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노트북 펑펑… 교육청 ‘포퓰리즘’

양민철,이의재 2024. 8. 2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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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교부금 대수술 할 시간] <상> 여전히 줄줄새는 교부금


강원도교육청은 내년부터 고등학생에게 재학 중 1회 20만원을 ‘진로활동지원금’(진로지원금)으로 지급한다. 학생들은 이 돈으로 문화생활이나 영화·공연·스포츠 관람 등의 진로 탐색 활동을 할 수 있다. 해마다 25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강원도의회 교육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5월 회의에선 진로지원금 신설을 놓고 “선심성 예산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상 학생들에게 주는 용돈 지원금”이라거나 “20만원으로 무슨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도교육청은 “다른 교육청도 다 하는 사업”이라며 “학부모와 아이들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반박했다. 조례안은 지난 6월 도의회 문턱을 넘었다. 이승진 도의원은 20일 국민일보에 “아이들 미래를 위해 쓰는 돈을 반대하느냐는 말에 결국 통과됐다”고 했다.

전국 시·도 교육청이 각종 현금·선심성 사업을 늘리며 교육 예산이 낭비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교육 지원’이란 명분으로 제대로 된 점검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 17개 시·도 교육청을 대상으로 예산 사용 실태를 감사했다. 그 결과 2018년 1052억원이던 현금·복지성 지원 사업이 2022년 1조1492억원으로 급증해 5년간 예산 3조5067억원이 남용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교육청 5곳, 사업 9개를 사례로 들며 “소득과 상관없이 학생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거나 교육·행정직 공무원에게도 노트북을 지급하는 등의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감사원 지적 1년이 지났지만 다수 교육청은 예산 낭비로 지목된 사업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은 2021년부터 ‘입학지원금’ 명목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신입생에게 각각 20만원, 30만원을 지급해 지적 대상이 됐다. 그러나 올해도 여전히 같은 제도를 운영 중이다.

강원도교육청은 교직원에게만 주는 자체 출산 축하금을 대폭 늘려 예산 남용 사례로 지적됐다. 도에서 지급하는 출산 지원금과 별개로 자녀 수에 따라 30만~300만원이던 교직원 축하금을 100만~500만원까지 늘려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도교육청은 “저출생 극복에 필요하다”며 올해도 지원액을 그대로 유지했다.

예산 낭비란 지적에도 시·도 교육청이 이런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지난해에만 75조8000억원에 달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 자리한다. 내국세의 20.79%를 떼어 전국 교육청에 나눠주는 교육교부금은 특별한 사용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다. 예산을 남용하거나 학령인구가 주는 것과 상관없이 세수가 늘면 교육교부금은 자동으로 증가하는 구조다.


2015년 39조4000억원이던 교육교부금은 2020년 53조5000억원, 지난해 75조8000억원까지 불어났다.

학생 1인당 교육교부금도 1000만원을 넘기며 각 교육청은 예산을 펑펑 써도 다 쓰지 못해 2022년에만 7조원을 남겼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교육교부금 확대가 방만한 교육 지출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한 부작용은 향후 경제활동을 할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시·도 교육청은 예산 지출의 명분으로 ‘교육 기회 확대’를 들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중학교 신입생 전원에게 노트북을 지급한다. 정부 국정과제에 따라 시행을 앞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활용’을 위해 노트북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복지 확대’도 주요 명분이다. 세종시는 초·중·고·특수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15만~30만원 상당의 현장체험학습비를 무상 지원한다. 강원도·전북도 등 다수 교육청이 소득과 상관없이 체험학습비, 교복 구입비 등을 지급하고 있다. 모두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목적이다. 한 지역 교육청 관계자는 “무상 급식이나 교복비 지원 같은 복지 사업은 모든 교육청이 다 하고 있다”며 “우리 지역만 안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예산을 다 쓰기 위해 서로의 사업을 ‘베끼기’도 한다. 전남도교육청은 2018년부터 매년 교직원 300여명에게 1인당 3000만원까지 무이자로 빌려주는 ‘무주택 교직원 주택임차 지원 사업’을 벌여 감사원의 예산 남용 사례로 지적됐다. 감사원 지적에도 여전히 운영 중이다. 강원도교육청도 유사한 형태의 ‘교직원 주거 지원 사업’을 2022년부터 시작해 4년 간 총 13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다. ‘격오지 근무 교사들의 거주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유다.

