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식물의 기후 적응
온 화단을 뒤집고 다니다 말벌에 한 방 쏘였다. 꿀벌과 달리 말벌은 근육을 울리는 통증이 정말 지독하다. 원인은 내가 화단을 방치한 사이, 그 밑에 땅벌이 집을 지은 게 문제였다. 올여름 나의 정원은 방치에 가까웠다. 해외정원투어 계획이 잡혀 한 달에 보름씩을 비운 데다, 뜨거운 날씨 탓에 정원 일을 거의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아무리 정원이 좋아도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났다. 어쨌든 올여름 나의 손길이 멈춰진 정원은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화단은 내가 심은 풀과 굴러들어온 잡초가 뒤섞여 난장판이고, 키 큰 식물들도 하부가 마른 지푸라기처럼 부석거렸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버거운 여름에 의외로 잘 적응한 식물도 보였다. 잎이 바늘같이 가느다란 ‘위성류’란 나무다. 뾰족한 잎을 지닌 식물은 대부분 상록인데 위성류는 낙엽이 진다. 관목형으로 키가 5m 정도까지도 자라고, 잎 색깔이 특유의 연한 연두색이어서 정원에 부드러운 효과를 낼 수 있는 식물로 아주 좋다. 씩씩하게 자란 위성류를 보자니, 침울했던 마음에 반전이 생겼다.
식물은 환경을 버리거나 떠나지 못하기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 식물의 생존방식이 바로 최강 생명체가 된 비법이기도 하다. 사실 올여름은 나 역시도 순탄치가 않다. 보통은 여름에 살이 빠지고 야위었다가 가을 겨울에 살이 오르는 편인데, 여름에 갑자기 체중이 늘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왔다. 곱씹어보니 뜨거운 날씨를 피하고 싶어 가드닝도 멈추고, 예년에는 별로 쓰지 않던 에어컨을 내내 켜고 산 게 큰 원인이 된 듯싶었다.
이제 우리는 뜨거워진 지구를 네 탓, 내 탓 할 일이 아니라 적응하는 숙제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이 주는 교훈처럼, 이제 우리도 이 뜨거움에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처서에도 아직 뜨거운 저 정원으로, 나는 다시 땀 흘리러 가보려 한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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