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영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로보택시 질주하는 중국… 우버·타다 막은 한국
일찌감치 상업용 주행시험 허가
운전기사 없는 텅 빈 흰색 SUV
전용 앱 호출 3분 만에 달려와
우한 500대 이상 로보택시 운영
내년까지 전국 25곳으로 확대
중국 후베이성의 성도이자 인구 1400만명의 대도시인 우한은 중국 자율주행차의 핵심 테스트베드 중 한 곳이다. 우한은 2019년 일찌감치 도심에 ‘국가 스마트 커넥티드카 테스트 시범지구’를 개설하고 바이두 등 자율주행 관련 업체에 상업용 주행시험을 허가했다.
바이두는 지난해 7월부터 우한에서 6세대 자율주행 플랫폼 ‘아폴로’가 탑재된 로보택시(무인자율주행택시) ‘뤄보콰이파오’의 상업용 시험운행을 시작했다. 뤄보콰이파오는 레벨4 등급의 자율주행차량으로 운전기사는 물론 안전요원도 탑승하지 않는다. 우한은 상업용 로보택시가 가장 광범위하게 서비스되는 곳이 됐다.
이달 초 우한에서 직접 탑승해본 뤄보콰이파오의 성능은 기대 이상이었다. 전용 앱으로 호출하자 3분 만에 운전기사도 안전요원도 없이 텅 빈 흰색 SUV가 달려왔다. 우한에는 500대 이상의 로보택시가 운영 중이다.
뒷문 옆에 달린 키패드에 휴대전화번호 뒷자리 4개를 입력하자 문이 열렸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주행 관련 장비가 탑재돼 있어 승객은 뒷좌석에만 탑승할 수 있다. 앞 좌석 등받이에 장착된 터치스크린을 통해 출발, 긴급연락, 에어컨 및 멀티미디어 조작 등이 가능하다.
출발하자마자 자전거 한 대가 역주행으로 다가왔다. 로보택시는 속도를 줄이면서 경적을 울린 뒤 핸들을 살짝 오른쪽으로 틀었다가 복귀하는 방식으로 피해갔다. 운행속도는 60㎞를 넘지 않았고 차선을 바꾸거나 좌·우회전할 때마다 핸들이 스스로 움직였다. 약 5㎞를 15분간 이동한 뒤 부과된 요금은 1900원, 택시요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로보택시가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지난달 무단횡단하는 보행자와 접촉사고를 내는 등 여러 차례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두도 “로보택시가 원인이 된 사고는 없다”고 주장할 뿐, 사고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로보택시 운행 지역이 도로가 넓고 잘 정비된 외곽이나 신도시가 아니라 차량 통행량이 많고 혼잡한 도심이었다는 점이다. 우한은 원래 운전이 거친 곳으로 유명한데 도심에선 역주행이나 무단횡단, 신호위반도 잦았다. 이런 곳에서 상업운전을 하며 축적한 데이터는 엄청난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뤄보콰이파오가 지난 4월까지 제공한 상용 서비스는 누적 600만회였다.
로보택시를 가장 먼저 상용화한 건 미국 구글의 계열사인 웨이모다. 웨이모는 2020년부터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교외에서 로보택시를 유료로 운영하고 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운행지역을 확대했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완화로 빅테크 기업 외에 GM 산하인 크루즈와 테슬라 등 완성차 업체들도 로보택시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1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우한 등 16개 지역을 ‘커넥티드카 및 스마트 도시 공동 개발 시범도시’로 지정하고 민간 기업의 로보택시 실증 사업 지원에 나섰다. 이듬해 우한, 충칭, 베이징에서 안전관리자가 없는 레벨4 택시 운행을 허가했고 2023년 6월 선전에서 최초로 상업적 유료 운행을 승인했다.
중국은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에서 미국에 뒤처지지만 과감한 규제 완화와 광범위한 시험, 주행데이터의 축적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한다. 로보택시 운영 도시도 내년까지 전국 16개에서 25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대로 가면 규제와 갈등의 벽에 가로막힌 한국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승차공유 서비스에서도 한국을 앞질렀다. 중국을 찾은 한국인들은 미국 우버와 같은 중국의 승차공유 서비스 디디의 편의성과 가성비에 감탄한다. 전용 앱에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한 뒤 차량을 호출하면 이동하는 동안 중국어를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다. 추천경로와 예상요금이 앱에 표시되고 결제도 앱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바가지를 쓸 걱정도 없다. 럭셔리카와 6인승 등 선택의 폭이 넓은 데다 요금도 저렴하다. 기사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자가용만 있으면 투잡으로 자투리 시간에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
중국이 교통 혁신에서 한국을 멀찌감치 앞지른 비결 중 하나는 특유의 사회주의 체제다. 승차공유 서비스도 택시기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밀어붙였다. 로보택시도 비슷하다. 소득 감소와 실직을 우려한 디디와 택시기사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는 등 저항이 거센 데도 사업은 확대일로다. 로보택시 관련 부정적 루머는 소셜미디어에서 곧바로 삭제된다. 로보택시가 사고를 내면 보험은 어떻게 할지, 자율운행을 위해 취득한 개인정보는 어떻게 처리할지 등 법적·제도적으로 미비한 점도 많지만 문제 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중국의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혁신을 흉내 낼 수는 없다. 사회 갈등을 핑계로 우버와 타다를 막았던 ‘정치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혁신을 선도하던 한국이 ‘우버도, 로보택시도 없는 이상한 나라’로 전락할 수 있다. 충분한 대화와 설득, 보상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신도시나 농어촌 등 갈등이 적은 곳에서부터 혁신을 시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한=글·사진 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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