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행담도휴게소, 우리가 몰랐던 100년의 진실

심규상 2024. 8. 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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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 행담도 관통으로 잊힌 주민 20여 명의 삶과 문화, 책 <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 로 복원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행담분교 옛모습
ⓒ 행담향우회
"석양에 물든 고향 앞바다, 언덕 위 측백나무에 둘러싸여 있던 행담분교, 퉁소 바위, 동녁곱, 마당녀 등 정겨운 지명들, 이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이 책과 영상을 계기로 행담도 휴게소에 한 세기 가까이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이익주 행담향우회 회장(63)의 소감을 듣는 동안 행담도 옛 주민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 회상에 잠겼다. 임은주씨(90)는 행담도에서 생활하던 옛 추억이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이다 옆자리에 앉은 옛 행담도 이웃 주민의 손을 맞잡았다.

20일 오후 4시 당진시청 3층 해나루홀에서는 행담도에 거주하던 주민 2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행담도 주민들의 삶을 기록한 첫 기록집과 영상물이 공개되는 자리였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명소, ' 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
 20일 오후 4시 당진시청 3층 해나루홀에서는 행담도에 거주하던 주민 2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행담도 주민들의 삶을 기록한 첫 기록집(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 - 구술로 만나는 행담도의 역사)과 영상물이 공개되는 자리였다.
ⓒ 심규상
 오성환 당진시장(가운데)이 행담도 옛 원주민 대표들과 발간된 행담도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심규상
지난 2000년. 당시 한국에서 가장 긴 다리인 서해대교가 행담도를 관통했다. 동시에 행담도휴게소가 들어섰다. 이름 그대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行) 행담도(行擔島)가 됐다. 행담도휴게소는 전국 고속도로휴게소 중 매출액 1~2위를 다투는 휴게 명소다.

하지만 서해대교가 지나기 직전까지, 행담도휴게소가 생기기 직전까지 그곳에 100년 가까이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당진시는 2022년부터 행담도에 살았던 사람들이 삶의 기록 등 역사 문화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날 그동안의 연구조사 결과물인 책 <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구술로 만나는 행담도의 역사(4×6배판 249페이지)>를 내놨다. 원주민들의 삶을 그린 영상물 '행담도 다큐멘터리'도 상영했다.
 오성환 당진시장이 행담도 책자를 살피다 당시를 회상하며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 시장은 2000년 당시 행담도가 속한 신평면의 면장이었다. 당시 오 시장은 지역주민을 대신해 도로공사를 분주히 오가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오 시장의 행담도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지역주민들 못지 않았다.
ⓒ 심규상
책과 영상물에는 유구한 역사 속 행담도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대동여지, 임하필기(이유원), 조선시대 한시, 고종실록, 심훈의 수필(칠월의 바다) 등 기록 속에 등장하는 행담도를 샅샅이 찾아 실었다. 언제부터 행담섬에 사람이 살았는지, 주요 수산물, 생활문화사, 자연과 생태, 마을의 지명도 복원했다. 행담도 원주민들이 서해대교 건설과 휴게소 건립과정에서 섬을 떠나야만 했던 속사정도 담았다.

마을 주민들의 구술증언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20여 년 만에 행담도 원주민들이 다시 모여 '행담 향우회'가 복원됐다. 당진시는 이에 발맞춰 행담도 휴게소 로컬푸드 행복장터 야외에 행담도 옛 사진을 모아 전시했다.

이날 공개된 책(<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을 보면 오성환 현 당진시장은 원주민들이 섬을 떠났던 2000년 당시 행담도가 속한 신평면의 면장이었다. 당시 오성환 면장은 한국도로공사가 원주민들의 생계 및 이주대책 마련 없이 행담도를 개발하려 하자 "도로공사에서 섬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는 경우는 전국 최초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 또 지역주민을 대신해 도로공사를 분주히 오가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오성환 당진시장이 발간된 책(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을 들어 보이며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행담도를 휴게소와 서해대교가 지나는 섬이 아닌 역사가 숨쉬고 원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곳임을 알게 돼 지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심규상
오성환 당진시장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 행담도 역사관 조성 노력"

이날 행사를 주관한 오성환 시장의 행담도에 대해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지역주민들 못지 않았다.

"2000년 초 아이엠에프(IMF)를 겪으면서 외자 유치가 국가의 핵심과제가 됐습니다. 모든 기관이 외자 유치만의 살길이라고 외쳤습니다. 한국도로공사가 행담도를 관광단지로 개발한다며 싱가포르 회사의 자본을 유치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죠. 도로공사가 행담도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얻은 뒤 갯벌을 메우면서도 행담도에 살던 원주민들은 편히 먹고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오 시장은 "하지만 투자도, 원주민들에 대한 약속 이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일갈했다.

"약속한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0년 당시 행담도 관광단지 개발을 위한 안전 기원제를 겸한 기공식에 참여했는데 엄청난 크기의 살구나무 아래서 했습니다. 태어나 그렇게 큰 살구나무는 처음 봤습니다. 그때 도로공사와 건설회사에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길지언정 절대 베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런데도 안전을 빌던 나무마저 싹둑 베어내더라고요. 그러니 사업이 잘될 리 있나요. 결국 투자도 이뤄지지 않았고, 주민들도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섬을 떠나야 했죠.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한정만 행담도 원주민 "울지 않으려고 어금니 악물었다"
 2023년 9월 27일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경찰청 헬기에서 바라본 행담도휴게소에 차들이 주차돼 있다.
ⓒ 연합뉴스
오 시장은 발간된 책을 원주민을 대표한 한정만씨(70)에게 전달했다. 책을 전달받은 한 씨는 "책장을 넘기며, 행담도 영상과 사진과 보는 내내 옛 추억에 가슴이 울렁거렸다"라며 "오늘 내내 울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악물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행담도 내에 작게나마 행담도 역사관을 조성해 책 내용을 전시해 주민들의 실향 아픔과 슬픔을 달래주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행담분교에서 교사를 역임한 김명중씨(92)도 참석했다. 김 전 교사는 1983년부터 1985년 사이 행담분교 교사로 근무했다. 김 전 교사는 오 시장에게 "행담도 원주민들의 역사복원에 관심을 쏟은 데 대해 주민들을 대신해 감사드린다"라며 "주민들의 숙원인 행담도역사관 조성에 마지막까지 힘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오성환 당진시장(오른쪽)이 발간된 책을 원주민을 대표한 한정만씨(70)에게 전달하고 있다.
ⓒ 심규상
이익주 행담향우회장도 "오늘 공개된 책과 영상이 행담도역사관 조성의 계기가 되고 전시자료로 쓰이길 고대한다"는 바람을 표했다.

오 시장은 "이 책과 영상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행담도를 휴게소와 서해대교가 지나는 섬이 아닌 역사가 숨 쉬고 원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곳임을 알게 돼 지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도로공사와 지속해서 협의해 행담도 내 행담도 역사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종우 당진시 문화체육과장은 "발간된 책은 원주민들의 고령화로 사라질 뻔한 행담도의 역사를 주민 구술을 통해 생동감 있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라고 말했다.

남광현 당진시문화유산팀장은 "당진시에서는 수년 동안 당진포구와 섬, 마을 사를 연구해 구슬채록을 하고 있다"라며 "행담도 구술사는 그동안 벌인 사업의 결정판"이라고 자평했다.

이 책은 당진시립중앙도서관과 읍면동별 작은 도서관에서 열람 및 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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