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로 지지율이 급등하는 건 내 평생 처음 봤다"
[홍윤희 기자]
▲ 19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소개되고 있다. |
ⓒ 연합뉴스 |
19일 현재 미국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진행 중이다. 두 달 전 침울하기 짝이 없던 민주당 분위기는 반전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넘겨준 지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미 대선은 지각변동 수준의 지지율 변화를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해 들어 단 한 번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서지 못했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로 등장한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은 가파르게 상승세를 타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집계한 전국 단위 여론조사 평균을 보면, 5일 해리스 지지율이 트럼프를 제치는 골든크로스를 기록했고 19일에는 2%p 가량 앞서고 있다.
미 대선에서 전국 지지율만큼 중요한 게 경합주 지지율이다. 해리스는 바이든이 열세를 보였던 경합주인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에서 19일 현재 트럼프를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이 이겼지만 계속 지지율이 떨어졌던 '선벨트' 지역에서도 해리스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네바다에서는 해리스가 우세를 보이고 있고 애리조나에서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바이든 후보 시절 단념했던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해리스가 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무당파가 적극적으로 민주당 지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민주당에 고무적이다. ABC뉴스·워싱턴포스트·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7월 5~9일에는 무당파 유권자 중 42%가 트럼프를, 40%가 바이든을 지지했으나 8월 9~13일 조사에서는 해리스가 48%, 트럼프가 40%를 기록했다.
▲ 19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개막 전 스크린에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의 이미지가 나오고 있다. |
ⓒ 연합뉴스 |
트럼프는 선거마다 상대 후보를 조롱하는 별명을 붙이면서 상대방을 먼저 정의하곤 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을 '교활한 힐러리(crooked Hillary)'라고 불렀고 2020년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에게 '졸린 조(sleepy Joe)'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해리스에 대해 정의하기 전 해리스 캠프에서 먼저 트럼프를 정의했다. 해리스의 러닝메이트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처음 제기한 '이상한(weird)'이란 단어가 신호탄이었다. 트럼프가 종종 주제를 벗어나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을 알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단어다.
바이든이 트럼프를 '민주주의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이라고 정의했던 것과 비교해 해리스 캠프의 젊고 경쾌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민주당 대통령-부통령 후보로 확정된 해리스-월즈의 유세 연설 가운데 '판을 뒤집는 언어'를 뽑아 보았다.
▲ 8월 26일 자 <타임> 표지. 이 사진을 보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
ⓒ 타임 |
NBC방송 정치평론가 척 토드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대선 투표할 때 현직을 배척하고 새로운 인물을 찾는 경향이 짙어졌다.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설문 조사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하는 미국인들이 55~70%에 달한다. 대선 시즌에 대통령을 새로운 사람으로 바꿔보자는 성향이 생겼고 2016~2024년 대선이 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대통령 부인에서 외무장관이 된 '기존 정치세력' 이미지였고 이때 새로운 인물을 뽑자는 심리 때문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 2020년에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이유도, 올해 선거에서 바이든이 고전한 것도 같은 이치다.
반면 해리스는 현직 부통령인 데다 힐러리 클린턴과 마찬가지로 기존 정치세력에 가까움에도 트럼프에 비해 훨씬 신선한 인물로 비친다는 것이다. 이런 유권자 심리를 잘 꿰뚫은 연설 문구가 바로 '우리는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인 셈이다.
[#2 자유] "너나 잘하세요"
해리스와 월즈의 연설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자유'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구호였던 자유를 비틀어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화당에서는 '자유'를 이야기할 때 총기 소지의 자유, 표현의 자유, 작은 정부 등의 개념을 포괄한다. 그러나 해리스-월즈가 말하는 '자유'는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
미국 여성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거 이슈 중 하나는 임신 중단권의 보장이다. 2022년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원이 임신 중단권을 보장한 판례를 뒤집고 "각 주에서 알아서 결정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보수적인 주에서 임신 중단 시술을 금지하거나 규제하려는 흐름이 늘었다. 해리스와 월즈는 '자신의 몸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여성들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월즈의 이력은 '자유'를 말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일부 공화당 우세주에서 성소수자 인권, 인종차별 이슈 등을 다룬 책을 공교육에서 금지시키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직 교사였던 월즈는 이렇게 말한다. "학교에서 '동물농장(조지 오웰)' 같은 책을 금지하는 게 그들이 말하는 자유인가요?"
