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냐" 소리 들어도 장발 지켰다, 어느 MZ공무원의 사연

최종권 2024. 8. 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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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희 충북도청 주무관은 조만간 어머나운동본부에 1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을 기부할 예정이다. 사진 충북도


‘장발남’ 이훈희 충북도 주무관 조만간 모발 기부


" “친한 동료가 ‘미친 거 아니냐’고 놀릴 때도 있었지만, 꾹 참고 버텼죠.” " 충북도 보도팀 이훈희(34·8급) 주무관이 20일 어깨까지 기른 장발을 보여주며 한 말이다. 더운 날씨 탓에 긴 머리카락으로 덮인 목덜미가 땀으로 흥건했다. 이 주무관은 지난해 7월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이후부터 1년 넘게 머리를 깎지 않았다. 머리카락 길이가 27~28㎝까지 자랐다. 말리는 데만 15분씩 걸린다고 한다. 이 주무관은 “소아암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린이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조만간 어머나운동본부에 머리카락을 전달한다.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운동을 뜻하는 어머나운동본부는 소아암 환우에게 가발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 일반인이 기부한 길이 25㎝ 이상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든다. 이 주무관은 “항암 치료 과정에서 탈모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머리카락 기부를 생각하게 됐다”며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에서 젊은 직원이 장발로 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훈희 충북도청 주무관(빨간원)이 한 행사장에서 김영환 충북지사와 참석자들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충북도

이 주무관은 2021년 6월 일반 임기제공무원으로 임용돼 보도팀 사진 업무를 맡고 있다. 이전까지 롯데자이언츠 야구단 등에서 스포츠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이어 충북문화재단에서 외부강사를 섭외하거나 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홍보마케팅 일을 했다. 머리카락 기부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기부는 임용 직전인 2021년 6월에 했다.


롯데 김원중 투수에 영감…“소아암 환우 용기 갖길”


이 주무관은 “2020년 대학원 진학으로 공백기가 있을 무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부 활동이 제한됐다”며 “미용실을 들르기도 어려웠고, 한 번쯤은 머리를 길러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몇 달간 그냥 놔뒀다”고 말했다. 그해 12월께 롯데자이언츠 투수 김원중 선수가 긴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하는 유튜브 영상을 봤다고 한다. 이 주무관이 11개월 정도 머리를 길렀을 때였다.

이 주무관은 “장발에 모자를 푹 눌러쓴 김원중 선수가 그저 멋있다고만 여겼는데 뜻깊은 일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머리를 더 길러서 어머나운동본부에 기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2월 경북 김해시청 공무원들이 모발 기부로 소아암 환우를 돕는다는 뉴스도 동기부여가 됐다고 한다. 이 주무관은 2021년 6월 8일 치러진 충북도청 임기제공무원 면접시험도 장발 상태로 나갔다.

그는 “당시 한 면접관이 장발인 모습을 보고 ‘최종합격하면 머리카락을 자를 거냐’고 묻길래 소아암 환우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답했다”며 “면접을 마치고 머리 길이를 재보니 기준에 충족해서 며칠 뒤에 미용실로 달려갔다”고 했다. 최종합격을 통보받고 닷새 뒤 33㎝로 자란 머리를 잘라 어머나운동본부로 보냈다. 충북도청 임용 뒤엔 도지사와 행정부지사가 참석하는 행사 관련 사진 촬영 업무를 맡았다.


어르신 행사서 눈칫밥…김영환 지사 “열심히 해봐라” 응원


이훈희 충북도청 주무관은 공무원 임용 전인 2021년 6월 19일 1년 한 미용실에서 1년 5개월 동안 기른 머리를 자르기 위해 앉아 있다. 사진 이훈희 주무관
장발 재도전은 지난해 초 결심했다. 이 주무관은 “머리카락이 남들보다 잘 자라는 편이고, 모발 기부도 계속하고 싶어서 주변 눈치를 무릅쓰고 다시 머리를 길렀다”며 “어르신이 많이 모인 행사에 나갈 때 튀거나, 건방져 보이진 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최근까지 김영환 충북지사를 도맡아 촬영했다.

김 지사는 지난 4월께 이 주무관을 향해 “기왕 마음먹은 거 열심히 해봐라”며 응원했다고 한다. 이 주무관은 “소아암 환우를 위한 가발 하나를 만들 때 머릿결이 비슷한 여러 사람 모발을 모아서 만든다고 들었다”며 “꼭 금전적인 게 아니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소외된 사람을 돕는 다양한 기부 문화가 퍼졌으면 한다”고 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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