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의 러 침공, 진짜 목표는 장거리 미사일 허용”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침공이 15일째 이어지면서, 개전 2년 반만에 ‘전쟁 방정식’이 뒤집혔다. 그간 러시아의 공세에 지속적으로 밀렸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포로를 대거 확보하는 등 깜짝 성과를 올리며 다음 선택지를 고를 여유를 갖게 된 반면, 자국 영토·국민 보호에 실패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채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진짜 목표는 러시아 영토 점령이 아닌 ‘장거리 미사일 사용’에 있다고 분석한 가운데, 푸틴의 핵 위협 가능성도 제기되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단계로 옮겨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쿠르스크 일대 1250㎢에 걸쳐 92개 마을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서울시 면적의 두배가 넘는다.
아울러 우크라이나군은 국경 근처를 흐르는 세임강 이남에 설치된 교량 3개를 잇달아 파괴했다. 이로써 세임강 이남의 러시아 국경지대는 우크라이나 본토, 세임강, 쿠르스크로 진격한 우크라이나군에 삼면이 둘러싸인채 포위됐다. 러시아에선 적에 둘러싸이거나 강을 등진채 퇴로가 막히는 상황을 군사용어로 ‘가마솥’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러시아의 처지가 그렇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러시아 본토 침공이란 ‘초유의 도박’을 벌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 파트너들이 러시아 영토에서 무기 사용에 대한 권한 제한을 모두 해제한다면, 우리는 쿠르스크 지역에 물리적으로 진입할 필요가 없다”며 재외공관장들에게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를 받아내도록 지시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앞서 지난 12일에도 젤렌스키는 서방 동맹국을 향해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의 깊숙한 곳을 쏠 수 있게 해달라”고 수차례 호소하며 “(장거리 미사일 사용으로) 푸틴의 통치를 끝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이라는 초유의 작전을 감행함과 동시에 장거리 미사일 사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하자, NYT는 “이번 작전의 진짜 목표는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라고 분석했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지원받은 장거리 미사일은 미국의 에이태큼스(ATACMS)와 영국·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스톰 섀도(프랑스명 스칼프)다. 에이태큼스는 사거리 300㎞ 이상으로, 첩보 기관이 식별한 위성항법장치(GPS) 표적을 높은 정확도로 타격하는 게 가능하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맹활약 중인 하이마스(HIMARS·고속기동포병로켓체계) 발사대에서 발사하는데, 기존 미사일보다 빨라 중간 요격이 어렵고 이동 중인 목표물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스톰 섀도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장거리 순항 미사일로, 전투기에서 발사된다. 사거리는 250㎞ 이상이다. 발사된 뒤 적의 레이터 탐지를 피해 최대한 낮은 고도로 내려가 적외선 탐지기로 목표물을 찾아가 타격하는 게 특징이다.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장거리 미사일은 개전 초기부터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전쟁 초기 서방은 확전 가능성을 우려해 지원조차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전선 상황이 악화하면서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하지 말 것”이란 단서 조항을 달아 지원했다.
현재까지 미국은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은 상태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15일 MS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무기와 능력을 갖추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며 에이태큼스는 ‘방어용’임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NYT는 “개전 이후 30개월 동안 서방은 특정 무기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반복적인 요청을 거듭 거절하다 결국 양보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며,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금기’ 역시 깨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미국과 독일은 각국 최첨단 주력탱크인 M1 에이브럼스와 레오파드2의 지원을 거부하다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요청에 결국 지원했다. 미국산 F-16 전투기 역시 젤렌스키의 끈질긴 요청에 결국 지원이 성사됐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이 가능해지면 러시아의 핵 위협이 고조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해 푸틴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만약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지원을 받는 공격으로 러시아 영토 일부가 파괴된다면 우리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푸틴 역시 지난해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 뒤 “국가 존립에 위협이 있으면 이론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벨라루스에선 핵 사용에 대한 ‘희미한 암시’가 반복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 18일 “우크라이나의 격화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게 만들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전쟁의 확대는 우크라이나의 파멸(destruction)로 끝날 것”이라고도 위협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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