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에 횃불 넘긴 바이든 "美에 최선 다했다...민주주의 지켜져야"(종합)
"자유를 위해 투표할 준비가 됐나요?"
"민주주의와 미국을 위해 투표할 준비가 됐나요?"
"묻겠습니다. 카멀라 해리스와 팀 월즈를 뽑을 준비가 됐나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인 19일(현지시간) 연단에 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연이어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결코 쉽지 않았던 자신의 재선 포기 결정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용단이었음을 강조하는 한편, 새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맞서 "미국의 영혼을 지킬 것"이라고 강력한 지지를 표했다. 반세기 이상의 정치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을 앞두고 새 시대에 '횃불'을 넘기는 순간이었다는 평가다. 세 가지 질문에 모두 "네"라고 화답한 현장 군중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내내 '우리는 조를 사랑한다'고 연호했다.
"우리는 조를 사랑한다" 환호 속 무대 올라...민주주의 위협, 임기 성과 강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저녁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연설에 나서서 "우리는 향후 수십년 국가와 세계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는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다"면서 "미국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딸인 애슐리의 소개로 이날 연단에 오르자 현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기립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마이크를 잡은 이후에도 '우리는 조를 사랑한다' '고맙습니다, 조' 등의 연호가 4분가량 이어지며 좀처럼 연설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는 감정이 북받친 듯 휴지로 눈 주변을 닦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취임 이후 자신의 임기를 돌아보며 운을 뗐다. 그는 "100년에 한 번 있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역사적 실업,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위협 등에 시달렸다"면서 "그때도, 지금도 나는 진보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정의는 실현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있어 최고의 날은 지나가지 않았다. 우리 앞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 여름이다. 겨울은 지났다"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이 8월의 밤에 여러분 앞에 서서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보고한다. 민주주의는 성과를 거뒀다. 이제 민주주의는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임식 직전 발생한 1·6 의사당 난입 사태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헌법 수호를 선서했던 그 장소가 불과 "2주 전 폭도들이 지배했던 곳"이었다면서 "미국에는 정치 폭력이 설 자리가 없다"고 경고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일으킨 난입 사태를 언급함으로써 민주주의 위협이 아직 남아있음을 상기시킨 셈이다.
임기 중 성과도 자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이 후퇴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도록 했다"면서 중산층 재건, 팬데믹 극복,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성장, 증시 랠리, 인플레이션 완화, 약값 인하 등을 일일이 거론했다. 또한 미국을 쇠퇴하는 국가라고 정의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해 "그는 패배자다. 그는 완전히 틀렸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 최고 인프라 없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를 가질 수 있겠느냐"며 자신의 인프라 구축 성과를 강조하는 한편, "트럼프는 빌어먹을 것 하나 만들어본 적이 없다"고 비속어를 내뱉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통과시킨 법안이 이른바 '레드스테이트'에 더 큰 도움이 됐다고도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장이 아니라, 우리는 가장 놀라운 4년간의 진전을 이뤄냈다"면서 "그리고 내가 '우리'라고 말하는 것은, 카멀라 해리스와 나를 가리킨다"고 차기 대선 후보인 해리스 부통령을 함께 치켜세웠다. 아울러 폭력 범죄가 전국적으로 5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면서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트럼프) 대신 검사(해리스)를 백악관 오벌오피스에 배치하면, 범죄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퇴 촉구한 동료들에 "화나지 않았다...내 나라 사랑해"
당초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 첫 TV토론을 계기로 자신을 둘러싼 고령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달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용단을 내린 상태다. 이에 따라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전당대회 연설은 새 대선 후보인 해리스 부통령에게 횃불을 넘기는 의미 있는 순간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잇따랐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자신을 향해 사퇴를 촉구했던 민주당 내 동료들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그는 "내가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 모든 이들에게 화가 났다는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하지만 내 나라를 더 사랑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현장에 참석한 이들은 "우리는 조를 사랑한다"고 환호했다. 주요 생중계 화면에는 잠시 불화설이 돌았던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이 '우리는 조를 사랑한다'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이 비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교해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을 이끌 적임자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카멀라(해리스)와 팀(팀 월즈 부통령 후보)은 사회보장, 메디케어를 보호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를 삭감하고 싶어한다"면서 "카멀라와 팀은 여러분의 자유를, 투표권과 시민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트럼프는 전국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며 "카멀라와 팀은 낙태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리스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게 자신의 정치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밝힌 바이든 대통령은 "그녀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이미 그렇다"고 평가했다. 또한 "지난 50년간 정치 커리어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최선을 다했다"면서 "미국이여, 나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전당대회 연설은 반세기 이상의 정치 인생을 사실상 마무리하는 가장 큰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주목이 쏠렸다. 29세 나이에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던 그는 "상원에 있기엔 너무 어렸었다. 아직 30살이 아니었었다"며 "대통령으로 남기엔 너무 늙었다"고 자신의 정치인생을 요약하기도 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얼마나 감사한지 아셨으면 한다"면서 "솔직히 말해, 29세의 나이에 상원의원으로 선출됐을 때보다 미래에 대해 더 낙관적"이라고도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경력에 있어 마지막 중요한 순간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자리"라며 "해리스에게 횃불을 전달하며 '민주주의는 지켜져야 한다'고 외쳤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의 주제는 바이든에 대한 감사"라며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이중적 의미"라고 평가했다. 일간 가디언은 "예상대로 작별 인사의 어조였다"고 보도했다.
힐러리도 첫날 연설..."해리스, 유리천장 깰 것"...2일차엔 오바마 연설
바이든 대통령에 앞서 이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도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를 촉구하는 연사로 나섰다. 2016년 대선 당시 미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했다가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클린턴 전 장관은 "우리는 함께 가장 높고 가장 단단하며 가장 마지막인 (유리)천장에 균열을 가할 것"이라며 "유리천장 반대편에 카멀라 해리스가 손을 들고 (대통령) 취임선서에 나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34건의 중범죄 유죄 판결을 받고도 대선에 나오는 최초의 사람"이라며 "해리스는 검찰로서 살인범, 마약 밀매범을 검거했다"고 '범죄자 트럼프 대 검사 해리스'의 구도도 강조했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이날을 시작으로 나흘간 치러질 예정이다. 전당대회 둘째 날인 20일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와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인 ‘세컨드 젠틀맨’ 더그 엠호프의 연설이 예정돼 있다. 셋째 날에는 부통령 후보인 월즈 주지사가 후보 수락 연설에 나선다. 같은 날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도 연단에 선다. 해리스 부통령은 전대 마지막 날인 22일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자신의 집권 비전을 공개할 예정이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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