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세에 정부, 수도권 대출 '핀셋 규제' 꺼냈다

김남준 2024. 8. 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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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최근 집값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수도권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비(非)수도권보다 더 줄이는 방식이 골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기 수순을 밟았던, 부동산 ‘핀셋 규제’가 부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도권 스트레스 금리 0.75p→1.2p로 상향”


20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19개 은행 행장과 간담회를 가지고 “다음 달 1일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시행하되, 은행권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스트레스 금리를 0.75%포인트 대신 1.2%포인트로 상향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 DSR이란 금융사가 DSR 대출 한도를 산정할 때, 가산금리인 스트레스 금리를 추가로 부과해, 대출 한도를 더 줄이는 제도다. 스트레스 금리는 실제 납부하는 이자 계산에는 포함하지 않고, 한도를 산정할 때만 적용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원장·은행장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스트레스 DSR을 올해 2월부터 3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할 방침이었다. 이미 시행 중인 1단계는 기본 스트레스 금리의 25%에 해당하는 0.38%포인트만 적용하고, 대상 대출도 은행권 주담대로 한정했다. 다음 달 시행 예정인 2단계에서는 기본 스트레스 금리의 50%인 0.75%포인트를 적용하고, 대상 대출도 은행권 주담대와 신용대출, 제2금융권 주담대로 확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2단계 시행에 앞서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있는 주택에 한해서 스트레스 금리를 0.75%포인트가 아니라 1.2%포인트로 올리기로 조정한 것이다. 다만 스트레스 DSR 2단계는 시행일인 다음 달 1일 전 부동산 계약분이나 분양 주택에 대한 대출에는 적용하지 않는 경과규정을 뒀다.


“연봉 5000만원 직장인, 수도권 주담대 4500만원 줄어”


김영희 디자이너

수도권 지역은 비수도권 지역보다 그만큼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금융위 자체 추산에 따르면 연봉 5000만원 직장인이 연 4.5% 금리(30년 만기)로 주담대 받으면, 스트레스 DSR 시행 전보다 비수도권의 대출 한도는 약 2700만원이 감소(3억2900만원→3억200만원)한다. 반면 수도권은 같은 조건에서 4200만원(3억2900만원→2억8700만원)이 준다.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약 1500만원 정도 대출 감소 폭이 커지는 것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의 연봉이 높아지면 대출 감소액도 더 많아진다.

수도권 중심 집값 급등에 규제 강화로 기조 틀어


정부가 전격적으로 부동산 대출 규제를 강화한 것은 최근 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원래 금융당국은 “자영업자 어려움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지난달이었던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일을 다음 달로 두 달 미뤘다. 하지만 이후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집값이 과열 양상까지 보이자, 시행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도권에 한해 규제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조를 튼 것이다.
차준홍 기자

실제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7월 전국 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76% 상승하면서 2019년 12월(0.86%) 이후 4년 7개월 만에 최대 상승세를 보였다. 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주택가격전망지수’도 118로 지난 2021년 10월(125)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 거라는 심리가 시장에 확산하면서 가계대출도 급증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4일 기준 719조9178억원으로, 이달 들어 14일 만에 4조1795억원 더 늘었다.

은행들이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맞춰 대출금리를 올린 것도 규제 강화를 부른 요인 중 하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줄이기 위해서 금리를 올리면서 차주 부담이 커졌다”면서 “스트레스 DSR은 대출 한도만 줄이고 금리는 올리지 않기 때문에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더 유리하다”고 했다.


전세대출로 DSR 확대, 정책 대출 제한도 추가 검토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었지만, 시장에서는 집값 상승세를 꺾기엔 다소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집값이 많이 오른 서울 강남과 마포·용산·성동 같은 지역은 대출이 상대적으로 잘 나오는 고소득자들이 주로 매수하는 지역인데, 금융당국이 내놓은 규제 정도로는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 것”이라며 “오히려 하반기에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면, 정부 규제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도 추가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특히 DSR 규제 예외를 줄이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실제 이날 김 위원장은 “다음 달부터 은행권은 모든 가계대출을 대상으로 내부관리 목적의 DSR을 산출하고, 내년부터 이를 기반으로 은행별로 관리계획을 수립해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DSR이 적용되는 주담대와 신용대출 외에 전세자금대출이나 정책대출까지 은행에게 관리 방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것이 정부가 향후 DSR 적용을 전세대출 등으로 확대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보고 있다.

‘생애 첫 대출’ 같은 정책 대출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이런 정책 대출이 DSR 규제를 피하는 방법으로 쓰이면서, 집값 급등의 도화선이 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금융당국은 은행권 주담대 위험가중치를 상향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위험가중치를 상향하면 은행들이 자본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더 줄일 수밖에 없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대출 규제가 서울과 수도권의 수요를 다소 둔화시키는 요인은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주택 공급이 많지 않아 대출 규제만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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