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폭로로 본 K능력주의…개인·조직의 상생 방법 찾아야 [박가분이 소리내다]

박가분 2024. 8. 2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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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더 많은 성과 보상 요구
권위주의적 희생 강요에 반발
조직 재생산 필요성 설득해야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부조리를 지적한 후 선수 개인에 대한 정당한 보상 논란이 불거졌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 선수가 경기를 마무리한 직후 폭탄 발언을 던졌다. 부상을 관리하지 못한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대표팀과는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후 여러 언론 보도로 협회 내부의 부조리와 부실한 선수 관리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올림픽 직후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귀국 후 안 선수의 구체적인 요구가 보도되자 “광고를 찍지 않아도 배드민턴만으로도 경제적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스폰서나 계약 부분을 막지 말고 풀어줬으면 좋겠다” 등 금전적 문제에 대한 갈등이 노출됐다. 여자는 만 27세, 남자는 만 28세 이상이어야 개인 자격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한 규정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안 선수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시 협회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는 것을 막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갈등의 핵심은 선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범위와 개인의 자율성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는 문제이다.

「 청년층 더 많은 성과 보상 요구
권위주의적 희생 강요에 반발
조직 재생산 필요성 설득해야

물론 선수에 대한 협회의 지원이 미흡했다는 정황이 여럿 보도됐고 여론은 여전히 안 선수에게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협회의 반론 중에도 일부 참작할만한 부분이 있다. 배드민턴용품기업의 개인 후원에 대한 제한을 전면적으로 풀 경우 형평성 문제는 물론 종목 선수층의 장기적인 재생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프로 선수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배드민턴 종목의 경우 기업 후원이 유명 선수에게 쏠리면 유소년 선수 육성은 물론 국내 대회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한국사회의 세대 가치관 충돌 상징


이처럼 안세영 선수와 협회의 갈등은 한국사회의 많은 기업과 조직을 관통하는 신구 세대의 상반된 가치관의 충돌을 대변한다. 충분한 성과를 낸 스타 선수에게 합당한 경제적 보상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과 엘리트 선수층의 지속적인 재생산을 위해 스타 플레이어도 일정 부분 종목 전체의 대의에 복무해야 한다는 조직의 논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세영 선수가 지난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의 자율 보장과 정량적 성과에 비례한 보상을 중시하는 청년세대의 능력주의적 사고가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례로, 요사이 젊은 노조 조합원들이 예민하게 이의 제기하는 사안 중 하나는 성과급을 연공서열 논리로 분배하는 관행이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는 조직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한 공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연공적 성격의 보상이 있어야 하겠지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이 일상화된 노동시장에 익숙한 청년들에게 그것은 또 다른 불공정 관행일 뿐이다.

현재의 갈등 구도에서 선수 개개인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스포츠 협회의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협회 스스로 얼마나 진정성 있게 선수를 위해 봉사했느냐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대가 없는 희생에 대한 반발은 젊은 세대가 이른바 ‘K-능력주의’로 기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K-능력주의란 더는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K-권위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립한다. 개인의 희생과 헌신이 결국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붕괴한 상황은 청년세대가 눈에 보이는 정량적 성과에 기반한 분배 논리에 매달리도록 만든다.

안세영 선수가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후 올린 인스타그램 글. [사진 안세영 인스타그램]

‘헌신하면 더 큰 보상’ 믿음 줘야


저성장과 불안정 노동이 만연한 시대일수록, 불확실한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기 싫다는 사고가 퍼지고, 지금 눈에 보이는 성과라도 공정하게 보상하라는 요구가 첨예해진다. 특히 전성기의 기량을 발휘하는 시기가 한정적인 젊은 스포츠 선수라면 이미 국제 대회에서 충분한 성과를 냈음에도 오랜 기간 개인 후원과 출전 자격 제한을 강제하는 협회의 논리가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청년들의 능력주의 문화는 엘리트 체육계 내부에서 관행으로 정당화되던 집단주의와 권위주의 문화에 균열을 일으킨 셈이다.

안세영 선수에 대한 동정론의 결이 세대별로 다른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갈등 사태 초반에 사회 정의파 성향의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 문제를 강자와 약자 간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갑질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안 선수가 개인 후원 쟁점을 제기한 이후 청년 커뮤니티 여론이 들끓었던 현상은 그가 국제 대회에서 발군의 성과를 냈음에도 낡은 조직 문화에 구속 받은 채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대한체육회 앞에 태극기와 대한체육회 깃발이 날리고 있다. 뉴스1


극단적 능력주의도 문제 있어


능력주의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고루한 연고주의와 세습구조를 타파하는 진보적 사회변화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메우기 힘든 격차 구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복무하기도 한다. 능력주의가 극단으로 흐를 경우 단기적 성과주의에 매몰된 채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균형 발전을 도외시하게 된다는 맹점도 있다. 물론 청년 자신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능력주의 외의 다른 설득력 있는 대안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능력주의의 한계는 뚜렷하지만 그렇다고 과거 연고주의로의 회귀에 불과한 것을 요새 유행하는 ‘능력주의 비판’이라는 슬로건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청년들이 납득할 리 없다.

한편 이번 사태에서 안세영 선수가 “제가 하고픈 이야기에 대해 한번은 고민해주고 해결해주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본다”고 발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국제 성적 향상과 종목의 인지도에 기여한 주역인 선수들의 ‘피·땀·눈물’에 합당한 보상을 하면서도, 종목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선수 개개인의 발전이 함께 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안착시키는 것은 결국 ‘어른의 몫’이다.

박가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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