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도 난리났다... 30분 줄 서서 먹는 한식의 정체
한류 열풍 속에서 한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4년 하반기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한식 열풍을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간 김밥, 유럽을 강타한 불닭볶음면과 바나나맛 우유까지... 세계를 사로잡은 한식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김명주 기자]
핼러윈데이에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던 아이는 이정재 주연의 <오징어게임>에 나온 옷을 입고 "Trick or Treat('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다'는 뜻의 관용구)"를 외친다.
학교 음악 선생님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떡볶이라고 하고, 나중에 제주도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딸아이 친구는 불닭볶음면 2단계(2배 매운 불닭볶음면) 먹었다가 혼절할 뻔했다며, 바나나 우유를 먹었더니 그 매움이 좀 가셨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김밥을 싸갔는데 초밥이라고 해서 매번 설명해야 하던 시절을 살던 나는, 요즘 영국 현지인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 아시안마트 라면매대 유럽에서의 라면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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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펍에 한국식 치킨버거 광고판 한국식 치킨은 맥주펍이나 일반 음식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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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소호지역 한식당 중 평이 가장 좋아 방문하게 된 한식당 <아랑> 외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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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 핫도그로 유명한 소호지역 '분식' 매장 매번 30분 이상 줄을 서야 구매가능할만큼 현지에서 인기인 런던 소호지역 분식(BUNSIK)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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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한식당에서 음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한식당 <아랑>에 자주 방문해서 한식을 즐긴다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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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음식과 한식의 조화
▲ 영국 전통 스카치에그에 김치를 가미한 현지인들 삶은 계란에 다짐육과 빵가루를 잘 뭉쳐 튀기는 영국 전통식 스카치에그. 김치소스를 가미하니 별미가 되어 현지인들도 즐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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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챌린지를 즐기는 젊은 층에겐 이런 경우 되레 입소문 광고 효과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 식품청을 신뢰하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품질 낮은 아시아 식품이라 판매 금지 당했겠지'라고 생각했을까 걱정이다. 영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말 맛없는 현지 인스턴트 컵누들과 한국 라면은 비교할 수 없는데 말이다.
이렇듯 음식에 관한 한 자부심이 강한 유럽 시장은 그만큼 음식에 대해 보수적이고 수입 제품의 품질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갖는 경우가 많다.
▲ 김치앤레디쉬 창업자 키미님 영국에 프리미엄 김치를 소개하고 있는 한인 김치 사업가 김지현님(KIM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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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앤 래디시(Kimchi & Radish)라는 이름을 걸고 런던 현지에서 가공 및 유통 사업을 하는 그녀는 키미(Kimmy, 한국명 김지현)님. "공장 대량 생산이 아닌 좋은 재료로 직접 맛을 낸 신선한 김치를 소개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라고 상품을 소개했다. 현재 그녀는 런던 남부 서더크 구에 김치 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하면서 윔블던, 노팅힐 등 런던의 부촌 지역 상점들에서 '김치 앤 래디쉬 김치'를 프리미엄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최근까지 런던 중심가 웨스트민스터 지역 리젠트 스트리트, 노팅힐, 카나리 워프 등에 체인점을 둔 아티스(Atis)에서 키미김치볼(Kimmy Kimchi Bowl)이라는 이름으로 음식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곳은 주문과 동시에 직접 샐러드를 만들어 바로 서빙하는 웰빙 지향 체인점으로, 건강식을 찾는 입맛 까다로운 런던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나는 직접 온라인쇼핑을 통해 그녀의 김치를 구매해서 먹어봤다. 매운 정도에 따라 차이를 둔 전통 김치 2종을 비롯해 물김치, 아삭한 깍두기 김치도 있다. 현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명이잎으로 만든 와일드 갈릭(Wild Galic) 김치는 영국 현지에서 자란 재료를 이용한 김치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타바스코 소스처럼 뿌려 먹는 김치 소스, 호랑이와 김치 재료들을 일러스트 해서 만든 '티 타월' 등도 판매하고 있다. 김치 본연의 맛을 지키고 싶다는 키미님의 고집이 김치맛에 담겨 있었다.
내가 사 먹어 본 저렴한 중국산 김치는 배추 식감이 물컹했고, 발효된 음식이라기보다는 절임채소를 매운 소스에 담근 듯한 맛이었다. 김치찌개로도 끓여먹기 싫은 정도였다. 이 상품을 처음 먹어본 현지인이 이것이 김치의 원래 맛이라고 생각할까 싶어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한식, 특히 김치를 프리미엄 음식 단계로 끌어올리는 그녀의 노력이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 영국 현지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되고 있는 김치앤래디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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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 일식에 비하면 영국 내 한식은 현지인들의 접근이 아직 쉽지 않다. 한국음식점은 대도시 일부 지역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내가 사는 영국 남서부는 영국인들이 국내 휴가지로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다. 아시아마트는 있지만 한국 식료품점은 없고, 한국 음식점이 전체 도에 하나 정도 있을까 말까 하다. 한식은 대부분 중국음식점이나 태국 음식점에서 비빔밥이나 불고기 정도의 메뉴로 끼워 팔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최근 테스코에서 프리미엄 점심 메뉴로 한국식 덮밥을 출시해서 판매하고 있다.
한 현지 지인은 한식이 건강하고 색다른 음식인 것은 인정하지만, 염분이 너무 높은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간식·간편식 또는 매운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식을 세계화할 때 싸고 푸짐한 음식 이미지보다는 '건강한 음식'으로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한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주로 건강에 관심이 많고,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에 걸맞은 한식의 장점을 잘 마케팅할 필요가 있다.
▲ 장건강을 위한 음식들을 소개하는 서점가 책들 영국인들이 장 건강에 주목하면서 김치와 같은 발효식품이 자주 소개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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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품점 '오세요' 런던 소호점 한국식품점 '오세요'는 런던 시내를 넘어 맨체스터, 셰필드, 버밍엄 등 대도시로 지점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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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 내 12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 한인마트 '오세요(Oseyo)' 가 최대 규모로 맨체스터에 2호점을 오픈했다는 소식이다. 런던 중심이던 체인점을 버밍엄, 셰필드 등 지방 큰 도시들로 그 저변을 넓혀 가는 분위기다. 앞으로 더욱 풍성해질 영국 현지의 한식 이야기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사이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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