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냐" 소리 들어도 장발 지켰다, 어느 MZ공무원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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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남’ 이훈희 충북도 주무관 조만간 모발 기부
" “친한 동료가 ‘미친 거 아니냐’고 놀릴 때도 있었지만, 꾹 참고 버텼죠.” " 충북도 보도팀 이훈희(34·8급) 주무관이 20일 어깨까지 기른 장발을 보여주며 한 말이다. 더운 날씨 탓에 긴 머리카락으로 덮인 목덜미가 땀으로 흥건했다. 이 주무관은 지난해 7월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이후부터 1년 넘게 머리를 깎지 않았다. 머리카락 길이가 27~28㎝까지 자랐다. 말리는 데만 15분씩 걸린다고 한다. 이 주무관은 “소아암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린이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조만간 어머나운동본부에 머리카락을 전달한다.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운동을 뜻하는 어머나운동본부는 소아암 환우에게 가발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 일반인이 기부한 길이 25㎝ 이상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든다. 이 주무관은 “항암 치료 과정에서 탈모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머리카락 기부를 생각하게 됐다”며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에서 젊은 직원이 장발로 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2021년 6월 일반 임기제공무원으로 임용돼 보도팀 사진 업무를 맡고 있다. 이전까지 롯데자이언츠 야구단 등에서 스포츠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이어 충북문화재단에서 외부강사를 섭외하거나 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홍보마케팅 일을 했다. 머리카락 기부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기부는 임용 직전인 2021년 6월에 했다.
롯데 김원중 투수에 영감…“소아암 환우 용기 갖길”
이 주무관은 “2020년 대학원 진학으로 공백기가 있을 무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부 활동이 제한됐다”며 “미용실을 들르기도 어려웠고, 한 번쯤은 머리를 길러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몇 달간 그냥 놔뒀다”고 말했다. 그해 12월께 롯데자이언츠 투수 김원중 선수가 긴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하는 유튜브 영상을 봤다고 한다. 이 주무관이 11개월 정도 머리를 길렀을 때였다.
이 주무관은 “장발에 모자를 푹 눌러쓴 김원중 선수가 그저 멋있다고만 여겼는데 뜻깊은 일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머리를 더 길러서 어머나운동본부에 기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2월 경북 김해시청 공무원들이 모발 기부로 소아암 환우를 돕는다는 뉴스도 동기부여가 됐다고 한다. 이 주무관은 2021년 6월 8일 치러진 충북도청 임기제공무원 면접시험도 장발 상태로 나갔다.
그는 “당시 한 면접관이 장발인 모습을 보고 ‘최종합격하면 머리카락을 자를 거냐’고 묻길래 소아암 환우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답했다”며 “면접을 마치고 머리 길이를 재보니 기준에 충족해서 며칠 뒤에 미용실로 달려갔다”고 했다. 최종합격을 통보받고 닷새 뒤 33㎝로 자란 머리를 잘라 어머나운동본부로 보냈다. 충북도청 임용 뒤엔 도지사와 행정부지사가 참석하는 행사 관련 사진 촬영 업무를 맡았다.
어르신 행사서 눈칫밥…김영환 지사 “열심히 해봐라” 응원
김 지사는 지난 4월께 이 주무관을 향해 “기왕 마음먹은 거 열심히 해봐라”며 응원했다고 한다. 이 주무관은 “소아암 환우를 위한 가발 하나를 만들 때 머릿결이 비슷한 여러 사람 모발을 모아서 만든다고 들었다”며 “꼭 금전적인 게 아니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소외된 사람을 돕는 다양한 기부 문화가 퍼졌으면 한다”고 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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