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8·15 통일 독트린, 북 호응 유도가 숙제
올해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 통일을 위한 도전과 응전’이란 제목의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올해는 여야 합의를 거쳐 1994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발표한 지 30주년이 된 뜻깊은 해다. 윤 정부는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수정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시대 변화를 반영해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통일의 지향점, 즉 ‘자유 통일’을 천명했다.
대한민국 헌법 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며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질서이자,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쟁취한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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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된 통일 방안에 자유를 접목
북은 민족 개념 부정한 ‘두 국가론’
북한 반응 끌어낼 조치 모색해야
」
전 세계 많은 국가도 자유민주주의 질서 유지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 어떤 국가도 완벽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운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체제는 과거보다 더 많은 시민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자유의 확대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참여, 그리고 타협과 조정의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는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대가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유의 가치를 특정 정당이나 집단의 전유물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자 위선이다. 자유는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며, 모든 국민이 앞으로도 지켜내고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이번 통일 독트린은 이런 자유의 가치를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에 담아내려 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제시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은 미·중 데탕트와 미·소 냉전 종식, 그리고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국내외 환경과 남북 화해 분위기 등을 두루 반영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24년의 한반도와 주변 국제 정세는 정반대 분위기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말 제8기 9차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다. 이런 ‘두 국가론’은 민족과 통일의 개념 및 당위성을 모두 폐기한 것이다. 남북 체제 경쟁에서 패배했음을 자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두 국가론을 전후해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 생존의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자유 진영은 러시아·북한·이란을 ‘불량의 축(axes of rogue)’으로 부르는 상황이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국제사회의 전반적 민주주의가 현저히 쇠퇴하는 상황에서 등장한 불량의 축은 신냉전 대결 구도를 더욱 고착시키고 있다.
이번 통일 독트린은 북한의 반민족·반통일 노선과 신냉전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이는 국제 환경에 대한 대한민국의 전략적 대응이란 측면이 있다. 동시에 변화하는 국제 환경을 고려해 제시한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과거 남북 화해를 위해 모호하게 남겨두었던 자유의 가치를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문제는 통일 독트린에 대해 북한의 반응이다. 압록강 일대 대형 수해 상황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제의에도 무반응이고, 통일 독트린 발표와 함께 제안한 ‘남북 대화 협의체’ 설치에도 침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북한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낼 적극적 조치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정부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와중에 자유 통일 독트린을 통해 대북 정책의 전략적 명확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다만 국내적으로 통일 독트린은 ‘흡수 통일’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은 당파적 논쟁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앞으로 ‘자유 통일 독트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한반도 통일과 대북정책에 대한 관심도는 높지 않다. 진영으로 쪼개진 국제 환경에서 자유의 화두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러한 가치외교가 자칫 한국 대외정책에 운신의 폭을 좁힐 수도 있다는 점을 십분 고려하길 바란다. 향후 어떻게 더 풍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천 가능한 정책으로 구체화할지 주목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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