교육 예산은 ‘입학 홍보’에도 쓰인다. 서울의 한 A특성화고는 매년 텀블러·보조배터리·수건 등을 대량 구매해 중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고 있다. 지난해는 연말에 쓰고 남은 예산 1200만원으로 홍보에 참여한 학생 30명과 ‘1박2일 뒤풀이 여행’을 떠났다. A고 한 교사는 “말을 잘 들은 학생들에게 남은 예산으로 선심을 쓴 셈”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현금·복지성 예산은 성과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입학준비금, 체험학습비 등 지원은 애초에 ‘복지 확대’에 방점을 둔다. 소득과 상관없이 나눠주는 터라 실질적 효과 측정도 어렵다. 진로지원금의 경우도 실제 학생들의 진로 탐색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판단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승진 도의원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만족한다’고 응답하는 결과가 많으면 예산 성과가 있었다는 식”이라며 “돈을 공짜로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다.

학계에선 이런 식의 예산 지출이 ‘직선제 교육감’들의 정치적 활동에 오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선 중앙대 교수는 2012년부터 10년간 전국 9개 시·도 교육청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교육감이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목적사업비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교육감 당선자의 득표 비율이 1% 포인트 늘 때마다 학생 1인당 약 4만5000원의 사업비가 더 분배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교육감들이 선거 직후에는 득표율이 높은 지역구에 목적사업비를 더 분배하다가 다음 선거를 앞두고는 득표율이 낮았던 지역에 더 많은 사업비를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선거 시기와 결과에 따라 사업비 배분이 조정된다면 교육 재정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각 교육청의 현금·선심성 사업들은 상당수가 교육감들의 선거 공약에 해당한다. 제주도교육청의 노트북 지급 사업이나 강원도교육청의 진로지원금은 모두 2022년 교육감 선거 공약이었다.

공약이행률 달성 역시 재정 지출과 맞물려 과잉 경쟁을 유발한다. 울산시교육청은 지난해 천창수 교육감의 목표 대비 공약이행률이 110.7%를 달성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53개 공약사업 중에 마스크 등 학교 방역물품 상시 비축, 학생건강증진센터 설립 등으로 목표 대비 공약을 초과 달성했다는 것이다. 강원도교육청은 신경호 교육감의 지난해 공약이행률이 146%라고 발표했다. 4년 임기 내 제시한 160여개 공약 사업 중 130개 사업을 지난해 완료해 목표 대비 공약달성률이 100%를 크게 넘어섰다고 했다.

그러나 공약이행률 현황을 뜯어보면 재정 지출로 달성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강원도교육청의 지난해 공약 사업 중 ‘인성교육 체험 프로그램’은 공약이행률이 1200%를 넘었다. 당초 8번으로 계획한 체험 프로그램 운영 횟수를 100번 넘게 진행해 이행률이 크게 뛴 것이다. ‘수능 평가문항 개발 사업’도 공약이행률이 390%를 넘겼다. 출제 관련 연수를 받은 교사 수가 계획 대비 3배 이상 늘며 이행률이 대폭 올랐다. 이런 식의 공약이행률 집계가 논란이 되자 도교육청은 최대 이행률을 100%로 조정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공약이행률이 교육감 선거에서 쟁점이 되다 보니 전국 모든 교육감이 숫자 키우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각 교육청이 선심을 쓰는 이상한 교육 문화는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교육 재정이 제대로 된 목적에 맞춰 편성·관리되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이하 교육 재원은 늘고 대학교 이상 재원은 줄어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문제로 거론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넘지만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평균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며 “이런 상태라면 교육기관별 재원 배분의 문제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양민철 이의재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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