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더 부담을"vs"세대 간 갈라치기"…연금 차등인상론 공방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신성식 2024. 8. 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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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국정 브리핑을 하는 모습. 윤 대통령은 내달 초 이와 유사한 형식으로 연금개혁을 비롯한 5대 개혁 과제 진행 상황을 설명할 예정이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내달 초 연금개혁 방향을 공개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기초·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구조개혁방안을 9월 초에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전언에 따르면 세대별 보험료 인상률 차등화, 재정안정화장치 도입 등이 거론된다. 이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정부의 방침 발표에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김설 '미래세대·일하는시민의 연금유니온' 집행위원장은 "대통령실에서 개혁안을 제출한다니 환영할 만하다. 개혁 논의가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다.


장년 0.5~1%p, 청년 0.3%p 인상

세대별 보험료 차등 인상안은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의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들어있다. 정부는 이 계획을 토대로 국회에 운영계획을 보고했다. 5년마다 정해진 법적 절차이다. 정부는 "세대 간 형평성 제고를 위해"라는 목적을 제시했다. 가령 보험료를 3%p 인상할 때 중년 세대는 매년 0.5~1%p를 올리고, 미래 세대는 매년 0.3%p 를 올리는 식이다.

연령 그룹별 차등 인상은 낯선 제도이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을 가진 나라에서 이렇게 한 적이 없다. 사회보험은 공평한 부담이 원칙이다. 이런 점 때문에 논란이 뜨겁다. 지난해 10월 정부 설명이 나왔을 때와는 온도가 다르다. 논란이 가속하면 세대 갈등으로 비화할 수도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더러 나온다. 그런 만큼 정부가 채택하기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스위스의 퇴직연금에서 비슷한 제도를 운용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의원은 "스위스 퇴직연금은 40대 중반부터 점진적으로 보험료가 올라간다. 연령이 올라가면 더 급하게 오른다"고 말한다. 퇴직연금은 공적연금은 아니다. 윤 박사는 예전에 스위스 전문가에게 "이렇게 되면 대기업이 직원을 빨리 내보내려 하지 않겠느냐" "50대의 불만이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전문가가 "종업원 입장에서도 나이 들수록 노후소득 중요성을 더 느끼기 때문에 고령일수록 더 부담하는 데 대해 불만이 없다"고 설명했단다. 우리와 문화 차이가 있어 참고사항일 뿐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3 회계연도 결산(정부) 관련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연금개혁 등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조 장관은 "9월 초에 정부 안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른쪽부터 이기일 복지부 1차관, 조 장관, 박민수 2차관. 뉴스1

찬성론자 "장년층 더 부담하는 모습 보여야"

윤 박사는 "우리처럼 저출생·고령화가 빠른 나라가 없다.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차등 인상론을 옹호한다. 윤 박사는 "현재 적립하지 않은 연금 부채(연금지급액-적립금)가 1825조원에 달하고 이게 미래 세대에게 돌아간다. 젊은 층은 자신들에게 덤터기 씌우는 거라고 여긴다"며 "장년층이 5, 10년 더 빨리 보험료를 올리는 최소한의 노력을 보여야 젊은 층이 연금개혁에 따라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한 발 더 나간다. 이 전 처장은 "연금을 수령하고 있는 수급자들도 연금액을 일부 깎아 고통 분담하자"고 주장한다. 그러고 나서 곧 연금을 받게 될 장년층도 보험료를 더 내고, 젊은 세대가 천천히 적게 내는 순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수급자 연금액을 깎은 전례가 있긴 하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때 연금액 상승을 정지시켰다. 2016~2020년 연금액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는 않아 사실상 삭감하는 효과가 났다. 수급자가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했다.

장년층이 더 부담하자는 주장의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 50대는 1990년대 연금에 가입해 소득대체율(생애소득대비 연금액의 비율)이 60~70%로 높았던 기간을 오래 거쳤다. 2007년 연금개혁 이후 대체율이 죽 떨어져 지금은 42%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국민연금 소득재분배의 미시모의실험 모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65년생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34.9%, 70년생은 32.8%이다. 95년생 이후 세대는 27.5%이다. 같은 보험료 9%를 내도 50대가 더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소득활동을 할 때 보험료를 좀 더 부담하자는 게 차등 인상론이다.


반대론자 "불필요한 논쟁 야기해 개혁 저해"

반론도 만만찮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사무국장은 "차등인상론은 불필요한 논쟁을 만들어 개혁을 어렵게 할 것"이라며 "50대 비정규직·자영자가 20, 30대 정규직보다 여력이 크다고 할 수 없다. 경제적 여력이 없는 50대를 사각지대로 몰아 나중에 기초연금·기초생계비가 책임지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고 반대한다. 보험료 형평성을 기하려다가 계층 형평성을 걷어차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보험료를 일괄 인상하되 청년층의 군복무·출산 크레디트, 실업 보험료 조세 지원을 늘리자"고 제안한다.

젊은 세대도 의견이 엇갈린다. 김주영 경북대신문(학보) 편집국장은 "40, 50대는 보험료를 더 부담해야 했는데 오랫동안 9%만 내왔다. 이런 상황에서 다 같이 보험료를 올리는 게 오히려 형평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차등 인상론이 합리적 방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김설 위원장은 "미래 세대를 위해 연금을 개혁하자는데, 미래 세대는 20, 30대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라고 봐야 한다"며 "지금 세대를 나눠 차등 인상하려는 것은 세대 간 갈라치기이다. 앞으로 세대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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