍ주(週) 또는 월(月)을 단위로 해 정한다. 이 경우 일·주 또는 월을 단위로 해 최저임금액을 정할 때에는 '시간급'으로도 표시해야 한다.
③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해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제4조(도급제 등의 경우 최저임금액 결정의 특례)
법 제5조 제3항에 따라 임금이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해진 경우에 근로시간을 파악하기 어렵거나 그 밖에 같은 조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되면 해당 근로자의 생산고(生産高) 또는 업적의 일정단위에 의해 최저임금액을 정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더불어삶 홈페이지(www.livewithall.org)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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