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사태…‘PG 수난시대’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가 전국적 이슈로 떠오르며 새삼 주목받는 업태가 있다. 바로 ‘전자지급결제대행(PG)’ 사업이다. 결제 취소와 환불 지연 책임이 티메프가 아닌 PG사에 쏠리면서 자연스럽게 그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가 늘었다. 정부와 금융당국에서도 관리감독 강화를 외치며 연일 PG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쇼핑몰 대신 카드사 돈 받아 셀러에 정산
PG는 ‘Payment Gateway’의 약자다. 우리말로 표현해보면 ‘결제 관문’ 정도 되겠다. 단어에서처럼 PG는 ‘결제를 중개하는 사업자’다. 전자상거래 소비자와 판매자, 그리고 카드사 사이에서 결제와 정산을 대신해준다. 신용카드 결제는 물론 계좌이체, 통신사 결제, 상품권 등 온라인에서 쓰이는 대부분 결제 수단을 취급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쇼핑을 비교하면 PG 역할을 알기 쉽다. 예를 들어 한 대형마트에서 원피스를 산다고 하자. 소비자는 대형마트에 카드 결제를 하고 원피스를 가져간다. 카드 가맹점인 대형마트는 카드사로부터 돈을 곧장 정산받는다. 이러면 끝이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은 다르다. 의류 쇼핑몰에서 원피스를 살 경우 카드사는 고객에게 받은 돈을 쇼핑몰이 아닌 PG사에 전달한다.
PG사는 여기서 자기 수수료를 제한 남은 돈을 쇼핑몰에 준다. 이후 쇼핑몰이 입점 판매자(셀러)에게 다시 정산해주는 구조다. 소비자 → 카드사 → PG사 → 이커머스 플랫폼 → 입점 판매자 순으로 대금이 결제·정산된다.
왜 온라인 쇼핑 정산 과정에는 오프라인에선 찾아볼 수 없는 PG사가 껴 있게 된 걸까. 쇼핑몰과 카드사 모두 PG사가 있는 편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영세 쇼핑몰 입장에서는 카드사 같은 금융기관과 직접 가맹 계약을 맺기가 어렵다. 온라인 결제에 필요한 시스템을 자체 구축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과 절차가 만만치 않다. 고객이 결제한 카드번호와 유효기간, CVC 번호를 확인하고 안전하게 전달하는 인증 과정이 대표적이다. 각 카드사가 저마다 다른 형식의 결제 요청을 요구할 경우 쇼핑몰은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를 PG사가 종합해 대신 처리해준다.
카드사도 귀찮은 일을 덜 수 있다. PG사와 계약을 맺으면 수많은 쇼핑몰과 일일이 만나 가맹 심사를 할 필요가 없다. 실제 카드사와 쇼핑몰은 직접 계약 관계가 아니다. 이렇게 복잡한 결제·지급 과정을 대행해주는 대신 PG사가 총 결제액의 0.2% 정도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PG사 매출도 크게 뛰었다. 현재 한국에만 150개가 넘는 PG사가 등록돼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수료율이 과거 대비 많이 줄었지만, 전체 수익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만큼 거래 금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업계 1위 PG사로 평가받는 KG이니시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14% 이상 늘어난 1조3448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또 다른 대형 PG인 NHN KCP 역시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 늘어나는 등 고속 성장을 이어오는 중이었다.
KG이니시스는 1차 PG, 티메프는 2차 PG이 밖에 나이스페이먼츠, 다날, 한국정보통신, 헥토파이낸셜 같은 기업이 주요 PG사로 영업 중이다.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토스페이먼츠, NHN페이코 등 간편결제(페이)와 PG업을 함께하는 기업도 있다.
따지고 보면 티메프 같은 오픈마켓 플랫폼도 PG사에 포함된다. 카드사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았을 뿐, PG와 사실상 동일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카드사 대신 PG사로부터 돈을 받는다는 점만 다르고 판매자에게 대금을 대신 정산하는 건 똑같다. 카드사와 계약을 맺은 PG사를 ‘1차 PG’, PG사와 계약한 오픈마켓은 ‘2차 PG’라고 한다. 실제 금융당국 역시 오픈마켓을 2차 PG로 규정해 관리·감독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이커머스 기업 대부분이 스스로를 PG로 등록해놓고 있다. 포인트·캐시·머니 등 다양한 선불충전금을 서비스하는 플랫폼도 PG다. 쿠팡, G마켓, 올리브영, 11번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컬리, 당근 등이 여기 해당한다.
선환불로 피해 막심…규제는 계속 강화
승승장구하던 PG업계는 최근 티메프 사태로 전환점을 맞이한 모습이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다. 대규모 결제 취소와 환불 지연에 금융당국이 현행법을 기반으로 ‘PG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PG를 향한 규제도 강화되는 중이다.
