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아가씨> 60년 기념 감상회 열린다

이준희 2024. 8. 2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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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9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인근에서 자료와 증언으로 되돌아보는 시간 가져

[이준희 기자]

세태가 변하면서 환갑을 챙기는 경우가 이제는 별로 없지만, 사람이 아닌 노래의 환갑을 기념하는 이색적인 감상회가 열릴 예정이다. 바로 1964년 8월에 발표되어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동백 아가씨> 60년을 기념하는 자리이다.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에서 마련한 <동백 아가씨> 60년 기념 감상회는 오는 8월 29일 목요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3층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8월 29일로 행사 날짜를 특정한 이유는, 영화 주제가로 만들어진 <동백 아가씨>가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 첫 날, 그러니까 영화 <동백 아가씨>가 개봉한 날이 1964년 8월 29일이기 때문이다. <동백 아가씨>가 수록된 음반 역시 8월에 출시되었을 것은 틀림없으나, 정확한 발매 날짜는 알 수 없다.
 영화 <동백 아가씨> 개봉 광고
ⓒ 동아일보사
한 시절을 풍미한 가수 이미자의 대표곡이기도 하고, '왜색'이라는 이유로 한때 금지곡의 대명사였기도 하고,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최초로 음반 판매량 10만 장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동백 아가씨>. 영욕이 교차했던 그 60년 세월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깃들어 있다.

영화 주제가 <동백 아가씨>는 당연히 영화 <동백 아가씨>를 전제로 하는데, 영화의 원작은 또 라디오 드라마였다. 1963년 4월에 출범한 동아방송 라디오에서 6월 10일부터 한 달 남짓 방송한 연속방송극 <동백 아가씨>가 영화의 원작이다.

드라마 <동백 아가씨> 방송 당시에도 김희조가 작곡한 주제가가 따로 만들어져 성우들의 연기와 함께 전파를 탔는데, 백영호가 작곡한 영화 주제가와는 전혀 다른 드라마 주제가를 이번 감상회에서 들어 볼 수 있다.
 연속방송극 <동백 아가씨> 프로그램 소개
ⓒ 동아일보사
자사 연속방송극을 소재로 한 영화의 주제가였기 때문인지, 동아방송에서는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밀어줬다고 한다. 이번 감상회에서는 그러한 당시 상황에 대해서 동아방송 개국(開局) 멤버이자 1960~1970년대 유명 라디오 PD였던 안평선씨가 직접 나서 상세한 증언을 들려 줄 예정이다.

확실한 통계에 근거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발표 이후 1년이 채 안 된 1965년 4월에 이미 <동백 아가씨> 음반 판매량이 3만 장을 넘었고, 10년쯤 뒤인 1974년 연말에는 누적 판매량이 15만 장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감상회에서는 그런 다양한 기록의 확인과 함께, 비슷해 보이면서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동백 아가씨> 음반 가운데 어느 것이 초판인지도 소개된다.

필름이 사라진 영화 <동백 아가씨>에서 어느 대목에 주제가 <동백 아가씨>가 등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시나리오, 그리고 1966년 1월부터 <동백 아가씨>의 방송을 금지한 방송윤리위원회의 결정 내용이 담긴 목록 등도 그동안 흔히 볼 수 없었던 의미 있는 자료들이다.
 <동백 아가씨>가 포함된 방송윤리위원회 금지곡 목록
ⓒ 방송윤리위원회
비록 방송 금지곡이 되기는 했지만 인기 기세가 전혀 꺾이지 않았던 <동백 아가씨>였기에, 1966년 6월에는 그 인기를 바탕으로 가수 이미자가 일본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동백 아가씨> 곡조에 새로운 일본어 제목과 가사를 붙인 <恋の赤灯(사랑의 붉은 등)>는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한국 대중가요가 1960년대에 경계를 넘어 국외로 간 의미 있는 기록 중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恋の赤灯>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이미자가 일본어로 부르는 <동백 아가씨>가 어떠했는지는 오히려 많은 한국 대중에게 관심사가 되었다. 그 바람에 일본 음반이 은밀하게 수입되어 이른바 '빽판'으로까지 만들어지는 일이 벌어졌는데, 당시 적지 않은 물의를 일으켰던 그런 불법 복제음반 자료도 감상회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동백 아가씨> 일본어 버전이 포함된 빽판의 가사지
ⓒ 이준희
대중가요가 사회상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라는 말은 무척 진부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딱히 부정하기도 어렵다. 유신정권의 위세가 절정이었을 때 전면적인 금지가 이루어졌던 시대의 어둠, 그러면서도 1979년 일본 전 수상이 내한했을 때에는 연회장에서 <동백 아가씨>가 아무렇지 않게 불렸던 권력의 이중성, 1987년 민주화 국면 와중에 드디어 족쇄가 풀리게 된 해금까지, <동백 아가씨>의 곡절은 정말 많기도 하다.

100년을 훌쩍 넘어선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 의미 있는 작품이 적지 않지만,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동백 아가씨>의 환갑은 충분히 돌아볼 만한 일이다. 가수 이미자 외에는 이제 노래와 관련된 인물들 대부분이 벌써 세상을 떠나고 없다. 하지만 <동백 아가씨>를 향유하는, 계속해서 듣고 부르는 대중이 있는 한 지난 60년은 그저 박제된 과거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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