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새삼스러운 자기소개

2024. 8. 2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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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머리 아팠던 경험을 하나 꼽자면 책에 들어갈 짤막한 자기소개 글을 쓴 일이다.

타인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건 취업준비생일 때나 대표인 지금이나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청각으로 전환된 문장은 시각일 때보다 더 명징한 사실로 와닿았고 이렇게 나를 소개할 수 있어 방긋 웃음이 났다.

골머리를 앓게 한 자기소개서 덕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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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올해 가장 머리 아팠던 경험을 하나 꼽자면 책에 들어갈 짤막한 자기소개 글을 쓴 일이다. 와이드 모니터가 부담스럽기도 처음이었는데 채워야 하는 공백도 그만큼 널찍하게 느껴져서였다. 태양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위로 솟는 동안 망망대해와 같은 머릿속에서 나를 수식할 단어를 찾고 조합하느라 분주했다. 애석하게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키보드 위 손놀림이 몇 배는 더 빨랐다.

타인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건 취업준비생일 때나 대표인 지금이나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이번 주에 할 일과 다음 주에 해야 할 일이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되는 와중에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심오한 질문을 잠자코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당장 명확한 답을 내리고 현시점에 이르기까지의 복잡한 인생경로를 약도처럼 간결하게 그려내야 했으니 막막함에 머리만 쥐어뜯었다. 다시 포물선을 그리는 태양이 땅과 가까워지며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릴 즈음이 돼서야 “일과 놀이와 꿈이 같은 사람”이라는 첫 문장으로 운을 떼었다. 내 삶의 형태를 제법 잘 담아냈다고 생각해서인지 퍽 마음에 들었고 잘게 혀를 굴려 읽었다. 청각으로 전환된 문장은 시각일 때보다 더 명징한 사실로 와닿았고 이렇게 나를 소개할 수 있어 방긋 웃음이 났다.

골머리를 앓게 한 자기소개서 덕에 알았다. 이미 익숙해져 간혹 권태마저 느끼는 일상이 한때는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었다는 사실을, 일에 대한 열정이 피로와 불만으로 때로는 만족과 즐거움으로 궁극적으로는 살고 싶은 인생을 향해 가는 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경험해 왔음을, 일과 놀이와 꿈이 같은 사람으로 세상에 서기까지 장고와 분투로 채운 나날이 튼튼한 주춧돌이 됐음을 말이다. 안개에 갇힌 듯 흐릿한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면 새삼스럽더라도 나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한 번쯤 써보길 권한다. 자신과 자기 인생을 촘촘하게 이해하는 진솔하고도 묵직한 시간을 보내게 될 테니.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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