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해주' 출간 송호근 "정치권 역사 논쟁 초등학생 수준"

이영희 2024. 8. 20. 14: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황실 유학생으로 일본 육사에서 공부했다. 졸업할 즈음 조국이 사라졌고 도리 없이 일본군 장교로 임관한다. 하지만 3·1 운동을 현장에서 목격하며 민권(民權)에 눈을 뜬 후 연해주로 터를 옮겨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연해주를 내달리며 ‘백마 탄 김장군’으로 불렸던 독립운동가 김경천(金擎天·1888~1942) 이야기다.

사회학자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정신영기금에서 열린 장편소설 '연해주' 출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연해주에서의 독립운동사는 한국 역사의 ‘접힌 페이지’ 중 하나다. 일제와의 싸움이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격동과 얽혀들며 그 맥락이 복잡해진 탓이 크다. 이 그늘 속 역사를 불러낸 사람이 사회학자인 송호근(68) 한림대 석좌교수다. 그는 최근 발간한 세 번째 장편소설 『연해주』(나남)에서 김경천을 중심으로 한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활약과 역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한인들의 삶을 복원해냈다.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송 교수는 “연해주는 상해 임시정부가 생기기 전 먼저 임정이 만들어진, 독립투쟁사의 기원이라 할 만한 곳”이라며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를 비롯해 조선인들의 어마어마한 애환이 그곳에 묻혀있다”고 말했다.

당시의 세계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사상이 대두하고 분투하는 전쟁터였다. 연해주의 독립군들은 의지할 곳이 러시아밖에 없는 상황에서 볼셰비키 혁명군(적군)에 가담해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기도 했다. 김경천 역시 적군과 연합한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이후 소련 정부에 의한 정치적 희생양이 된다.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한 후,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독립운동가 김경천. 연합뉴스


소설은 이 어지러운 시대를 통과한 이들이 겪어야 했을 희망과 좌절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책의 마지막,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열차를 탄 한인들이 저마다의 신산한 삶을 풀어내는 장면에서 극 중 김경천은 이렇게 독백한다. “혁명을 좇아 연해주로 온 것은 운명이었다. 한 시대가 자신의 인생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도 운명이었다. 인간과 혁명이, 혁명과 시대가 운명과 맞닿아 지피는 포연에 길을 잃을지라도 내처 가야 했다. 인생은 꿈과 현실의 접전이 그리는 궤적이다.”

송 교수는 사회학자로서 한국인의 정체성 변화를 탐구한 3부작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국민의 탄생』을 펴낸 바 있다. 소설가로서의 작업은 학문적 문제의식을 ‘인간의 이야기’로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2017년 내놓은 첫 소설 『강화도』가 봉건과 근대가 부딪히는 시대 인민의 탄생을 그린 작품이라면, 이번 『연해주』는 민권이라는 시대 정신에 눈을 떴으나 이를 체현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인간들의 운명을 담았다.

소설 『연해주』 표지. 사진 나남


그는 계속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사회과학은 실천 학문이기 때문에 시대와 연결해 변화의 힘을 만들어 내야 하지만 요즘의 학문은 그런 힘을 잃었다”고 말했다. 대신 “인간의 삶을 재현하고 생생히 끄집어내 공감하게 하는 문학의 힘”을 믿어보겠다는 이야기다.

과거를 살던 이들의 궤적과 고민을 들여다보는 것은 현재를 제대로 비추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둘로 갈라진 광복절 행사 등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역사 갈등에 대해 송 교수는 “초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논의만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방정국에서의 한국 독립운동사는 민족주의적 성격과 동시에 세계사 보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어요. 민족주의적 해석에만 머물지 말고 세계사로 지평을 넓혀 당대 사람들의 상황을 인식해야 본질이 보이고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