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놓고 의료계 갈등...간협 "전공의 업무 강요" 의협 "정권퇴진운동"
이달 말 진료지원(PA) 간호사를 법제화하는 등의 간호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의료계 갈등도 확대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수련병원 근무 간호사 10명 중 6명이 전공의 업무를 강요받고 있다며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간호법이 의사 업무를 침해한다며 법안 강력 저지를 내세웠다.
지난 13일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원내 수석 부대표는 간호법 등 '비쟁점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22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간호법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 후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양당이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하는 상황인데, 세부 내용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간협은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실태 조사를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뒤 간호사가 합법적으로 의사 업무 일부를 대신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간협 조사에 따르면 시범사업 대상 수련병원(387개) 가운데 실제로 참여한 곳은 39%(151개)에 그쳤다. 하지만 시범사업에 나서지 않은 병원들도 간호사들에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의사 업무를 맡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협은 "간호사 10명 중 6명은 병원에서 전공의 업무를 일방적으로 강요받고 있다"고 밝혔다. 5년 차 간호사 이모(29)씨는 "원래 하던 일은 줄지 않았는데 전공의 업무까지 더해졌다"면서 "간호법이 없어 법적 보호도 못 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사에 참여한 간호사들은 환자 안전사고 발생 등에 대한 부담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간협에 "점점 더 일이 넘어오고, 교육하지 않은 일을 시킨다"거나 "시범사업 과정에서 30분∼1시간 정도만 교육한 후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간협은 의료공백에 따른 병원 경영난으로 '고용 불안'도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41개 상급종합병원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채용한 신규 간호사 8390명 중 아직 발령받지 못한 간호사(13일 기준)가 6376명(76%)에 달했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실태조사 결과 국민 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해 의료현장을 지키는 간호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체계가 허술하고 미흡하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사 집단행동이 장기화하면서 간호사의 근무 환경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며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반면 의협은 간호법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법을 '의료악법'이라 칭하며 "오는 22일까지 국회는 의료계가 반대하는 간호법 진행을 중단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호법 입법 중단 등) 의협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정권 퇴진 운동에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간호법이 통과되면 의료 현장에서 환자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PA간호사 등이 의사 업무를 침해하는 등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 20일 브리핑에서도 "PA간호사로 의사를 대신한다는 발상은 위험하며, 간호사들도 꺼린다"면서 "전공의들이 복귀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문상혁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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