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점짜리 딸의 파혼, 창피해하던 엄마의 진심

이진민 2024. 8. 20. 10: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tvN <엄마친구아들> 과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공통점

[이진민 기자]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신께서 실수를 하신 듯하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다. 한없이 사랑을 주며, 원 없이 사랑의 이름으로 상처 주고 용서받는 사람. 그래서 어머니란 짜장면이 싫다면서 남은 몫을 내 입에 넘겨주는 존재이자 애써 짬뽕을 사와도 "비싼데 쓸데없이 왜 그랬냐"고 따지는 사람이다.

특히 다른 무엇도 아닌 딸과 엄마의 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흔히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고 하던가. 이 말이 오래도록 전해진 건 모녀 관계에 얽힌 유사성이 누군가에겐 저주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에게 부족한 모습까지 이해받고 싶고, 엄마는 그런 딸이 부족한 나를 닮아서일지 두려워하는 역설. 이 저주가 동서양 모두 공평하게 내리쳤고, 이들도 피하지 못했다.
 <엄마친구아들> 2화 스틸컷
ⓒ tvN
"엄마는 내가 창피해?"

tvN <엄마친구아들>의 '석류(정소민 분)'는 완벽한 '엄마 친구 딸'의 정석이다. 전액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내로라하는 글로벌 대기업에 취직했다. 국제 변호사와 결혼을 앞둔 석류는 모든 면에서 만점짜리 딸이다. 문제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형이라는 것. 지금의 석류는 말도 없이 퇴사와 파혼을 속행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백수 신세다.

온 동네 딸 자랑하기 바빴던 '미숙(박지영 분)'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다. 친하지 않았던 동창들에게 미리 받은 축의금을 환불해 주고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감수한다. 미숙은 석류의 선택을 완강하게 반대하면서, '왜 그랬냐'고 묻지 않는다. 도대체 딸의 속마음을 외면하는 걸까,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걸까. 알 수 없는 미숙의 마음은 점점 엇나가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재회 첫날부터 대파를 칼처럼 휘두르고, 등짝 스매싱을 날렸던 미숙은 석류 몰래 그의 파혼 상대에게 전화를 건다. 석류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 '승효(정해인 분)'가 건축소를 개업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혹시 너도 그곳에 갈 거냐"며 화들짝 놀라는 모습까지 보인다. 엄마가 내심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게 된 석류는 말끝을 흐린다.
 드라마 스틸컷
ⓒ tvN
미숙은 개업식에서 동창들을 만나 "그렇게 잘 살던 딸이 파혼해서 어쩌냐", "무슨 일이길래 결혼까지 깨냐"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다. 여기에 가난해서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그의 삶을 비꼬며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뒷담화가 더해지자, 미숙은 완전히 무너진다. 끝내 개업식에 참석한 석류를 잡아채 "이직 때문에 잠시 한국에 온 거였다"는 거짓말을 해 주변 사람들을 속인다.

결국 석류는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싫냐"고 묻고, 미숙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 다시 돌아올 수가 있냐"며 폭발한다. 캐리어까지 내던지며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미숙. 어떻게 생각해도 그의 행동이 어머니로서, 사람으로서 옳지 못하다는 건 분명하다. 자식에 자신을 투영하여 연장선처럼 대하는 태도는 딸을 고립시켰고 그의 상처를 처절하게 거부했다.

그럼에도 미숙의 행동은 현실적이라서 괴롭다. 부족한 자신을 삼키며 딸이라도 잘 키우기 위해 애썼던 미숙. 딸을 자랑하면서 자존감을 채웠을 미숙. 그렇기에 딸이 돌아왔을 때 가장 잔인하게 외면했던 미숙이야말로 모순적인 모성을 보여준다. 딸을 사랑해서 더욱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 그 순간, 미숙은 신처럼 자애로웠고 잔혹해졌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구하니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속 모녀
ⓒ A24
한국 엄마 '미숙'를 보니 떠오른 엄마가 있다. 미국 엄마 '에블린'다. 그 역시 모성애가 말썽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에블린(양자경 분)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오랜만에 찾아온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자신의 여자 친구를 데려와 할아버지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한다. 조이가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에게 향하자 에블린은 끼어들어 "조이의 아주 친한 친구"라고 소개한다.

엄마의 행동에 실망한 조이는 좌절 하며 '나의 존재를 엄마가 부정한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조이는 떠나고, 홀로 남은 에블린은 남편의 손에 이끌려 다중 우주 세계에 휘말린다. 그곳에는 딸의 얼굴을 가진 악인이 세계를 망치려 하고 있다. 에블린은 그를 처단하면서 딸이 지닌 상처와 마주한다.

신기하게도 <엄마친구아들>의 석류, 그리고 영화 속 조이가 각자 엄마에게 바란 것은 닮았다. 석류는 남들 다 그렇게 산다는 미숙의 말에 "남들 다 그래도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 되냐"며 "그냥 '고생했다'고 말해달라"고 한다.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석류처럼 조이 또한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엄마가) 내게 다른 길도 있었다는 걸 알려줬으면 했다"고 말하며 자신의 성 정체성과 상처를 알아달라고 한다.

모든 딸은 엄마에게 이해받기 원할 것이다. 나와 가장 닮은 당신만이 알아줄 수 있기에 딸은 엄마의 무한한 사랑에 앞서 이해와 인정을 갈구한다. 그래서 번아웃을 겪는 석류는 한국으로 향하고, 동성애자인 조이는 엄마에게 가장 먼저 애인을 소개한 것 아닐까. 세상이 우리를 오답이라 평가할 때 사랑이란 정확한 채점지로 다시 점수 매길 사람. 그건 엄마만이 가능하다.

그 어려운 일을 두 엄마가 해냈다. <엄마친구아들>의 미숙은 딸이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기를 바라며 말없이 창고를 따뜻한 방으로 바꾼다. 영화 속 에블린은 "규칙 따위 없어, 너에게 갈 거야!"라며 고장 난 세계를 구하고 딸에게 향한다.

신은 일일이 보살필 수 없어 자신을 대신할 어머니를 보냈다고 했지만, 그건 오만이다. 신은 결코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 나처럼 부족하고, 부끄러운 존재를 껴안을 수 있는 건 완벽한 신이 아닌 나만큼 부족한 엄마만이 가능하다. 마치 활화산 같은 미숙이 '돌아이' 석류를, 지나치게 현실적인 에블린이 이상적인 조이를 위로하듯 말이다.

tvN <엄마친구아들>은 소꿉친구 로맨스와 함께 동네 이야기를 담겠다며 초반부터 다양한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과연 사람 냄새 나는 로맨틱 코미디는 가능할까. 적어도 현실적인 모녀 관계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