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대안내고 野 수용했다…전세사기특별법, 22대 국회 첫 합의
정부·여당이 적극적으로 대안을 마련했고, 야당은 자신들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났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가 고성과 삿대질을 주고받는 순간에도 여야 국토위원들은 회의실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개원 이후 82일 동안 아무런 합의물을 도출하지 못한 22대 국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가 처음으로 정치 복원에 성공했다.
20일 국회 국토교통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여야는 ‘전세사기특별법’을 합의 처리했다. 22대 국회 첫 쟁점법안 합의 처리다. 전세사기특별법은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당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 처리된 뒤, 하루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법안이다. 당시 민주당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여 보증금 일부를 피해자에게 돌려준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식을 채택했으나, 정부는 “무주택 서민의 돈을 쓰는 게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이번 합의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돈은 한 푼도 건들지 않는다. 대신 피해주택의 감정가에서 경매낙찰가를 뺀 ‘경매 차익’으로 피해자의 주거 비용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정부·여당이 제안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 사기 피해 주택을 경매로 낙찰받은 뒤 이를 공공 임대주택으로 피해자에게 10년간 임대료 없이 장기 제공하는 방안 ▶피해자가 경매 차익을 받고 피해 주택에서 바로 퇴거하는 방안 등 두 가지 선택지를 기본으로 삼았다. 만약 피해자들이 LH가 제공하는 공공임대 주택에서 기본 10년 동안 거주하고, 더 거주하기를 원할 경우 일반 공공임대주택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10년간 더 살 수 있도록 안전장치도 뒀다. 경매차익이 10년간의 임대료에 미치지 못할 때는 정부와 지자체가 재정을 추가로 지원하도록 했다.
당초 야당은 경매 차익을 활용하는 방안에 부정적이었다. 경매 차액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피해자가 피해주택 거주를 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국토부가 지난 1일 기존 두 가지 선택지 외에 피해자가 원하는 민간 주택을 LH가 전세 계약을 맺어 피해자에게 제공하는 ‘전세 임대’ 안을 추가로 마련했다. 민주당이 이를 수용하면서 여야는 이날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여야는 협의 과정에서 디테일을 보완했다. 불법건축물과 신탁사기 주택, 다가구주택 등의 전세 사기 사건까지 지원하도록 범위를 넓혔고, 피해 인정 보증금 한도를 기존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했다. 국토부 산하 피해지원위원회의 추가 인정 금액(2억원)까지 합치면 최대 7억원이 피해 금액으로 인정된다. 여야는 향후 사각지대 보완을 위해 국토부 장관이 6개월마다 실태조사를 벌여 국토위에 보고하도록 했다
전세사기특별법은 21일 국토위 전체회의를 거쳐,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여당 간사인 권영진 의원은 “정부·여당 안을 중심으로 그동안 야당이 제기해왔던 사각지대 해소 등을 반영하는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합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야당 법안소위 간사인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법안 처리가) 1년 넘은 상황에서 민주당 안을 고수하는 것이 자칫 (대통령) 거부권 절차로 피해자 구제를 지연할 수 있다고 판단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거대 야당의 강행 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법안 폐기의 악순환을 끊어낸 원동력에 대해 여야 의원들은 “피해자에게 절실한 민생 법안은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였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가 피해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되자, 비로소 여야 간 대화가 시작됐다. 권영진 의원이 지난달 15일 정부·여당이 마련한 대안을 대표 발의한 뒤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권 의원은 지난달 24일 전세 사기 피해자들과의 간담회를 열고 “여당이 마련한 대안이 야당 안보다 피해 구제에 더 효과적”이라며 직접 설득도 병행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 의원이 ‘이 문제는 집권여당이 총대를 메고 반드시 합의 처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용산 대통령실과 국토부 장관 등에게 수차례 전하며 의지를 불태웠던 것으로 안다”며 “민주당 간사인 문진석 의원과도 식사 회동을 통해 공감대를 키웠다”고 했다.
이후 국토위 내부에서 여당 권영진·김은혜 의원과 야당 문진석·이소영 의원이 4인 협의체를 꾸려 빠르게 논의를 진척시켰다. 이들은 지난달 말 여야가 방송 4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극렬 대치하는 와중에도 국회 본청 5층 소위 회의실에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댔다고 한다. 국회 관계자는 “여야가 끝없이 대치하며 공전하는 가운데 이뤄낸 협치의 모범사례”라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도 당정이 대안을 마련하고 여야가 한발씩 양보하면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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