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열린 사회와 개딸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당원의 위력을 실감했다. 조직표 동원 같은 과거의 유물은 잘 안 보였다. 하긴,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방적인 게임이긴 했다. 초반부터 90% 전후로 표를 싹 쓸어가면서 ‘구대명’이란 말이 나왔으니. 어쨌든 득표율과는 별개로 당원들의 자발적 총의가 발현되는 모양새였다. 그 총의가 쏠려 김대중(DJ) 이후 24년 만에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대표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동지’를 14번 부르짖으며 이들을 향한 애정을 듬뿍 표현했다.
민주당은 역사가 긴 만큼 당원의 뿌리도 깊다. 자발성이라는 데 방점을 찍자면 그 원류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다. 2002년 대선 때 노사모가 들었던 노란 풍선은 노무현의 캐릭터와 결합해 현대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한 표를 가졌지만, 장삼이사일 수밖에 없던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최초로, 또 최대로 발현된 때이기도 하다. 노무현은 이들을 ‘깨어있는 시민’(깨시민)이라 일컬었다.
이 효능감에 대한 집단 기억 때문인지 유독 민주당에선 깨시민류의 자발적 결사체가 명멸을 이어가는 중이다. 노사모 다음은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었고, 지금은 ‘개딸’(개혁의 딸)이다. 이 정도면 진보 정치사의 고고한 흐름 중 하나라 할 만하다.
흐름은 변하게 마련이라서일까, 성공의 기억이 쌓여서일까. 초창기엔 스스로 표현한 대로 ‘사랑하는’ 정치인을 응원하는 정도였는데, 최근엔 실력 행사에 적극적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일부 예비후보를 향해 좌표를 찍은 뒤 집단 린치를 가해 총선판에서 쫓아냈다. 5월엔 국회의장 후보를 뽑는 원내 경선에 개입하려 들었고, 지지한 이가 떨어지자 극렬히 반발했다. 이후 당은 원내 경선에 권리당원의 뜻을 반영하도록 게임의 규칙인 당헌·당규를 바꿔버렸다. “당원 중심정당을 지향한다”는 논리였다.
개딸들은 이런 실력행사에 효능감을 느낄 테지만, 지켜보기 불편하다. 탄탄한 스크럼을 짠 뒤 다른 생각이나 다른 인물은 몽땅 배제하는 뺄셈의 정치가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든다? 우격다짐으로 꿇리면 된다. 개인에 대한 호오를 떠나 최고위원 경선에서 수위를 다투던 정봉주가 아웃된 게 대표적이다.
개딸을 향해 “진영 논리에 반대하면 ‘수박’으로 규정하고 쫓아내 대화와 토론을 없애버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진단은 정확하다. DJ와 노무현의 일생은 전체주의와의 투쟁이자 열린 사회를 향한 여정이었다.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는 그 후예들 가운데 뿌려진 전체주의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역설적인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권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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