당장 피해가 막심하다. 티메프 소비자의 카드 결제 취소 요청이 줄을 잇는 가운데 손실 상당 부분을 PG사가 떠안게 됐다. 돈을 떼먹은 건 티메프지만 환불은 PG사에서 해야 할 판국이다. 티메프와 계약을 맺은 건 1차 PG사지 카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팔지도 않은 상품이고 대금도 티메프에 다 줬지만 결제 취소·환불 책임은 법적으로 PG사에 있다. 금융감독원 등 정부도 PG사가 결제 취소를 거절하면 여신전문금융법(여전법) 제19조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압박했다. 여전법 제19조 ‘가맹점의 준수사항’은 결제대행 업체가 신용카드 회원 등이 거래 취소 또는 환불을 요구하면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했다.
일단 PG사가 소비자에게 선환불을 해주고 있지만 이후 티메프에 손실 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티메프는 현재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어 구상권 청구가 막혀 있다. 한 PG업계 관계자는 “PG사가 아무리 ‘을’이라지만 책임이 너무 과도하다”며 “티메프 선환불을 감당하다 PG사 현금 유동성이 떨어지면 다른 소상공인 정산을 제때 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한숨 쉬었다.
선환불 손실과 별개로 PG사 규제도 강화된다. 정산 기한은 기존대로 사업자 간 계약을 통해 정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 행정기관이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에 새롭게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커머스 업체와 PG사 모두에게 판매 대금 일정 비율을 예치·신탁·지급보증보험 등으로 별도 관리하는 의무도 부과하기로 했다. PG사 등록 요건도 강화한다. 기준 미충족 시 업무 정지·등록 취소 제재를 할 수 있도록 전금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커머스·PG 분리”…겸영 금지 만지작
제3자 에스크로 도입 땐 쿠팡·네이버도 영향권
“PG업계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앞으로는 이커머스와 PG 사업을 함께할 수 없도록 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티메프처럼 PG업을 겸영해온 ‘2차 PG’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커머스가 유동성 압박에 시달릴 때 PG사 자금에 손댈 수 없도록 분리하는 것이 골자다.
판매대금을 은행 같은 제3기관에 별도 관리하는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강제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업계에서는 ‘이커머스판 금산분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최근 이커머스와 PG 사업을 함께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커머스가 PG사를 겸영하면서 판매대금을 함부로 사용하는 관행이 이번 티메프 사태 원흉으로 지목되면서다. 이커머스(유통)와 결제대행(금융)의 분리다.
현재 대부분 이커머스 플랫폼이 PG사를 겸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예 PG업 자체를 못하게 하는 건 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신 그동안 내재화했던 PG 사업을 자회사로 분리하든지, 아니면 별도 외부 업체를 PG사로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PG로 외부 업체를 사용하고 아마존 내부로는 자금이 전혀 흘러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커머스 1·2위 쿠팡과 네이버쇼핑도 PG 겸영 분리 사례다. 쿠팡은 과거 PG사를 같이 운영하다가 2020년 자회사 쿠팡페이를 설립해 분리한 바 있다. 네이버쇼핑도 자체 PG사를 네이버파이낸셜로 분리했다. 무신사 역시 지난해 간편결제 사업 영역을 담당하는 자회사 ‘무신사페이먼츠’를 세웠다.
현재 자체 PG로 운영 중인 다른 이커머스는 고민이 늘어날 전망이다. 카카오, 11번가, G마켓·옥션, 롯데쇼핑 등은 스스로를 PG사로 등록한 형태로 판매대금을 관리하고 있다. 한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쿠팡이나 네이버처럼 PG업을 분리할 경우 신규 법인 설립이나 전산 시스템 분리에 따른 추가 비용이 예상된다”며 “자본이 부족한 이커머스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대형 PG사로 쏠림 현상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이커머스와 PG사에 ‘제3자 보관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렇게 되면 이커머스가 판매대금에 접근하는 게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자연히 PG업도 할 수 없다.
제3자 에스크로가 실제 도입될 경우 PG사를 계열 분리한 쿠팡·네이버 같은 플랫폼 역시 규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은행 등 계열사와 무관한 제3자가 판매대금을 별도 보관·관리할 수 있도록 논의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9월 시행 예정된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 역시 큰 맥락에선 이커머스 금산분리와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금법 개정안은 플랫폼이 선불충전금 100%를 예치·신탁·지급보증보험 등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쌓여 있는 선불충전금을 쌈짓돈처럼 유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다. 대상은 선불충전금 발행 잔액 30억원, 연간 총 발행액이 500억원을 넘는 업체다. 또 부채비율 200%를 초과하는 선불업자는 선불충전금을 제공할 수 없게 되는 등 재무건전성 요건도 강화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커머스 스타트업 대표는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정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티메프 사태 이후 규제 논의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다. 특히 제3자 에스크로는 판매자 빠른 정산이나 취소 금액 회수 면에서 너무도 비효율적인 논의”라며 “특정 기업 경영 실패로 업계 전체가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 대금을 잘 활용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전례도 감안해달라”고 설명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3호 (2024.08.21~2024.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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