월즈는 중서부 지역 출신으로 사냥이 취미다. 미국인들은 자유라는 단어를 들으면 총기 소지 권리인 수정헌법 2조를 연상한다. 따라서 월즈가 이야기하는 '자유'가 도달하는 유권자층은 기존 엘리트 정치인들보다 훨씬 폭넓다. 월즈는 중서부 특유의, 이웃끼리는 친하게 지내지만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정서를 연설에 녹였다.
"정부가 산부인과 의사의 진찰 결과를 들여다보는 식으로 자유를 침해해서야 되나요? 미네소타주에는 황금률이 있어요. '네 일이나 잘하세요.(Mind your DAM* business)'"
▲ 8월 26일 자 <뉴요커> 표지. 해리스-월즈 지지율이 상승세를, 트럼프-밴스 지지율이 하락세를 타고 있는 모습을 롤러코스터로 표현했다. |
ⓒ 뉴요커 |
해리스가 대선후보가 되자마자 소셜미디어에 퍼진 해리스 밈(meme) 중 하나는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이렇게 미친 웃음소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트럼프가 비난하는 해리스의 과거 동영상은 원래 공화당이 해리스를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 퍼트린 것이다. 특히 "얘 너는 코코넛 나무에서 떨어졌는줄 아니?"라고 말하며 해리스가 호탕하게 웃는 연설도 공화당에서 해리스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동영상을 확산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즈가 '즐거움'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은 건 우연이 아니다. 월즈는 부통령 후보가 되기 전 방송에 출연해 "교사로서 사람 관찰을 꽤 잘하는데 트럼프는 다른 이들을 비웃을 줄만 알지, 다른 사람과 함께 웃는 것을 볼 수 없더라"고 말한다. '즐거움'은 상대 진영과의 극명한 대조를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데 '즐거움'이라는 감정 요소를 유세의 주요 키워드로 만드는 것이 유권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CNN에서 외교안보분석 프로그램 <GPS>를 진행하는 파리드 자카리아는 그렇다고 말한다.
유권자들은 투표할 때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대신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선택한 후 그 선택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노벨경제학상을 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만이나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도 주장한 바다.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이 말만 번지르르한 엘리트 정치인들을 혐오한다는 심리를 파고들어 정책적 완결성보다 감정을 부추기는 대선 캠페인을 벌여 성공했던 사례가 다름 아닌 트럼프이기도 하다.
해리스 캠페인, 앞으로의 과제
물론 해리스가 갈 길은 멀다. 지지율을 올렸지만 여전히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한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해리스의 인간적 면모는 보여주었지만 정책 정강 등을 완벽하게 발표하진 않았다. 사회복지, 인권 분야는 비교적 확실한 색깔이 있지만 경제, 외교, 이민 정책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입장은 아직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기존에 낸 바이든 정책집에서 변경이 있을 예정이지만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는 안갯속이다.
해리스가 공격적인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적도 없다. 8월 3주엔 경제 정책을 냈지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업의 가격 폭리를 막겠다는 논리로 진보 진영 언론조차 허술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구체적인 정책을 굳이 발표하지 않는 것이 현재 해리스-월즈 캠프의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유세장 분위기가 좋은데 정책을 애써 설명하면 공격 당할 구실만 늘어날 수 있다. 트럼프가 지난 3주 동안 해리스 캠페인에 모욕적인 별명을 여러 개 붙였으나 하나도 제대로 먹히지 않은 이유는 해리스의 정책 색깔이 잘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르치려 드는 잘난 여성'에 대한 반감이 자극될 수도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선 캠페인의 교훈이 작용할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수백 페이지의 정책공약집을 낸 정책통이었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을 향해 '한심한 인간들(the deplorables)'이라고 언급한 내용이 확산하면서 호감도가 떨어졌고 결국 대선에 패배했다.
해리스-월즈 캠프가 그동안 트럼프의 흑색선전에 염증 느낀 시민들, 특히 무당파와 젊은 유권자를 끌어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ABC뉴스·워싱턴포스트·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18~39세 유권자층 지지율 변화도 흥미롭다. 7월 바이든(48%)과 트럼프(41%) 사이의 지지율 차이에 비해 8월 해리스(59%)와 트럼프(34%)의 젊은층 지지율 간극은 훨씬 더 벌어졌다. '긍정적 분위기'가 11월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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