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기만 하면 벽째 훔쳐간다는 이 작가의 그림
[이재우 기자]
▲ 서울 종로구 인사동 그라운드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뱅크시 전시회. 왼쪽 작품이 뱅크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꽃을 던지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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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뱅크시(REAL BANKSY) 전시회에 다녀왔다. 나는 지난 8월 17일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서울(옛 아라아트센터)에서 '꽃을 던지는 사람', '풍선과 소녀' 등 뱅크시의 주요 작품들을 '영접'할 수 있었다. 뱅크시가 설립한 인증 기관인 '페스트 컨트롤'의 공식 인증을 받은 보석 같은 작품들로, 보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에서 열린 뱅크시 전시 중 최대 규모라 한다(전시는 10월 20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제 뱅크시의 작품이 경매에서 얼마에 팔리는지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한다. 필자는 뱅크시와 관련된 서적들, 외국 언론 기사들을 종합해 뱅크시에 대한 몇 가지를 분석해 봤다.
뱅크시가 얼굴 숨기는 이유... 차별화 전략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 예술가 중 한 명인 뱅크시. 그는 과거 자기 고향인 영국 브리스톨에서부터 런던, 파리, 뉴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예술(그래피티)로 전 세계 도시들을 '파괴'했다(좋은 의미로). 거리뿐 아니었다. 이상한 가발을 쓰고, 가짜 수염을 붙이는 등 우스꽝스러운 차림으로 유명 박물관과 갤러리에 무단으로 습격해(?) 자신의 작품을 걸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런 '악동'은 1974년생으로 추정되며, 영국 남부의 작은 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 다른 신상은 공식적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까?
사실 팬들 상당수조차 이런 신상이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단다. '익명성'은 뱅크시의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런던의 한 미술상은 AP통신을 통해 "익명성은 뱅크시 매력의 핵심 요소"라고도 말했다.
▲ 뱅크시의 화제작 ‘풍선과 소녀’. ‘풍선과 소녀’는 소더비 경매장에서 파쇄돼 유명해졌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파쇄되지 않은 버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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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가 별나게 익명성을 추구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2010년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역시 익명)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은 이런 말을 했죠. '만약 내가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하면 많고 많은 배우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나도 찰리 채플린과 같은 처지입니다."
채플린이 그러했듯 뱅크시는 다른 예술가들과 자신을 뚜렷하게 구분 짓고 싶은 의도가 강했던 것 같다. 당시 그는 얼굴이 완전히 가려진 검은색 후드 티를 입고 인터뷰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도 대면이 아닌 이메일로 진행한다.
▲ 사람들은 왜 뱅크시에게 열광할까? 뱅크시는 세상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며 전쟁, 자본주의, 소비주의, 사회 전반을 풍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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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학을 다니지도,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뱅크시는 어떻게 벽화를 그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됐을까? 고향인 브리스톨의 환경이 그를 그렇게 키운 것으로 보인다. 브리스톨의 예술 현장을 다룬 책 <Massive Attack>을 쓴 저널리스트 멜리사 체맘(Melissa Chemam)은 "브리스톨은 가장 역동적인 거리 예술의 수도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1983년 여름 브리스톨의 강 근처에서 첫 거리 벽화가 등장했는데, DDD(3D)라는 가명이 적혀 있었다. 3D는 18세 거리 예술가 로버트 델 나자(Robert del Naja, 1965년생)의 가명이었다. 브리스톨 거리 예술의 선구자인 3D의 영향으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책에 나오는, 뱅크시가 미국 예술잡지 '스윈들(Swindle)'에 했던 말을 들어보자.
▲ 폭탄을 껴안은 소녀의 모습을 담은 작품 ‘폭탄 사랑’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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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도구를 압수당하고 처벌을 받으면서 그래피티 붐은 잠시 멈췄지만, 거리 예술은 이후 시각 예술의 새로운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 뱅크시는 윈스턴 처칠을 모히칸 헤어스타일(오른쪽)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침팬지로 ‘희화화’하는 악동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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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는 가장 정직한 예술 중의 하나다. 그래피티는 누굴 선동하거나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걸 전시하기 위해선 그저 동네에 가장 좋은 '벽'만 있으면 충분하다. 작품을 보기 위해 어느 누구도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Banksy, Wall and Piece>에서 발췌, 펴낸 곳 세리프)
뱅크시는 이제 미켈란젤로처럼 여겨진다. (2019년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1위로 선정되었는데, 당시 미켈란젤로는 10위에 랭크됐다) 더 이상 당국은 그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키려 한다.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벽 소유주들도 영리해졌다. <뱅크시, 벽 뒤의 남자>의 저자는 "뱅크시가 그리는 데 사용한 담벼락의 주인들은 당장 작품을 보호하지만, 곧 떼어내서 시장에 내놓는다"며 그 뒤의 숨은 상업성을 꼬집었다.
아울러 뱅크시의 그림을 벽과 함께 통째 뜯어가는 절도 행위도 종종 발생했다. 지난 8일에도 '도난' 기사가 보도됐다. 뱅크시 작품을 뜯어간(?) 이들은 어딘가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뱅크시 벽 사실 분 계신가요?"
한편, 뱅크시가 작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뭘까? 그는 20대 초반 그래피티에서 스텐실(Stencil) 작업으로 이동했는데, 스텐실은 빳빳한 카드에서 원하는 모양을 오려내 벽에 붙이고 에어로졸 캔으로 스프레이 한 뒤 카드를 떼내면 그 모양만 남는 방식을 말한다.
뱅크시는 BBC 인터뷰에서 "나는 그래피티보다 캔버스 작품을 더 잘 그리려고 한다"며 "문제는 그래피티를 그릴 때 느끼는 흥분을 캔버스에 옮길 수 있느냐인데, 그게 내가 안고 있는 문제"라고 했다. 벽에 직접 그릴 때의 짜릿한 흥분감을 캔버스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한편, 뱅크시는 유독 '쥐'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쥐'는 어떤 상징물일까? 미술 비평가들의 말을 빌리면, 쥐는 뱅크시 작업의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이며, 가장 생산적인 주제 중 하나다.
▲ 뱅크시의 ‘KEEP OU’라는 작품. 쥐가 T를 떼어내 망치로 삼아 셔터 자물쇠를 부수려 하고 있다. (이 사진은 책 <뱅크시, 벽 뒤의 남자>라는 책에서 촬영, 발췌했다. 현재 그라운드서울이 전시를 담당하고 있기에 저작권은 ‘그라운드서울’로 표기했다.) |
ⓒ 그라운드서울 |
이번 전시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뱅크시의 쥐 그림 중에 출입 금지를 뜻하는 'KEEP OU'라는 인상적인 작품(사진 위)이 있다. 관람객들은 "끝에 붙어 있어야 할 T가 왜 없지?"라며 궁금해한다. T는 쥐가 가져갔다. 그림 아래를 보면 쥐가 T를 떼어내 망치로 삼아 셔터 자물쇠를 부수려 하고 있다. 쥐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출입 금지라고? 금지는 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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